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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봄 Sep 03. 2024

슬라이드는 못탔지만

세상 가장 높이 올라간 날

참 뜨거웠던 여름에는 가을을 그리워했는데 가을이 발앞에 오니 벌써 여름이 그리워 여름을 추억하는 글을 쓸까한다.

우리집은 초중고가 한꺼번에 거주한다. 요즘엔 해외여행으로 체험학습 안내고 개근하면 '개근거지'라는 내가 학창시절에는 상상도 못할 일과 단어들이 생겨서 마음이 아프다. 그렇게 치면 우리아이들은 모두 '개근거지'이다. 학교가는 날 학교 가는 것은 당연하다. 부득이하게 학교를 쉬고 가야 할 날도 당연하다. 어느 곳이 옳고 그름으로 판별 할 수 없는 것이다.

홈스쿨을 하다 처음 만난 여름 방학의 어느 날, 방학 동안 휴가는 고사하고 온 가족 까페도 한번 못 간것 같아서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가까운 곳에 가서 발이나 담그고 오자는 마음으로 야외 워터파크를 갔다.

가기 전부터 우리 집 물개인 3호는 설레인다. 평소엔 엄마의 독설로 움직이던 공부 분량이 급 자기주도 학습이 되어 버렸다. 역시 아이들을 움직이는 힘은 재미요, 즐거움이요, 설레임인 것을 다시 보게 된다. 그것이 비단 아이들만의 마음은 아닐 것이다. 나 또한 정말 오랜만에 비록 당일치기이지만 온가족이 물놀이를 가는 것이 즐겁고 설레여서 수영복까지 입고 출발했으니까.


드뎌 도착!

오픈런을 꿈꾸며 일찍 출발했다고  생각했는데 여름의 끝자락에도 많은 가족들이 돗자리며 물놀이도구를 등에 메고 까꿍이들은 두 팔 무겁게 안고 발걸음은 가볍게 입장하고 있었다. 우리도 손에 손잡고 수영복 입은 채로 다섯식구가 나란히 팔찌를 보여주며 위풍당당 입장을 한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락스냄새까지 향긋하게 느껴 질 지경이다.  세 아이는 알아서 유스풀부터 시작한다. 아이들에게 우리의 자리를 알려주고 데이트하러 온 눈앞의 연인처럼 손을 잡고 워터파크 곳곳을 돌아보며 여기가 명당이네 저기도 낮잠자기 괜찮네라며 노부부의 대화를 나누며 한 바퀴를 돌아 보았다.






그러다, 긴 줄의 슬라이드를 발견했다. 우린 6년 산삼이라도 발견한 듯 아이들에게 가서 이 기쁜소식을 알려주었다. 안내판을 둘러보니 입장할 수 있는 키 제한 문구가 있었다. 

'140cm이상만 탑승가능'

며칠 전 집 한쪽 벽에 재어 본 3호의 키가 순간 생각났다. 

대략 137.5cm

보아하니 대학생이 아르바이트로 하는 것 같은데 그렇게 빡빡하게 측정하겠냐는 안일한 마음으로 긴 줄에 남편을 세워놓고 아이들을 데릴러 갔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조차 즐거워하는 1, 2호와는 달리 3호의 표정이 어두웠다.  

고소고포증이 있는 나와 남편은 아이들의 줄이 줄어 들기만을 바라며 3호에게 키 잴때 뒷꿈치를 살짝 들어라, 키 재는 선생님께 다이빙선수였다고 말해라, 지난 주에도 와서 탔다고 해라, 아까 보니까 너보다 작은 아이들도 태워주더라, 떼쓰면 태워주는거 같더라 등의 글을 쓰면서 생각해도 부끄러운 주문을 줄줄이 읉었다.



그렇게 수많은 요술램프 지니의 주문을 일러준 뒤 뒤로 빠져서 아이들이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슬라이드 타고 내려오는 모습 찍어주려고 카메라를 조정하고 대기조를 하고 있던 찰라, 3호가 눈이 빨갛게 우리 부부에게 온다. 2.5cm의 키가 원인임을 직감했다.

"왜 140cm 안 되서 안된대?"

3호는 여전히 빨간 눈과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 했다.

"슬라이드 미끄럼틀 키가 140 이상이여야 탈수있대. 내 앞에 애도 나보다 작았는데 우겨서 탔어. 

근데 난 정직하게 살아야 될것 같아서 솔직하게 그냥 돌아왔어. 나 진짜 타고 싶었는데..."

그날은 유난히도 해가 뜨거워 땀인지 물인지 구분하기가 힘들겠다는 꼼수로 3호와 함께 울었다. 


3호의 키가 작다는 이유로 3호의 나이를 속여 말하라고 하며 뷔페에 가서 적은 돈을 지불하며 수억 번 것처럼 좋아했다. 어차피 많이 먹지도 않고 다 그런거 아니냐며 합리화하며 살고 싶은 나와 살아내는 나의 실력 차이가 참 부끄러웠다.

자신을 있는 자체로 바라보지 못한 부모인데도 3호는 자신을 인정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터득한 3호의 용기가 부러웠다. 그 용기를 자랑하고 싶었다. 

부모는 자식의 표준값이라는데 어째 이 순간만큼은 3호어른에게 인생 굽히지 않고 나 답게 당당하게 사는 꿀팁을 전수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3호는 한참을 슬라이드를 타고 내려오는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며 내년을 기약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가족 모두의 박수와 찬사에 비록, 슬라이드는 못 탔지만 세상 가장 높은 신뢰와 용기를 경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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