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건강한가족문화세우기
"아, 맞다! 마라톤"
이제야 생각이 났다.
올해 비전보드에 마라톤이 있었다. 몇키로에 도전하는 거는 중요하지 않았고 그냥 마라톤이면 족했다.
어느 덧 뜀박질하기 좋은 가을이 되었고, 마라톤 공지글이 떴다.
머리보다 빠른 입이 그날 저녁 선포했다.
"엄마, 이번에 마라톤 나갈거야. 같이 할 사람?"
다들 이건 뭐밍?하는 눈치다.
"괜찮아, 강요아니야."
1호를 지긋히 바라본다.
"몇키로 뛸건데?"
"음, 현재로선 10키로"
"5키로 뛰면 같이 뛰고"
"오케이, 5키로 낙찰"
이렇게 1호와의 마라톤협약조항이 맺어지고 다음날 일어날 일을 상상도 못한 채 잠들었다.
다음날,
마라톤 등록접수는 초스피드로 마감된다고 해서 얼릉 접속했다.
이런, 이럴수가, 어째 이런일이, 왜 이걸 이제서야...
마라톤은 전년도는 분명 토요일 실시되었다는 기억만 가진채 비전보드에 추가했었다.
그런데, 올해 마라톤 개최일은 일요일이었다. 일요일은 교회에서 예배 드리는 날이다.
살짝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이미 아이들께 말은 뱉았고, 체신머리 떨어지게 주저리 주저리 설명하기 싫고 예배를 빠지는 건 더욱 안되는 일이었다.
내가 나를 비판하기 시작한다.
'그러게 좀 더 잘 알아보고 말이나 하지?'
'입이 그렇게 방정맞아서 뭘 하겠냐?'
'애들하고 한 약속은 최선을 다해 지킬려고 애쓰는데 이제 이 일 어쩔거야?'
살짝으로 시작한 고민이 오전을 넘어 오후까지 넘어지며 다른 지역 마라톤 일정까지 샅샅이 뒤지기 시작한다.
결론은 읎다! 빼박이다!
늦은 오후 결론을 지었다.
가족마라톤 대회를 만들자.
없으면 만들면 되지.
길이 없을 땐 내가 걸어가면 길이 되겠지.
어차피 마라톤 완주가 목표였으니
내가 계획 짜고
내가 코스 짜고
내가 참가신청 받고
내가 상품 협찬도 받고
해. 보. 자!
이렇게 결정하고 나니 준비해야 될 일들로 씐난다.
저녁 시간,
가족앞에서 또 그간의 수많은 고뇌와 실패의 시간을 고백한다.
다들 '그래서?'라는 표정으로 바라보길래
"그래서 우리 가족마라톤대회를 개최 할려고. 물론 강요는 아냐. 다만, 완주자에겐 혜택이 있어.
점심 스테이크 외식에 게임 및 미디어 활용 1시간 쿠폰 쏜다.
처음이니 5km부터 참가 신청 받을게. 접수는 내일 저녁까지 가족 톡에 올리면 돼."
더이상의 질문은 받지 않겠다는 듯 나는 열심히 식탁을 치웠다. 속으로 아무도 안 한다고 하면 어쩌지를 고민하지 않은 건 아니였다.
참가자는 5명 중 4명.
2호는 영어 수업을 빠질 수가 없다고 했다. 요즘 2호의 관심은 가족보다는 공부이기에 존중해줬다. 대신 스테이크는 함게 갈 수 없고 점심은 알아서 해결하는 걸로 합의 봤다.
포스터까지 만들어 집에 붙여 홍보를 시작했다. 그렇게 하나씩 준비하고 나니 한달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드뎌 마라톤 당일이 되었다. 전날 비가 계속 와서 아무도 모르는데 그냥 하지 말까라는 귀찮니즘이 슬슬 까불었지만 가족과의 약속이라는 생각에 꾹꾹 눌러 예정대로 진행했다.
집결지인 저수지로 모였다. 참가선수의 팔찌 착용완료. 주말 아침을 빼앗긴 표정은 준비운동을 시작으로 어느덧 사라지고 다들 먼저 도착하리라는 각오로 상대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각자의 핸드폰에 런데이앱을 5km로 설정 후 각자의 코스대로 달린다. 완주 후 런데이 기록을 주최측에 확인받으면 완주한 걸로 인정한다. 아직 스마트폰이 없는 3호는 아빠와 같은 코스로 달리기로 한다.
자, 이제 달려보자! 시작~
나는 이 날의 마라톤을 위해 아침 출근 전, 저녁 저녁준비 전 짬짬이 저수지를 돌았다. 달리면서 생각했다. 참 지루하다. 음악을 들어도 오디오북을 들어도 힘이 드는 건 똑같고 체력이 쌓이는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도 돌았다. 그렇게 같은 장소를 같은 시간대에 달리고 달리면서 생각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잠깐의 특별한 반짝임을 위해 일상의 지루함을 달라고 달리는 거다. 일상의 지루함이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내가 참고 견뎌야 하는 지루함이다.
그러나,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인생의 마라톤에도 마지막은 있으며 아직 종료휘슬은 울리지 않았음에 달리고 또 달려야 하는구나.
인생에 쉼표만 있을 뿐 마침표는 내가 찍는 게 아니구나.
그래, 천천히라도 달려보자. 요즘 슬로우조깅이 유행이라잖아. 난 달리기 트렌드의 선두주자야.
그렇게 30분가량을 달리고 있는데 익숙한 모습들이 슬슬 보이기 시작한다.
아! 반갑다.
다들 핸드폰을 흔들며 움직이는 주최측에게 달려온다.
"나 다 뛰었어."
어느덧 주최측의 귀에도 들려온다.
"축하합니다. 오늘의 목표치를 도달하셨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평소보다 기록도 당겨졌다.
다들 아침의 표정은 온데간데 없고 어깨에 스펀지하나씩을 장착하여 부자연스럽게 걷는 모습이 웃기다.
집으로 돌아와 각자 씻고 사과하나씩 먹고 빵하나씩 먹고 뒹굴거리다 상품인 스테이크 집으로 갔다.
평소 스테이크류는 별로인 3호도 두접시나 비우고 공기밥을 추가로 해 치웠다.
언젠자 국민피겨여왕 김연아선수의 인터뷰를 본 적 있다. 경기 출전 하기 전 고뇌하는 듯한 몸 푸는 그녀에게 기자가 물었다.
"무슨 생각하세요?"
"생각은 무슨 생각이요. 그냥 하는거죠. 무슨 생각을 해요."
인생의 마라톤에도 가끔은 고뇌해야 하는 듯한 생각을 해야 될 때를 마주한다. 아니 시기마다 마주한다.
그때마다 오늘을 기억하고 김연아선수의 멘트를 기억하려 한다. 피할 길은 없다. 그냥 나를 믿고 달리듯 정면승부하면 된다.
그렇게 발 앞에 징검다리를 하나씩 놓으면서 강 건너 목표를 향해 한걸음씩 가는 거다.
이제 저녁이다. 제 2회 가족마라톤을 10km를 준비하며 달리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