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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민 Mar 24. 2024

유기견을 입양한 이기적인 이유

"엄마는 너희 둘 키우는 걸로도 이렇게 바쁜데, 강아지까지 키운다니, 그건 안 돼. 너희가 중학생 되어서 산책, 목욕 다 시켜줄 수 있을 때, 그때 키우든지."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조르는 두 아이에게 매번 이렇게 대꾸했다.


그때는 아이들이 금세 중학생이 될 줄 몰랐고, 햄스터를 2년 넘게 잘 돌보아서 강아지도 잘 키울 거라는 믿음을 갖게 할 줄도 몰랐다. 정든 햄스터가 세상을 떠난 후 슬퍼하는 사춘기 아이들을 보기가 가슴 아파서, 내가 먼저 강아지를 키우자고 제안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평생 강아지를 키워 본 적이 없었다. 강아지를 입양한다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었다. '강아지 공장' 뉴스를 본 후 '펫샵'에 가지 않겠노라 다짐했기에, 유기견 봉사를 하면서 우리 가족, 특히 내가 과연 강아지를 감당할 수 있을지 점검해 보기로 했다.


아이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이 드물어서, 1시간 넘게 운전하여 경기도 구리시 반려동물문화센터를 찾아갔다.


'유기견 한 마리를 데려온다고 세상이 바뀌진 않겠지만 그 개에게는 세상이 바뀌는 일이다.'라는 문구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그렇게 가족과 헤어진 강아지들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가 만난 강아지들은 낯선 사람의 무릎에 스스럼없이 올라오고 그들의 손길을 반겼다.


'너는 어쩌다가 가족과 헤어졌니? 엄마, 아빠 얼굴은 아니? 어디서 뭘 먹고 어떻게 자면서 버텼니? 센터에서 다른 강아지들과 지내는 지금은, 행복하니?'

 

어린아이처럼 순진한 눈망울을 들여다보며 수많은 질문이 떠올랐지만 물을 수도, 대답을 들을 수도 없었다. 그 아이들이 겪었을 수많은 어려움을 애써 짐작해 볼 뿐이었다.



강아지와 산책하고 길가에 싼 똥을 치우고 물과 간식을 먹이고, 강아지들이 생활하는 공간을 청소하면서 과연 내가 이걸 매일 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봉사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는 오늘 만난 강아지를 집에 데려온다면 그 아이가 우리 집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상상해 봤다. 유튜브 영상과 책을 찾아보면서 강아지를 키우기 위해 우리가 어떤 준비를 하고 노력을 기울어야 하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강아지 공장에서 대규모 구조를 하는 민간단체를 통해 입양을 시도했는데 수 차례 탈락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강아지를 키워 본 경험이 없어서? 혹은 그 단체에서 봉사나 기부 등 활동을 하지 않아서? 아니면 그 모두일 수도 있었다.


봉사하던 지자체 센터에서 입양하면 되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막연히 새끼 강아지를 데려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미 성년이 되어 성격이나 습관이 형성된 강아지는 우리 가정에 적응하기 어려울 거란 편견 때문이었다.


내가 잴 거 다 재고, 더 쉽고 유리한 방식을 고민하는 동안, 센터에는 새로운 유기견이 들어왔고 입양은 적게 갔으며, 그 가여운 아이들은 오매불망 새 가족을 기다렸다. 새끼 강아지에 집착하다가 '무료입양센터' 혹은 '브리더'로 가장한 펫샵에 갈 뻔했다. 브리더에게 입양하는 비용이 비싸서 다시 정신을 차리고 '서울동물복지지원센터'를 찾아갔다.


센터를 여러 번 방문하면서 깨달았다, 유기견을 입양하면 돈 한 푼 안 내고 도리어 많은 지원을 받게 된다는 걸. 센터 직원들은 강아지를 입양할 때 꼭 필요한 준비사항을 알려주고, 우리 집 구조에서 어떤 식으로 강아지 집, 배변판 등을 배치하는 게 좋을지도 조언해 주었다.


센터에서는 입양할 강아지의 건강상태나 훈련이 필요한 부분을 숨김없이 투명하게 알려주었다. 동물등록, 중성화 수술, 질병 치료, 배변훈련이나 사회화 교육 등 어려운 과정이 어느 정도 해결된 상태에서 강아지를 맞이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유기견이 구조된 지자체에서 강아지 진료나 미용 등에 지출한 비용을 일부 지원받을 수 있었다.


성견 입양의 이점도 있었다. 강아지가 몸 성장을 이미 마쳤기에, 얼마나 더 클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성격이 이미 형성되었으니 강아지를 만나보면서 우리 집에 맞을지 판단해 볼 수도 있었다. 완성형 강아지를 입양하는 것이니, 새끼 강아지를 올바로 키워야 한다는 부담감도 없었다. 초보는 성견을 입양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강아지와 함께 사니,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게임을 하느라 바빠 외출을 하지 않던 사춘기 아이들이 강아지와 산책을 하거나 거실에 나와 몸을 움직인다. 온 가족이 머리를 맞대고 분리불안, 짖음 등을 극복하고 강아지와 잘 지내기 위한 방법을 의논한다.



이쯤 되면 유기견을 입양하는 게 순전히 동물만을 위한 이타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반려동물문화센터에 게시되어 있던 문장을 고쳐 써야 할지도 모른다.


‘유기견 한 마리를 데려오면 당신과 강아지의 세상이 함께 행복해질 것이다. 유기견 입양은 적당히 이기적인 당신에게도 잘 맞는 일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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