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야, 파리!
대학생 때 꼭 다시 오리, 다짐했었던 세계인의 도시.
부푼 가슴으로 파리 땅을 밟았다. 스마트폰이라는 미래 기술을 가지고 20년 만에 돌아오니, 잠시 과거에 취해있던 여행객이 버벅대는 건 당연했다. 유심은 비행기에서 무사히 교체했는데, 인터넷이 도통 연결되지 않아서 우버를 부르지 못하고 있었다. 제길, 택시보다 우버가 30유로는 더 싸다던데. (드골공항에서 파리 10구와 3구 사이에 있는 숙소까지 우버 비용은 76유로, 한화 11만 원이었다. 택시로 가면 더 어마어마한 돈을 내야 한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우왕좌왕하니 난민인지 현지인인지 알 수 없는 택시기사들이 슬금슬금 접근해 온다. 대학생 때였으면 벌써 얘네들한테 말렸겠지만, 이제는 어림없어! 무표정으로 앞만 바라보며 태연한 척 지나치는 나는, 배짱 두둑하고 팔뚝 굵은 아줌마다.
알고 보니 '데이터 로밍'을 켜지 않아서 인터넷 연결이 안 되었던 것을 초등생 막내가 발견해서, 가까스로 우버 앱으로 밴을 불러 타고 숙소로 향했다. 비행기에서 '줄커피'에 영화 세 편으로 안 자고 버틴 보람이 있어, 현지 저녁시간에 맞춰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잠시 감았다 뜨니, 어느덧 '그라피티'로 도배된 대도시였다. 에어비앤비 채팅에서 받은 비밀번호로 대문, 중문을 힘겹게 따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또 제길, 엘리베이터가 고장이었다. 나는 그러지 않길 바랐건만, 몇몇 후기대로 이십 킬로가 넘는 돌덩이 같은 짐 가방을 여러 번 힘겹게 끌어 나른 후에야 2층 숙소 문 앞에 섰다. 진정 아날로그식으로, 숫자판을 돌려 열쇠함을 열고 큼직한 열쇠를 꺼냈다. 도어록이 익숙한 현대 서울 사람은, 파리에서 열쇠로 문을 따는 게 이리도 힘겹다. 무거운 목재 현관문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정신 차리라고 발로 몇 번 차도 꿈쩍하지 않았다.
한 밤중의 사투. 다행히 에어비앤비 채팅에서 집주인이 바로 답을 보내왔다. 오른쪽으로, 즉 문고리 홈 반대방향으로 몇 바퀴 돌려보라며. 알고 보니 유럽의 현관 문고리는 정직했다. 열쇠를 홈 쪽으로 돌리면 잠금 걸쇠가 조금씩 튀어나오면서 홈에 걸리게 되어 문이 잠긴다. 반대 방향으로 여러 바퀴 돌리면 조금씩 걸쇠가 문 속으로 들어가고 문을 열 수 있게 된다. 이 원리를 파리에서는 끝끝내 깨닫지 못했고, 몇 주 후 이탈리아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는 건, 낯 뜨거운 비밀이다.
"유럽 숙소는 추워요. 전기장판은 필수!"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
이례적으로 따뜻했던 겨울이어서, 첫날은 추운 줄 모르고 지냈다. 게다가 내가 묵은 숙소는 창문 아래와 화장실마다 공기를 덥혀주는 커다란 라디에이터가 달려 있었고, 온도 조절까지 자유자재로 되어서 온도를 최대로 높여두고 지냈다. 전기장판을 꺼낼 일이 없었다. 추위를 많이 탄다면 옷을 껴 입거나 낮에 쓰던 핫팩을 이불속에 넣고 자면 큰 문제없을 정도였다. (전기장판은 뜻밖에, 남쪽나라 베네치아에서 필수품이 된다.)
파리에 머무는 일주일 내내 시차적응을 했다. 7시간 앞서 있던 생체시계는, 파리에 도착한 몸을 좇아 뒤늦게 대륙을 횡단하고 있었다. 저녁 7시에는 새벽 2시인 몸으로 잠과 싸워야 했고, 새벽 4시가 되면 오전 11시의 몸으로 허기를 느끼며 일어났다.
방 2개에 화장실 2개, 간단히 음식해 먹기 좋을 정도로 조리기구가 갖추어진 주방. 4인 가족이 머물기 딱 좋은 숙소였다.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 햇반, 김치, 조미김, 진미채와 멸치볶음으로 집밥을 해 먹었다. 현지에서 구입한 양파, 당근, 고기를 볶다가 한국산 카레분을 푼 물을 넣고 끓인 카레는 단골메뉴였다. 현지 식당에서 사 먹기도 했지만 집밥이 없었다면 한 달간 타국땅에서 어떻게 버텼을까.
드디어 파리에서의 첫날. 역시 흐렸다. 무작정 시내 쪽으로 걸었다. 19세기 건물들이 길게 늘어선 모습이 보기 좋았다. 수많은 전쟁과 난리를 겪고도 건물들이 멀쩡히 남아 있다니, 마차가 드나들던 커다란 문에 전자식 잠금장치를 달고, 계단식 건물 안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그렇게 옛 것에 요즘 것을 더해 가며 살고 있다니 부러웠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시던 한옥에 철문, 도어록, 새시도 달고 화장실, 부엌도 손보고, 우리 나름대로 과거에 현재를 버무리며 살고 있다면 어땠을까.
바다 건너온 예의 없는 불청객이 허락 없이 부수고 허물지 않았다면, 우리 역사나 문화를 제 멋대로 불태우고 드러내지 않았다면, 근본 없는 양식으로 대체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개똥밭이 이런 걸까. 좁다랗고 울퉁불퉁한 돌 길 곳곳에 개똥 주의보가 내렸다. 물컹하고 냄새나는 지뢰를 요리조리 피하느라 고개를 들어 풍경을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마이리얼트립 안내 페이지에 '파리 뮤지엄 패스' 바우처를 실제 티켓으로 교환받는 주소가 잘못 기재되어 있어서 엉뚱한 곳에서 헤맸다. 우여곡절 끝에 튈르리 정원 근처로 찾아가 실물 티켓을 받았다. 안내직원이 에펠탑 2층 올라가는 게 무료라고 '개뻥'을 치는 바람에, 에펠탑에서 또 시간을 낭비했다. (이건 '유럽식 안내'의 시작에 불과했다.)
결국 에펠탑에 올라가 보지는 못했지만, 튈르리 정원에서부터 에펠탑으로 가는 길은 여행 첫날인 만큼 그저 즐겁고 설렜다. 길가에 나뒹구는(?) 조각상 하나하나를 칭송했고, 네모 반듯하게 가지치기되어 줄 선 나무들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중랑천 남짓한 크기에, '에계계'한 센 강을 거닐면서도 녹조현상, 쓰레기, 노점상 사기꾼 그 어느 것 하나 불평하지 않고 콧노래를 불렀다. 시멘트빛으로 찌푸린 하늘마저 '프렌치 시크' 그 자체였다.
아무리 포근한 겨울이라고 해도 몇 시간째 차고 습한 강바람을 맞으며 대도시를 누비고 다니니, 콧물이 찔끔찔끔 나고 배가 꼬르륵거렸다. 구글에서 급히 찾은 별점 4.7점짜리 빵집에서 20유로(28,000원)를 내고 초콜릿이 박힌 크루아상 몇 개, 타르트, 케이크를 샀는데, 앉아 먹는 자리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식사 때가 아니었는데 식사 메뉴만 적혀 있어서 당황했지만, 밑져야 본전 심정으로 주인장에게 물으니 커피랑 코코아가 있단다. 작은 바구니에 볼품없게 담겨있는 건포도 페이스트리를 '울며 겨자 먹기'로 시켰는데, 역시 '프랑스 빵 이즈 뭔들!' (4인 간식 비용 27유로, 4만 원)
대학 때 어떤 책에서 읽었던 까미유 끌로델이 생각나서 로댕 박물관에 들렀다. 뮤지엄 패스로 무료입장이 되었다. 나무나 철사로 된 뼈대에 찰흙을 붙인 작업물, 습작, 청동상 등이 전시된 실내를 먼저 살펴봤다. 조각을 관찰하며 그림을 그리는 앳된 얼굴들이 많았다. 그 친구들처럼 얼마든 더 오래 머물 수 있었지만, 나가자고 보채는 아이들과 2시간 이상 박물관에 머무는 건 역시 무리였다. 책에서는 자세히 볼 수 없는 조각 뒤통수라도 서둘러 살펴봤다.
서울의 실내 전시관에서 봤던 '지옥의 문' 쌍둥이 형이 찬바람을 맞으며 야외에 우뚝 서 있었다. 비수기임에도 사진 찍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작품을 뜯어봤다. 움직이고 흐르는 이야기, 그것도 난해하고 긴 글을, 멈춰 있는 그림이나 조각으로 한 화면에 담는 것이 쉬울 리 없었다. 로댕은 단테의 신곡을 수없이 읽고 상상하고, 조각을 더하고 떼어내다가 청동문을 완성하지 못하고 운명했단다. 실제 청동문이 주조된 것은 로댕이 죽은 뒤였다.
내가 꿈꾸는 '대작'은 허구나 욕심이 아닐까. 천재들도 자기 작품에 만족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데, 내 인생에도 과정이 있을 뿐 진정한 결말은 없을지도 모른다.
조각을 보는 동안 다시 출출해졌다. 에펠탑으로 인생사진을 찍으러 가기 전에,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프랑스 요리는 그 결과물보다는 요리를 대하는 태도에 진가가 있다고 하던데, 그 말이 맞았다. 입에 착착 붙는 맛은 아니었지만, 시간과 정성을 들여 자기 요리를 설명하고, 주방장이 완성한 작품을 손님 상에 내고, 맛은 어떤지, 부족한 것은 없는지 확인하는 모습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말은 안 통했지만(프랑스 억양이 섞이니 분명 영어인데 절반만 알아 들었다!) 파리가 아니면, 이 식당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정서가 전달되었다. 1인 29유로(42,000원)가 아깝지 않은, 정성 가득한 코스 요리로 든든히 기운을 채우고 길을 나섰다.
오후 5시 30분에 출발하는 유람선을 탄 건 행운이었다. 강 반대편으로 가는 길에 해가 지며 인공조명이 하나둘 켜졌다. 6시쯤 완전히 어두워졌고 반대방향으로 틀어 돌아오는 길에는 배 위에서 에펠탑 조명쇼를 봤다. 낮에 가까이서 보면 군데군데 때운 고철 탑이었을지 몰라도, 어둠 속에서 불빛을 휘감고 날렵한 자태로 빛나는 에펠탑은, 여전히 파리의 주인공이었다.
우버에 피곤한 몸을 맡기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 정도면 꽤 괜찮은 하루였다. 낮에 먹은 코스 요리가 아직도 소화 중이라, 라면 국물로 속을 달랬다. 따끈한 물로 피로를 대충 씻어낸 후 마스크팩을 붙이고 아이들 다리를 주물러 주며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새벽 4시, 말라붙은 팩을 떼며 눈을 떴다. 먼 길 떠날 준비를 하고 아침상을 차리면서 아이들을 깨웠다. 지금 일어나야 돼, 노르망디 투어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