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아이들을 데리고 유럽여행에 도전한 여행 초보 엄마의 후일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고미영 산악인 편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히말라야 산맥의 8천 미터 봉우리를 직접 오르는 일은 생명을 건 도전이었다. 곤돌라와 산악열차를 타고 편안하게 산에 올랐더라도, 산소 농도가 낮은 2~3천 미터 이상의 높은 곳에서 두통과 메스꺼움을 경험하게 된다. 심한 경우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산악인들이 모든 것을 걸고 높은 산을 올랐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내가 4천 미터 높이의 알프스 정상에서 느꼈던 떨림과 두근거림에서, 그들이 그토록 산을 사랑했던 이유를 짐작만 해 볼 뿐이다.
3대가 함께 하는 스위스 여행
사춘기 아이 2명, 40대 엄마, 60대 할머니가 6일 간 스위스를 누비기로 했다. 파리에서 인터라켄으로 들어가고, 인터라켄에서 밀라노로 나가는 2일을 제외하니, 온전히 스위스에서 머물 수 있는 날은 6일이었다. 대학생 배낭여행이었다면 분명 이삿날에도 캐리어를 맡기고 시내 관광이라도 한 후 저녁 늦게 다음 도시로 이동했겠지만, 체력을 아끼고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알프스 산 정상의 날씨를 예측할 수 없어서 유명한 산에 방문할 날짜는 정하지 못한 채 스위스에 도착했다. 'MeteoSwiss'라는 날씨 애플리케이션, SRF(Schweizer Radio und Fernsehen, 스위스 라디오 및 텔레비전) 일기예보 사이트에서 일주일 간 날씨(기온, 강수량, 바람)는 물론, 정상에 설치된 웹캠으로 촬영한 실시간 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 방문 지역(산 정상, 전망대, 혹은 인근 지역)의 날씨 예보를 지속적으로 확인해 가면서 전체 일정을 다시 조정하고 전날 저녁에 내일 갈 곳을 정했다.
첫날, 결정을 못 했다.
융프라우 VIP 패스를 1일권으로 해야 할지, 2일권으로 해야 할지 한참 고민했다. VIP 패스를 이용하면 융프라우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아이거 글랫쳐' 곤돌라와 산악열차를 해당 기간만큼 무제한 탑승할 수 있다. 3만 원만 더 내면 융프라우 지역을 하루 더 누빌 수 있는 건데, 문제는 날씨였다. 기상 예보를 몇 번이나 다시 확인해도 '내일은 흐림'이다. 예보와 달리 혹시 내일도 맑을지 모르니 3만 원을 걸어 볼까 고심하며 매표소 앞에서 머뭇거렸다.
여기말고도 가 볼 곳이 많으니, 날씨가 좋은 오늘 하루만 알차게 보고 내려가자, 생각하며 1일권을 샀다. 20년 전에는 없었던 아이거 글랫쳐 곤돌라를 타니 투명한 벽을 통해 천길 낭떠러지가 그대로 펼쳐졌다. 알프스 산 위로 붕 떠서 날아가는 착각이 든다. 발바닥, 손바닥이 따끔거릴 정도로 무섭다가 몇 분 지나서야 바깥을 살펴볼 정도로 나아졌다. 순록일지 곰일지 모르는 야생 동물 발자국을 찾아보고 스키 타는 사람들을 부러운 눈으로 구경하며 동화 속 마을 같은 풍경을 연신 사진에 담았다.
곤돌라에서 내려 정상행 산악열차로 갈아탔다. 산 정상에 거의 가까웠을 때 큰 아이가 머리 아프고 속이 안 좋다며 옆 자리에 기댔다.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아이를 부축하여 매점 의자에 앉혀 쉬게 했다. 컵라면이 만병통치약인지, 라면 주문할 때가 되자 증상이 나아졌단다. 속을 든든히 채우고 전망대 투어를 시작했다. 전시공간, 얼음동굴, 초콜릿 가게 등 볼거리가 많았고, 작은 야외 전망대로 나갈 수도 있었다. 그곳에서 뼛속까지 파고드는 찬 돌풍을 맞으며 편안하게 오른 이곳이 실제로는 얼마나 거친 자연인지 뒤늦게 깨달았다.
스위스 국기가 꽂힌 포토존에 나갔는데 이번에는 나와 작은 아이에게 고산병이 도졌다. 어서 사진 찍으려고 서둘렀던 탓이었다. 실내 의자에 앉아 조금 쉰 뒤, 이번에는 포토존으로 느리게 걸어 올라갔다. 눈 시리게 파란 하늘, 있어야 할 구름 대신 온통 하얀 땅, 빨간 스위스 국기 앞에 길게 줄을 서서 '인생사진'을 남길 생각에 신이 난 사람들. 모두 날씨의 축복을 받은 터라 추운 줄도 몰랐다. 산소가 조금 부족한 것 빼고는 완벽했다. 왠지 졸리기도, 눈이 부시기도, 꿈같기도 했다.
다시 아이거 글랫처를 타고 중간 지점으로 내려와서 기로에 섰다. 피르스트를 과감히 포기하고 멘리헨 방향을 선택했다. 날씨가 좋으면 아이거, 묑크, 융프라우요흐 3봉을 가장 예쁘게 볼 수 있는 곳이라는 말에 솔깃했다. 그러나 예보가 딱 들어맞아 구름에 정상을 숨긴 봉우리를 볼 수 있었다. 스키 타는 사람들이 가득한 멘리헨에서 우리는 몇 안 되는 도보여행자였다. 곤돌라를 타고 예쁜 라우터브룬넨 마을로 내려와 열차로 갈아타고 뮈렌으로 향했다. 뮈렌에서 동네 구경을 하며 눈길을 걷다가 출출해져 '아무 호텔' 식당에 들어가 저녁으로 치즈 퐁뒤를 먹었다. 완벽한 첫날이었다.
둘째 날, 완벽한 우발 계획
인터라켄 부근과 북쪽 날씨가 좋지 않아 리기산이나 베른에도 갈 수 없었다. 인터넷과 여행서적을 뒤적이며 고모와 의논한 끝에 발레주에 위치한 알레취 빙하에 가 보기로 했다. 알레취 빙하 지역 관광안내 사이트(https://www.aletscharena.ch/en/activities/tour/winter-hike-moosfluh-chueestall-riederalp)에 방문하면 겨울철에 아이들과 함께 걸을 수 있는 경로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우리는 무스플루(Moosefluh)와 호플루(Hohfluh) 정상까지는 곤돌라와 스키리프트로 이동했고, 산 중턱에 위치한 곤돌라/리프트 탑승장 사이의 구간만 방한화를 신고 걸었다. 눈길이 많이 미끄럽지는 않았지만 디딜 때마다 발이 조금씩 빠지는 눈길을 걸으니 체력 소모가 커서, 등산용 막대기나 방한화에 덧신는 '스노 슈즈'가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레취 지역은 융프라우 지역만큼 볼거리, 즐길거리가 많은 곳이고 마을 풍경도 예뻤다. 산 정상부터 중턱에 이르는 스키장은 겨울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마을 부근에서는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스키캠프가 진행되고 있었다. 마을 길 일부는 스키를 타는 사람도 지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군데군데 비탈이 졌지만 산 중턱을 따라 걷기에 나쁘지 않았다. 겨울에 방문해도 1~2일 머물기 좋을만한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곤돌라를 타고 무스플루 정상에 올랐다. 구름 낀 마을과는 달리, 정상은 맑게 개어 눈 덮인 빙하를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융프라우 전망대가 거대하고 잘 꾸며진 '스타벅스' 같다면, 무스플루 전망대는 입소문 난 '동네 명물 카페' 같은 곳이었다. 나무로 된 노대(露臺)와 의자 몇 개가 전부였지만 멋진 풍경을 선사했다. 신이 알프스 산맥을 빚으신 후 큰 찰흙칼로 쓱 그어 완성한 것 같은 걸작이었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압도되어 말이 안 나왔고 심장만 조용히 쿵쾅거렸다. 조금 뒤 정신을 차리고 사진을 찍어댔지만 그 감동을 얼마나 담을 수 있었을까.
전망대에서 산 중턱까지 걸어갈 수 있는 하이킹 코스가 있었지만 아이들과 완주할 자신이 없어서 곤돌라를 타고 내려왔다. 곤돌라 하차장소와 가까운 레스토랑에서 소고기 슈니첼(고기에 빵가루를 입혀 튀겨낸 음식)로 허기를 달랬다. 다시 힘을 내어 호플루행 스키리프트를 타러 걸어갔다. 가는 길에 햇살이 좋아서 의자에 앉아 광합성도 하고, 큰 아이 양말이 젖는 바람에 새 양말을 사서 갈아 신기기도 했다. 정상으로 가는 스키리프트는 정선 하이원 스키장에서 탔던 스키리프트의 몇 배로 오금이 저렸다. 호플루에서 빙하 끝자락을 다시 봐도 대단했다.
셋째 날, 로이커바트 온천에서 차별을 생각하다.
예보와 달리 날씨가 좋지 않은 체르마트 대신 로이커바트 온천으로 향했다. 이 지역에 온천이 여러 개 있는데 구글평이 좋은 로이커바트 테름을 선택했다. 기차에서 내려 온천이 위치한 산골 마을까지 구불구불 버스를 타고 오르는 길이 좋았다. 겨울이라 앙상해 보였지만, 햇살이 잘 드는 산비탈 일대가 포도밭이었다.
물놀이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겨울철 설산을 바라보며 수영을 하고 워터 슬라이드도 타며 신나는 시간을 보냈다. 어른들도 즐겁기는 마찬가지였다. 물속에서 거품이 뿜어져 나오는 노천탕, 냉온 족욕탕, 습식 사우나로 옮겨 다니며 피로를 풀었다. 앞서 파리에서 6일, 파리에서 스위스로 이사하느라 1일, 스위스에서 2일을 보냈으니, 한국 집을 떠나온 지 10일째였다. '울릉도 물개 소녀'였던 친정 고모가 멋을 한껏 내 수영장 물살을 가르고 노천탕 거품 마사지도 받으시며 환하게 웃으셨다. 얼마 전 항암치료를 마친 후 짧게 자라 나오는 머리가 어색해 모자는 벗지 않으셨지만, 잠깐이나마 근심을 잊으신 듯 보였다.
노천탕에 몸을 담그고 여정을 돌이켜 본다. 좋았던 시간이 더 많았지만 기분 상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온천에 입장하며 겪은 일이 탕 속에서 무언가 발에 걸린 것처럼 찝찝하다. 온천 입구에서 락커에 귀중품을 넣으려고 하다가 고물 락커가 동전만 먹어 버리고 먹통이어서, 직원을 찾아갔다.
"저기 있는 락커에 2유로를 넣었는데 작동을 하지 않아요. 도와줄 수 있나요?"
"그 락커는 좋지 않아요. 그거 쓰지 말고, 탈의실에 있는 걸 쓰세요."
위의 대화가 두세 번 반복되자 황당했다.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걸까, 알아듣기 싫은 걸까. 동전을 꺼내주거나 돈을 돌려달라는 나의 요구에, 한결같이 고물 락커를 쓰지 말라고 명령한다.
아이들이 옆에서 듣고 있다가 그냥 가자고 성화였지만, 오기가 발동했다.
"아뇨, 이미 돈을 넣었어요. 돈을 돌려받고 싶어요."
"(마지못해 한숨을 쉬며) 알았어요. 여기 있어요. (2유로 동전을 줌)"
기차나 곤돌라 매표소에서도 잘 따져보지 않으면, 할인 적용을 해 주지 않거나 안 내도 되는 아이들 요금을 물리는 경우도 있었다. 언어가 부족하면 이해력이나 지능도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건가. 인종이 다르면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이 다를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파리에서 스위스로 넘어오는 날, 객차 내부 짐칸에 우리 짐을 넣는데 워낙 짐이 많다 보니 자리가 부족해서 다른 사람의 가방 앞에도 짐을 두게 되었다. 잠시 후 한 남자가 득달같이 달려와서 짐 넣은 모양새를 보더니, 자기 가방 앞을 막았다고 침을 튀기며 "이렇게 하는 건 이기적이라고!"를 두 번이나 외치며 짐을 빼 갔다. 내가 여기 법도에 어긋나는 무슨 큰 잘못을 한 것인가 잠시 위축되었는데, 이후 스위스 여행을 다니면서 살펴보니 문제 되는 상황이 아니었다. 스위스에 사람이 아닌 자연을 보러 왔으니 너무 곱씹지 말자, 하면서도 생각날 때마다 어김없이 불쾌했다.
넷째 날, 리기산을 우습게 봤다가 큰코다칠 뻔했다
여행 기간 내내 루체른의 날씨 예보가 좋지 않아, 리기산 행을 포기했었다. 스위스 패스가 있으면 리기산 산악 열차, 곤돌라, 루체른으로 나오는 유람선이 모두 공짜라서, 적잖이 아까웠다. Meteo 앱에서 리기산이 위치한 'Arth'의 날씨와 리기산 정상 영상을 날마다 확인하고 있었는데, 오전에 잠깐 화창할 예정이란다. 신이 나서 일찌감치 숙소를 나섰다.
리기산을 오를 때에는 경사도 완만하고 다른 산에 비해 해발고도가 낮아 얕봤다. 그러나 정상에서 부는 바람은 스위스 여행 중 단연코 최고였다. 다른 산들은 높은 산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리기산 한 편에 펼쳐진 너른 평원 쪽에서 불어 올라오는 바람은 무척 거셌다. 정상에 있는 나무의 가지나 난간 철봉에는 '옆으로 자라는’ 고드름이 매달려 있어, 여기에서는 줄곧 세찬 바람이 분다는 걸 추측할 수 있었다.
강풍에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였는데, 정상의 거대한 안테나에 얼어붙어 있던 얼음조각들이 갑자기 우박처럼 떨어져 내렸다. 고모는 윗입술, 나는 정수리에 얼음조각을 맞고 서둘러 전망대 아래 기차역으로 내려왔다. 매점에서 육개장이 그리워지는 맛의 굴라쉬 수프를 빵과 함께 먹으며 몸을 녹였다. 기차에서 곤돌라로 갈아탄 후 마을길을 걸어 내려와 유람선을 탔다. 객실에서 커피와 코코아를 홀짝이며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호수에서 멀어지는 산을 바라봤다.
멀리서 보면 이렇게 예쁜데, 산악기차나 곤돌라가 없었다면 평생 저 산에 오를 엄두를 못 냈을 것이다. 남이 찍어 놓은 사진을 보고 아름다운 풍경에 반해서 그곳을 찾았지만, 정상에서 몇 발자국 옮기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내가 꿈꾸는 목표에 이르는 것도 이렇게 느껴질 때가 많다.
다섯째 날, 날씨가 선물한 휴식
전국적으로 눈이나 비가 내리고, 남부 루가노 인근만 화창했다. 인터라켄 숙소에서 루가노까지 편도 4시간 거리여서, 숙소 인근 튠 지역을 여행하기로 마음을 고쳐먹고 늑장을 부리며 숙소를 나섰다. 호숫가를 정처 없이 걷다가 유람선 탑승장이 닫혀 있어서 기차를 타고 튠(Thun)으로 향했다. 군사 요충지였다는 튠에서는 고성(Schloss Thun, https://schlossthun.ch/en/)이 볼만하다는 구글 리뷰를 발견하고 무작정 가 보기로 한 것이다. 스위스 패스가 있어서 무료로 입장했다.
수차례 공사를 통해 층을 쌓고, 지붕을 높이고 성곽 주변 건물을 보강했던 역사를 살펴볼 수 있었다. 불을 끄기 위한 물주머니, 생활용품, 무기류, 사람들이 먹고 버린 동물의 뼈 같은 유물을 보며 옛날 사람들의 생활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연회장, 감옥, 지붕에 이르기까지 구석구석 들어가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아이들은 죄수에게 채우던 칼과 족쇄를 직접 차 보기도 하고, 기사의 갑옷을 가까이서 살펴보고, 퇴장하며 기념품샵에서 구입한 목검으로 공터에서 칼싸움을 하며 즐거워했다.
성을 둘러본 후 잘 정돈된 도시의 풍경을 보며 방벽 인근을 산책했다.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은 강대국에 둘러싸여 침략과 지배를 경험했고, 독립을 얻고 지키기 위해서 그 옛날 요새를 짓고 방벽을 세웠던 것이다. 이 나라에서는 기차방송에서 자주 듣는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말고도 로만슈어까지 네 가지 언어를 사용한단다. 스위스에서 어떤 언어를 쓰는지도 모르고 순전히 알프스만 생각하고 이곳에 왔는데, 여기 사는 사람에 대해서도 알아봐야겠다.
여섯째 날, 최고는 마지막에 온다
뾰족한 산봉우리로 유명한 마테호른은 직접 오르지 못하고 근처 전망대나 다른 산에서 보게 된다. 여행기간 내내 체르마트 날씨가 화창해서 다른 명소를 우선하다가 마지막 날 오게 되었다. 체르마트는 구름 많고 흐렸지만, 마테호른 정상과 고르너그라트 전망대는 오전 몇 시간 동안 화창하다는 예보였다. 아이들에게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고 다 같이 일찍 잠들었다.
새벽 6시 첫 차로 인터라켄에서 출발하여 산악열차로 갈아타고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 도착하니 9시가 조금 지나 있었다. 산악열차 매표소에서 표를 살 때 깜빡하고 여행 카페에서 제공한 컵라면 쿠폰을 제시하지 않았다. 열차표에 "컵라면 무료 제공" 글씨가 찍혀 있지 않아, 산악열차 종착역 매점에서 1개에 약 8프랑(11,000원) 하는 컵라면을 제 값 치르고 사 먹었다.
전망대는 해발고도 3100미터에 있어서 약간 어지럽고 숨이 차기도 했다. 전망대 레스토랑에서 점심으로 굴라쉬 수프와 슈니첼을 먹는 내내 뾰족한 마테호른 꼭대기를 열심히 바라봤다. 배를 채우고 나서 가기 싫다는 애들을 어르고 달래어 '360도 전망대' 꼭대기에 올랐다. 4천 미터 봉우리들, 알레취에서 본 것과 비슷한 빙하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스위스 여행의 마지막 날답게 눈이 부셨다.
감사하며 다음 여행을 꿈꾸다
지난 6일을 돌아보니 감사하다. 화창한 날씨에 융프라우와 리기산의 정상에 섰고, 구름 위에 선명히 모습을 드러낸 마테호른을 보았다. 날씨가 좋지 않았던 날도 온천에서 쉬거나 숙소 가까운 곳에서 느릿한 하루를 보냈다. 계획에도 없던 알레취 빙하에서는 아름다운 산 마을에서 눈길을 걸으며 자연을 가슴속까지 느끼고 자연에 압도되는 경험도 했다.
누구 하나 아프거나 다치지 않았고, 곤돌라나 산악열차도 한 건의 사고 없이 운행되었다. 스위스는 공중화장실이 무료인 데다 우리 집처럼 깨끗하기까지 했다. 숙소도 따뜻해서 전기장판을 왜 가져왔나 싶을 정도였다. 숙소 근처 마트(Coop)에서 한 봉지에 2,600원이었지만 신라면, 안성탕면도 구할 수 있었다.
성장통으로 걷는 걸 힘들어하던 12살 막내도 열심히 걸어 주었다. 무서운 스키리프트에서 손을 부여잡고 아는 사람이라곤 '우리' 밖에 없는 타국에서 의지하며 14살 큰 아이와 다시 친해졌다. 음식을 잘하시는 고모가 계셔서 매일 솥밥, 멸치볶음, 된장찌개 등 고향의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여유로운 시간에는 고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언제 다시 이런 좋은 시간이 돌아올까, 꽃 피는 봄에 또 오자, 약속했다. 바쁜 일상과 멀어졌기에 근심, 걱정을 내려놓고 편히 지냈다. 남편이 한국 집을 지켜주었기에 든든했다. 이번 여행의 선물은 '감사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