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전지적 사춘기 시점
“엄마, 우리 반 친구 두 명이나 오늘 제주도 가서 학교 안 왔어요” 아이가 부러운 듯 말한다.
그렇게 모녀의 아슬아슬한 3박 4일 제주도 여행이 시작되었다.
그분(사춘기)이 오신 걸 깜빡 잊고 새벽 첫 비행기를 덜컥 예약해 버렸다. 아이는 요즘 잠춘기님과도 접선 중이시다. 그러니 세상 불만 다 가진듯한 표정으로 힘겹게 일어나는 아이에게서 귀찮음이 느껴진다.
난 직감했다. 쉽지 않은 여행이 될 것이란 걸 말이다. 그리고 다짐했다. ‘웃는 얼굴로 돌아오자’라고 말이다.
드디어 제주도 도착, 나는 들뜬 표정으로 ‘왤컴 제주’ 앞에서 아이에게 기념사진 한번 찍자고 카메라를 들이댔지만, 썩은 표정으로 대답을 대신하며 ‘팽’ 돌아선다. 아이의 표정에 하늘을 날던 나의 기분은 이내 추락한다.
사춘기의 전유물인 불만을 단단히 장착한 아이를 살살 달래 가며 계획에 맞춰 보고 먹고 했지만 아이의 기분은 매 순간이 롤러코스터다. 아무리 뇌가 리모델링되는 시기라고는 하지만 한없이 썩은 표정이었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행복해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인내심 테스트 중인 나를 발견한다. 인내심 테스트에 지고 싶지 않아 애써 고상한 척 아이의 짜증을 받아 주고 있지만 속은 부글부글 용암처럼 끓어 댄다.
아름다운 제주, 그렇지만 지금 사춘기 아이의 눈에는
황금빛 억새로 가득한 새별오름은 황량한 풀밭일 뿐이고, 오름에 오르는 것은 그저 내려오기 위함이며,
천지연 폭포는 그냥 떨어지는 물 앞에서 의무적인 감탄사를 연발해야 하는 의미를 찾지 못하는 귀찮음이다
말타기 체험은 동물학대고, 맛집 줄 서기는 음식에 나의 시간을 정복당하는 일일 뿐이다.
이러니 계획대로 움직여질 리가 만무했다. 그렇게 우리의 여행은 사춘기 시점에 맞춰진 채 이틀이 지나가 버렸다.
부글부글 끓던 나의 용암이 폭발한 건 여행 셋째 날,
전복을 먹으며 연신 맛있다는 감탄사를 연발하는 나와 달리 맛없다며 투덜대는 아이 앞에서 드디어 폭발하고 말았다. “이럴 거면 제주도 왜 오자고 했니? 네가 먼저 오자고 해놓고 이렇게 인상 쓰면서 같이 여행하는 사람 기분까지 망쳐야 하는 거야? 다른 사람 배려 안 하는 게 사춘기인 거면 그거 당장 갖다 버려”라고 마구마구 쏟아내 버렸다.
아이는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무심한 듯 한마디 던진다. “전 모르겠는데 제가 인상을 썼나요?”라고 말이다. 이런 아이의 반응에 식당 사람들은 나를 멀쩡한 애 잡는 계모처럼 봤겠지만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토라진 나의 표정은 사춘기 저리 가라 할 만큼 썩어 있었고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 날, 어스름한 새벽에 혼자 일어나 차를 몰고 성산 일출봉으로 향했다. 원래 계획은 아이와 함께 오를 계획이었지만 어제 일로 그러기가 싫었다. 정상에 도착하니 해가 떠오른다. 발길을 멈추고 떠오르는 해와 마주하니 눈물과 함께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의 벅참이 생각난다. ‘잘 자라고 있구나.’ ‘부모에게서 건강한 독립 중이구나’라는 생각에 순간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성산일출봉 아래 기념품 가게로 향했다. 어제 아이가 기념품 가게에서 사고 싶어서 들었다 놨다 하다 결국 사지 못한 선물을 샀다. 몰래 감춰뒀다가 여행이 끝난 후 ‘엄마와 함께 여행해줘서 고마워’라는 쪽지와 함께 아이에게 건네주려고 말이다. 그렇게 아이는 또 한 번 나를 성장시켰다.
사춘기의 단골 용어 “귀찮아, 싫어”는 엄마인 나를 참 무기력하게 만든다. 하지만 바꿔 생각해보면 이렇게 훌쩍 큰 아이가 어릴 때 호기심에 가득 차 그토록 하고 싶은 게 많았을 때 엄마인 나는 육아에 지쳐 아이에게 “귀찮아, 싫어”를 외쳐댔다.
그때 좌절하고 상처받았을 아이의 마음이 지금 아이라는 거울을 통해 나에게 비춰진다.
사춘기 아이로 인해 화나는 감정은 그렇게 미안한 감정으로 바뀌었다.
부모는 육아를 시작할 때 ‘나는 어른이니 완성됐다.’라는 전제하에 아이를 키운다. 아이를 잘 성장시키려고 수많은 노력을 하지만 정작 나의 성장은 생각은 하지 못한다. 육아는 결국 아이를 통해 내가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부모들이 그렇게 아이를 통해 키워진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