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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나 Nov 25. 2023

글쓰기 루틴이 어떻게 되시나요

글쓰기 버튼 클릭하기까지

나에겐 브런치 글쓰기가 아직 많이 어렵다.

우측 상단 글쓰기 버튼을 클릭하기까지 나름의 준비가 필요하다.


그동안 인스타그램이나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써 본 경험이 있지만 대부분 짧은 기록, 그리고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일기를 써왔다. 가끔 근황 사진 업로드를 가장한 허세 한 방울 섞인 글도 썼음을 고백한다.


특히나 인스타그램은 사진의 비중이 높다 보니 오히려 긴 글을 쓰는 것이 촌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사진 한 장 올리며 그 한 장을 그럴듯하게 정리한 짧은 글을 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직장 생활을 했음에도 직무 특성상 긴 호흡으로 써야 하는 보고 분석 자료나 보는 사람을 충분히 설득시킬 수 있는 제안, 품의서를 써본 경험도 거의 없다.


이런 내가 브런치의 글쓰기 버튼 한 번 클릭하기까지 나름의 루틴이 생겼다.


1. 음악을 고른다.

 - 그 순간의 기분, 날씨, 장소에 따라 플레이리스트는 매번 다르다.

2. 노트북을 펼친다.

 - 새로 샀다!

3. 각종 SNS 신규 게시물, 뉴스 기사를 훑어본다.

 - 분노의 글감 찾기

4. 글감을 정한다.

 - 사실 3번을 하기 전에 이미 정해져 있었다.

5. 심호흡하고 브런치에 접속한다.

 - 심호흡 왜 하는데, 비장하다 비장해.

6. 글쓰기 버튼을 클릭한다.

 - 이쯤 하면 진짜 써야 하는데.


우선 음악을 찾아 재생시킨다.

그보다 더 전에 귀에 에어팟을 꽂는 게 먼저겠다.


에어팟이 내 귀에 자리 잡았을 때 띵! 하는 연결음이 들려야 한다. 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이 콩나물이 아이폰 아닌 엉뚱한 디바이스와 연결되어 있단 뜻이다. 귀찮지만 직접 아이폰을 열어 콩나물과 나를 연결시켜준다.


그리고 얼마 전에 산 나의 새 노트북, 오로지 이 브런치 글쓰기만을 위한 핑계로 질러버린 뉴그래미를 펼쳐 전원 버튼을 누른다. 노트북 연다는 소릴 장황하게 써대는 이 한 문장만 봐도 글쓰기에 한참 더 훈련이 필요한 여자다.


인스타그램, 블로그, 브런치, 맘카페, 뉴스 기사를 읽으며 내 공감 사는 게시물을 찾는다.

블로그는 내가 애정하는 이웃 위주로, 브런치는 낯익은 작가명과 브런치에서 큐레이션 해주는 대로 맘카페는 시끌벅적한 인기글 위주로 관심을 갖고 읽는다.


이쯤 하면 글감이 정해져야 한다. 여기까지 했는데 글감이 없다면 오늘도 공친 날이다. 여러 핑계를 대며 남편에게 억지로 사주게 만든 새 고성능 노트북으로 웹 서핑만 실컷 하다 끝난 셈이다.


드디어 정한 글감의 제목을 대충 떠올린다. 글쓰기 버튼을 클릭하여 본문창에 뭐라도 쓴다. 제목 후보들을 맨 윗 줄에 늘어놓고 써 내려간다. 마감 기한도 없고 누가 내 글을 애타게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제목 정도야 다 쓰고 나서 정해도 아무 상관없다.


내가 글쓰기 초보이기 때문에 늘 어렵고 막막한 줄 알았는데 얼마 전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강원국 작가님 강연을 봤다. 평생 글을 써온 그분도 아직까지 글쓰기가 어렵다고 한다.

이 분도 글 한편 쓰려면 미루는 날도 많고 마감일이 코 앞에 까지 와 어쩔 수 없이 시작할 때에도 있다고 한다. 청하 한 병과 진한 에스프레소까지 들이켜야 시작할 수 있는 날이 많다고. 그렇게 까지 준비를 마쳤으면 키보드를 두드려야 하는데 마지막 관문으로 안경을 닦는다고 하니 이 시점에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영상을 보고 나니 한결 안심이 됐다.

대 작가와 나 사이에 공감대가 생긴 것 같아 반가웠다.

글쓰기의 대가도 글쓰기가 어렵다는데 내가 어려워하는 것이 답답한 일은 아닌 것 같다.


강원국 작가님이 코 앞에 다 와서도 안경을 닦는 것처럼 나는 글을 쓰기 위해 마음을 먹기까지 최종으로 귀에 에어팟을 꽂는 일, 그 일이 제일 어렵다.

이 허들만 넘어서 쓰기 시작하면 완성된 글이 아니어도 작가의 서랍에 쌓아 둘 수 있으니 말이다.


엊그제 아이와 서점에 들렀다 나오는 길에 처음으로 고백을 했다. 남편에게도 취미생활을 늘리려고 노트북이 필요하다고 했지 긴 말은 안 했는데.


“엄마 꿈이 하나 생겼어. 이런 서점에 엄마가 쓴 책이 누워있는 거, 작가가 되고 싶어. 엄마 40대에 꼭 이루고 싶은 꿈이야. 40대에 못하면 50대가 되서라도.”


아들 : “………해봐! “


망상에 가까운 꿈이라도 쉽게 이루지 못해 백발 할머니가 돼서 혼자 브런치를 하고 있을지언정 스스로 움직여 오래 즐길 수 있는 일, 하고 나면 잘했다 싶은 일이 되고 싶다.

수십, 수백 편의 쓰레기를 생산해 낼지언정 프로처럼 나만의 루틴을 만들었으니 그냥 즐기며 꾸준히 하면 된다. 아무도 말리는 사람은 없으니까.




여러분은 어떤 루틴이 있으신가요? 루틴이라는 것이 생기니 진짜 작가가 된 듯한 착각을 일으키네요.

마음만은 프로가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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