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알고 있었네
회식의 계절이 왔다. 직장 생활 1n연차에게 연말은 곧 회식 대목이다.
나는 회식을 싫어한다. 언제부터 싫어했는지 물으면 처음부터 싫었다고 하겠다. 불편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식사와 이어지는 술자리를 즐기는 법을 몰랐다. 그 자리를 즐길 수 있는 법을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고 애써 배울 노력조차 없었다. 그렇다고 꿔다 놓은 보릿자루나 대놓고 싫어하는 부적응자처럼 앉아있지는 않았다. 속내를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적당히 어울리는 사람으로 보일만큼은 행동했다.
나는 몸에 알코올이 들어가면 온몸이 빨개지고 호흡도 가빠지는 체질을 갖고 있다. 그래서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나는 회식 자리는 나에게 곤혹이었다. 회식에 참석하면 시간이 빠르게 흘러 끝나기만 바랬다. 어떤 날은 회식하는 식당의 벽시계 바늘을 옮겨놓고 싶은 날도 있었다. 물론 소모임이나 또래들과 자발적으로 하는 회식은 즐거운 마음으로 참석해 즐겼다.
내가 극혐 했던 회식은 세대를 뛰어넘는 상사들과 함께 하는 그 회식이었다. 그러니 코로나 대유행 시기에 회식 문화가 사라졌다시피 했으니 내가 얼마나 좋았겠는가. 코로나도 사라지고 쓸데없이 모이는 모든 회식도 살아지길 바랐다.
몇 년 전 육아 휴직 후 복직 했을 때 MZ세대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다. 90년대 생들이 본격적으로 사회에 나오는 시점이었고 그들을 파해친 뉴스 기사와 칼럼, 도서도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 당시 베스트셀러 중 한 권이 "90년대생이 온다"라는 책으로 기억한다.
코로나 팬데믹은 끝이 났지만 내 바람과 다르게 회식은 스멀스멀 부활하기 시작했다. 이제 직장 내 우리 팀에도 MZ들이 절반을 이루는데 예전처럼 잦은 회식은 없겠지 싶었다. 내가 글로 배운 MZ는 워라밸을 중시하고 갓생을 사느라 바빠 퇴근 후에도 할 일들이 많은 사람들. 강요하는 문화는 딱 질색인 세대들이니 이들이 주를 이루는 한 회식은 예전 같이 부활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MZ는 회식을 싫어할 것이라는 것은 내 착각이었다. 가까워진 후배 MZ들과 대화를 나누다 회식에 대한 MZ들의 생각을 들어볼 기회가 있었다. 물론 워라밸 지향하고 퇴근 후 보내는 개인 시간도 중요하지만 회식이 싫지만은 않은 이유가 있었다.
회식 자체가 무조건 싫은 것은 아니다.
음주를 강권하지 않아 즐기며 술을 마실 수 있다.
분위기가 수평적인 편이라 충분히 견딜만한 시간이다.
1차에서 마무리되니까 크게 피곤하지 않다.
비싼 음식점이나 핫플을 가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아, 무조건 싫지 않은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 그 나이 때의 나와는 관점이 많이 달랐다. 이제와 얘기지만 성격 파탄자나 사회 부적응자도 아닌 내가 회식이 싫을 수밖에 없던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나의 진짜 MZ 후배들은 이 글을 볼리 없지만 그래도 편한 말투로 변명을 해보겠다.
음주를 막 권했어. 입사 초기에는 상사에게 받은 소주는 한 번에 털어 넣는 게 기본 예의범절이었다고.
몇 년이 흐르니 소맥이라는 것이 유행하더라?
그걸 또 적당한 비율로 요란하게 섞어주면 그 사람이 회식 끝날 때까지 스타가 되는 거야.
1차로 끝나는 회식이 뭐야? 2차, 3차까지도 필참이었어. 2차까지만 참석하고 조용히 귀가한 날도 많았어. 그러면 뒤끝 있는 상사들은 왜 일찍 갔냐며 지난 밤 회식을 언급하며 나를 곤란하게 했어. 밤 11시 넘은 시간이 일찍이라니.
수평이라는 단어도 되게 생소하네.^^ 그 당시 나는 이런 말을 들어보지도 써보지도 못했어. 수평은 벽에 액자 걸 때나 쓰는 말인 줄 알았지. 회식 중에 꼰대 상사와 아무리 제일 먼 곳에 떨어져 앉아도 그 꼰대는 돌고 돌아 내 앞에 까지 오게 되더라고. 말은 또 얼마나 많은지 적당히 끊는 사람은 못 본것 같아. 화장실이 가고 싶어도 다리가 저려도 몸을 적당히 꼬아가며 그들의 잔소리와 허풍이 끝나길 기다려야 했다고.
그래, 라떼도 회식 날 비싼 식당도 제법 갔지. 그런데 핫플은 아니었어. 비싼 곳도 결국 높은 분들이 즐겨 찾는 그들의 단골 식당 중 한 곳이었고 비싸던 싸던 메인은 늘 알코올이었지.
그때의 나는 눈치도 센스도 되게 없었나 봐. 가만 보니 요즘 MZ들은 눈썰미는 있어서 선배나 상사가 어떤 유형인지 간파한 애들이 제법 있더라고. 적어도 우리 팀 MZ들은 그 자리를 즐기되 선을 넘진 않는 것 같아.
이런 말하는 나도 이제 꼰대가 다 됐네. 요즘 애들 참...ㅎㅎ 그 옛날 이집트 파피루스에 '요즘 애들 버릇없다'라고 적혀 있다잖아. 세대 갈등은 인류가 존재하고부터 계속 돼 오고 있는 거야. 어쩌면 눈썰미와 대안 없이 그저 회식을 싫고 불편한 자리로만 대해왔던 나와 달리 요즘 MZ들은 그때의 나보다 나은 것 같아. 그들이 먼저 "팀장님 회식 언제 하나요"라고 재촉하는 것만 봐도 말이야.
별의별 회식 에피소드가 많다. 폭설 내린 한 겨울에 회식 참석을 위해 다리 다쳐 짚고 다니던 목발을 내던지고 깁스에 비닐봉지를 칭칭 감고 왔던 이 부장님 에피소드도 기회가 되면 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