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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나 Dec 01. 2023

따뜻함과 멋은 공존할 수 없다는 사실

따뜻한데 힙하게 입고 싶어

한 겨울에도 추운 줄 모르고 얼죽코를 고집하던 때가 있었다. 추위에 강했던 것이 아니었다. 코트를 걸친 내 모습이 원하는 코디에 가까우니 이 악물고 입고 다녔던 것이다. 그랬던 내가 이제 겨울 코트와 멀어지고 있다. 더 이상 나에게 따듯함과 멋은 공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해가 지날수록 추위에 약해지는 것도 있다. 얼마 전 친구와 나눈 수다에서 우리네 엄마들이 겨울에 왜 모자를 쓰는지 이제 이해가 된다고 했다. 나도 한여름에는 기미 주근깨를 필사적으로 막아야 하니 모자를 쓴다. 이것과 별개로 겨울에 쓰는 모자는 남다른 감각을 가진 멋쟁이들의 소유물이라 생각했다. 이제는 멋을 떠나 생존을 위해 머리에 뭐라도 뒤집어써야 할 것 같다.


듣기만 하던 '멋 부리다 얼어 죽는다'는 잔소리를 내가 할 나이가 됐다. 최근 겨울 인기 아이템 중 하나가 숏패딩이다. 나도 그 유행에 합류하고 싶은데 선뜻 구매까지 이어지지 않는다. 스타일을 떠나 그 짧뚱한 기장을 보면 이게 겨울 아이템이 맞나 싶다.


겨울 강추위에 맞서기 위한 내 선택은 결국 롱패딩으로 향한다. 롱패딩은 패션 아이템이 아니다. 생존 아이템이다. 롱패딩으로도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한파에는 어그부츠까지 신게 된다. 종아리까지 오는 어그부츠를 신는 날엔 조선시대 영의정이 따로 없다. 어그부츠를 이렇게 밖에 연출해내지 못하다니. 내 코디 능력의 문제일 뿐 어그부츠는 아무 잘못이 없다.


쿨톤, 웜톤 따질 거 없이 그저 따듯한 게 최고인 계절. 또 하나의 생존템은 내복이다. 때론 히트텍이라 부르는데 누가 지었는지 정말 잘 만든 상품명이라 생각한다. 히트텍은 특정 브랜드의 상품명이지만 내복 착용에 대한 일말의 부끄러움과 민망함을 가려줄 대명사가 됐다. 다시 한번 발열 내복 만만세다.


겨울에는 목덜미 온기를 가두려 풀어헤쳐놓은 머리카락조차 내 맘 같지 않다. 목도리까지 두른 날이면 이놈의 머리카락들은 정전기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 있다. 바람까지 불면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산발이 된다.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생기발랄하던 나는 사연 있어 보이는 여자가 돼버린다. (이래서 엄마들이 모자를 쓰는구나.)


이렇듯 겨울은 추위를 몰라야 멋쟁이로 완성되는 계절 같다. 나에게는 더 이상 따뜻함과 멋은 공존할 수 없는 것일까.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즐겨 찾는 쇼핑몰 장바구니에는 결제를 기다리는 겨울 아이템이 한가득이다. 고민은 배송만 늦출 뿐인데 이것들을 다 어찌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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