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는 7시인데 입장은 5시부터 시작되었다. 돌비극장은 여기가 미국인지 한국인지 헷갈릴 정도로, 푸른 영시들의 세상이다. 뚱이와 나도 푸른 옷을 입으니 어느새 '영웅시대'가 된 듯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LA영시분들이 준비한 플래카드를 분주하게 나눠주는 모습이 보이고, 푸른 물결에 당황한 미국 가드들이 뭐라고 뭐라고 영어로 제지를 하지만, 애처로운 그의 목소리만 쉬어갈 뿐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는지 재빠르게 한국어를 배워온 가드가 소리친다.
"입구는 이쪽!"
난생처음 무대 앞쪽 2번째 줄에 앉게 된 엄마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극장으로 입장했고, 뚱이와 나는 맨 꼭대기 5층으로 향한다. 헥헥헥. 계단을 올라가는 게 정말 힘들군. 발을 잘 못 디디면 그대로 1층으로 굴러 떨어질 것만 같은 비탈진 5층, 그곳에 우리의 자리가 있다.
낮술의 영향인지, 이 흥분된 순간에 눈꺼풀이 내려온다. 주위가 웅성웅성할수록 포대기에 싸매어진 아이처럼 노곤노곤 잠이 온다. 시작은 하는 걸까. 사람들이 속속 입장을 하는데 나는 눈을 감는다.
비몽사몽 중인데, 관객들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꺅~~~
임영웅 콘서트를 알리는 트레이드 마크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60부터 시작된 스크린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더니 드디어 10이 보이자, 더 큰 소리로 카운트가 시작된다.
옴마야. 두근두근. 잠은 그새 어디론가 달아난다.
10, 9, 8, 7,....... 3! 2! 1! 꺅~~~
스크린이 올라가자 어디선가 한 줄기 빛이 쏟아지더니 저기, 무대 한가운데, 하얀 슈트를 입은 그가 서있다.
"로스앤젤레스"
그가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자,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지고, 경쾌한 트롯으로 첫 무대가 시작된다.
빠라라 빰빰 빠라라, 빠라라 빰빰 빠라라~~~ 사랑의 ~~~ 보~금자리~~~~
신난다. 신나. 임영웅이 마이클잭슨이었나. 그동안 춤 연습에 매진했는지 마이클 잭슨 같은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은 그다.
그런데 이 순간, 나는 왜 눈물을 흘리고 있나. 한 번 터진 눈물은 끝도 없이 흘러내린다. 아우 창피해. 나 이제 입덕하는 거야?
트롯으로 시작된 오프닝이 잔잔한 발라드로 넘어가자, 이번엔 설움에 북받친 듯 눈물이 흘러내린다. 뭐야. 이게 바로 3초의 기적인가. 아니야 아니야. 가사가.... 다 내 얘기라 울고 있을 뿐이야...
머리에 둘렀던 파란 손수건을 풀러 간만에 화장한 눈두덩이를 찍어내니 파란 손수건이 온통 거무죽죽하다.
정신을 돌릴 틈도 없이 울려 퍼지는 노래와 그의 입담에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알 수가 없다. 오랜 기간 전국 방방곡곡 노래 교실을 다녔다더니 어머님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임영웅이다.
곧 그가 무대를 내려와 팬들 옆으로 다가가니 여기저기서 그에게 손을 뻗친다.
그 순간, 아뿔싸. 흥분한 어머님 한 분이 그의 손을 잡기 위해 가드를 뚫고 질주하다가 벌러덩 나자빠진다.
노래하다 말고 놀라 어버버 당황하던 그가 어머님의 손을 잡아 일으키자, 극장 안이 온통 떠나갈 듯하다. 아쉽게도 안전상 이유로 그는 재빨리 무대로 돌아가버린다.
앞 줄에 앉은 내 엄마는 제작해 온 현수막을 벌서듯 들고 있다. 콘서트마다 팬들의 현수막을 읽어주며 소통을 하는 임영웅. 제발 한 번만 읽어줘요!
습관적으로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그, 그리고 맨 앞줄이지만 무대 왼편에 자리한 엄마. 아픈 팔을 번쩍 든 손이 무색하게 그는 현수막을 지나친다. 그래도 그에게 소리 없는 엄지 척을 받았다고 하니 그것으로 됐다는 엄마.
도대체 장르가 뭐야.
트롯으로 시작된 노래가 발라드로, 락으로, 도대체 장르를 알 수가 없다.
잘한다 잘한다. 노래를!
옆을 보니 어느새 뚱이도 머릿수건을 풀어 눈물을 닦아내고 있다.
"아버지란 노래가 너무 슬퍼...." 흐흐흐
"난 60대 노부부" 흐흐흐
멀리 한국에서, 그리고 미국 전역에서 온 영웅시대를 위해 끝까지 신청곡을 불러주던 그.
임영웅은 마음 따뜻한 훈남. 맞다 훈남. 노래 잘하는 훈남. 노래로 사람 울리는 훈남. 런던보이라더니 오늘은 LA보이가 된 훈남말이다.
콘서트가 끝나고 다시 차 안에 속속 모여든 어머님들은 콘서트 얘기에 정신이 없다. 누구는 손을 잡았다. 누구는 임영웅이 현수막을 읽어줬다. 그야말로 10대 소녀들이 차 안에 가득 차 있다.
흥분이 가라앉질 않는다. 그의 노래가 목구멍을 타고 나와 흥얼흥얼 거린다. 그의 환영이라도 눈에 달라붙었는지 나도 모르게 연신 그의 춤동작을 따라 한다.
"출출한데 라면 먹으며 맥주나 한 잔 하자!"
낮부터 같이 다니기 시작한 영시 언니 두 명과 뚱이, 나, 그리고 엄마. 새벽 2시가 되어도 끝이 날 줄 모르는 '임영웅수다'가 계속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