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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Feb 06. 2024

나는 그렇게 다른 아이가 되었다

나는 굉장히 소심하고 어디 가서 말도 못 하고 심지어 가게에 들어가 돈을 내고 물건을 사는 것도 힘들어하는 아이였다. 지금은 내가 정말 그런 아이였다고? 나 스스로도 놀라고 있지만 분명 나는 그랬다.


명절에 친척들이 모이면 큰 집에 아이 넷, 우리 집에 아이 셋이니 그만한 또래의 아이들이 일곱이나 되었다. 누가 시켰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른들은 꼭 한 사람씩 나와서 노래를 부르라고 시켰는데 나는 그게 무척 싫었다. 목구멍이 막혔는지 시원하게 목청을 높여본 적이 없던 나는 학교에서도 음악시간이면 벌벌 떨던 아이였다. 그런 나에게 한 사람씩 앞으로 나와 노래를 부르는 시간은 끔찍한 시간이었다.


그래도 앞으로 나가긴 나가야 한다. 그거라도 해야 한다. 그렇다고 쭈뼛거리며 앞으로 나가서 노래를 하냐면. 그건 아니었다. 가늘게 소리를 내보다가 목소리보다도 먼저 나오는 눈물방울에 목이 컥 막혀버려서 노래는 둘째치고 나의 소심함에 몸서리치며 소파 구석에 머리를 박고 꺼이꺼이 울었다.


창피하고 민망하고 부끄럽고 내가 싫고 그런 비슷비슷한 온갖 감정들이 내 등에 덕지덕지 붙어서 내 꼴을 내가 보고 싶지 않아 더 서럽게 울었다. 그러면 어디선가 아빠의 소리가 들려왔다. 제대로 노래도 못하는 바보라고 나를 질책하며 씩씩대는 소리가. 그러면 난 그게 또 너무나 서운해서  눈물이 눈물을 불러 모았다.


그때 작은 목소리를 가진 어른이 소파구석으로 슬며시 다가오며 괜찮냐며 나를 다독인다. 노래를 잘 부른 아이들에게만 주는 500원짜리 동전을 내 손에 꼭 쥐어주며 내 등을 토닥거린다. 우는 와중에도 학 한 마리가 날아가며 남겨놓은 반짝거림을 바라보면 이내 눈물이 쏙 들어가며 진정이 되곤 했다.


그 기억은 나를 더욱 노래 못하는 아이로 만들었다. 음악실기시간은 악몽이었고 중1 때까지 울었다. 우는 내 모습이 미치도록 싫어서 음악시간이 점점 더 괴로워졌다.


이랬던 내가 어느 명절 제사상 앞에서 갑자기 히죽거리며 웃고 있다. 어른들이 모두 절을 마치고 향불이 피어오르는 상 앞에서 아이들은 저마다 절을 한다. 누구에게 하는 절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간절히 빌고 다. 나 노래 좀 잘하게 해 주세요. 어디 나가서 당당하게 말 좀 잘하는 아이로 만들어 주세요. 하나님도 모를 나이에 만나 본 적도 없는 조상님에게 열심히 다. 열심히 빌고 빌던 나는 나의 비는 행위에 몰두했는지 그만 제사상 앞에서 앞 구르기를 하고 다. 그리고 급기야 향불이 뒤집어 엎어진다.


할머니가 집에 가신다고 먼저 일어나셨다. 우리는 큰집에 모여 제사를 지냈는데 아이들끼리 더 놀고 싶은 마음을 알아차린 것인지 엄마, 아빠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할머니를 꽤나 좋아했던 난 가시는 길을 배웅하고 싶어 쫄래쫄래 할머니를 따라나섰다. 길가에서 택시를 기다리는 할머니를 배웅하던 사람은 나뿐이었나. 왜 나 혼자였다고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상하게 신이 났다. 왜 신이 났지?


너무 신이 나서 할머니에게 뭐라도 해드리고 싶었다. 집에 가기 위해 택시를 기다리는 할머니, 그 옆에서 신이 난 나. 그 순간 할머니를 향해 길바닥에서 큰 절을 했다. 사람들이 쳐다보든 말든 아무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그저 이 신나는 감정을 할머니에게 드리고 싶은데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명절이니까 최고 어른인 할머니에게 절을 드림으로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한참을 깔깔거리며 택시가 올 때까지 몇 번이나 절을 했는지 모른다. 택시를 타고 멀어져 가는 할머니를 보며 그 뒤로도 계속해서 절을 했다. 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마음이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천방지축이 되었다. 그렇다고 발표가 매끄럽게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더 이상 노래를 하거나 발표를 할 때 울지 않았다. 그날 조상님이 나의 소원을 들어주신 걸까. 향불을 엎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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