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부턴가 화장실 천장에 작은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아휴... 샤워하면서 샤워기를 천장에 쐈구만. 본능적으로 아이를 탓하는 나.
그걸 또 본능적으로 제 탓으로 돌리는 아이.(찔리니?)
"샤워하다가 샤워기가 하늘로 올라갔어."
그래. 다음번엔 조심하도록 하자.
쓱쓱 천장을 닦아낸다.
똑똑 똑똑...
천장의 물방울은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은 셋이 된다.
사이도 좋지 정확하게 한 라인에 늘어서 있는 물방울들.
너 또!
아니다. 이상하다. 닦아도 닦아도 물방울이 계속 생긴다.
심지어 물방울이 이동한다. 분명 샤워기 물줄기가 거꾸로 뻗쳐올라가 닿을 거리에 있던 물방울은 어느새 샤워기와 제일 먼 거리에 있는 변기 위 쪽으로 이동한 뒤다.
똑똑!
앗. 차가워.
변기에 앉았는데 벗겨진 엉덩이 위로 물방울이 톡 하고 떨어진다. 앗! 소리가 절로 나온다. 뭐지. 저 물방울. 설마 윗 층에서 물이 새는 건 아니겠지. 그럼 그야말로 대공사가 펼쳐질 것이고 나는 그 소음을 고스란히 들어야 하고 우리 집 천장엔 물자국이 번지고... 아... 상상하고 싶지 않다.
띠리리리링.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하자 주임님이 바로 오셔서 확인을 해주신다. 이상하네요. 물이 떨어지는 그 자리는 말라있어요. 귀신이 곡할 노릇. 물이 어디서 새는 건지. 아무리 둘러봐도 내장기관처럼 꼬인 배수관은 뽀송하게 말라있다.
똑똑.
앗. 저기 위층 천장 부근에 작은 물방울 하나가 보여요. 그 물방울이 떨어져 저 라인을 타고 내려와 변기 윗부분 천장에 맺혀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나 봐요.
잘 보이지도 않는 물방울 하나가 어떤 경로로 한 방울씩 흐름을 놓치지 않고 변기 위 천장까지 흘러와 결국은 맺히고 맺히다가 내 엉덩이에 한 방울을 톡 하고 떨어뜨리는 건가.
하필 다른 곳도 아닌 발가벗겨진 엉덩이에.
엉덩이가 아니었다면 조금 더 참고 지켜볼 수 있었을까.
며칠 뒤 기술자분이 우리 집에 다녀가셨고 윗집에도 다녀가셨다. 이제 곧 대공사가 시작되겠구나. 그러고 나서 화장실 천장을 보니 얼룩덜룩하다. 오랜만에 천장을 닦아내고 물방울에게도 안녕을 고한다.
천장을 닦아낸 이후 물방울이 더 이상 맺히지 않는다. 신기하다. 난 인사만 했을 뿐인데. 기술자분이 뭘 하셨길래.
평소에는 생각도 못했던 작은 물방울 하나가 몇 날 며칠 신경 쓰였다. 이제 해방인가.
관리사무소예요. 윗집에 올라갔더니 욕조 수전에서 물이 새더라고요.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한 날과 비슷한 날부터 물이 샜다고 해서 수전을 고치고 두고 보는 중입니다. 어떠세요?
아. 더 이상 물방울이 맺히지 않아요. 다행이네요.
한 번도 보지 못한 윗집이 며칠 동안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들의 어떤 불편 하나가 나에게도 불편함을 주었다. 하필 불편한 부위가 천장과는 상관없어 보이는 엉덩이였고 힘없는 작은 물방울 하나가 원인이었다.
문득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문을 꼭 닫고 있어도 우린 수많은 벽속에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구나. 어떤 불편함은 참을만하다. 미세하게 느껴지는 진동벨소리, 어찌할 수 없는 강아지 발톱소리, 아이들의 우당탕탕 발소리. 그러나 어떤 불편함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도 있다. 조용하고 힘없고 작았지만 일주일 넘게 나를 괴롭혔던 물방울처럼.
갑자기 사라진 것에 대한 흔적이라도 남겨 둔 것인지 변기엔 어느새 잘 지워지지 않는 누런 물자국이 남았다. 뽀송하게 말라버린 천장을 보니 그런 일이 있었나 새삼스럽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