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다 Feb 15. 2024

어떤 불편함

어느 날부턴가 화장실 천장에 작은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아휴... 샤워하면서 샤워기를 천장에 쐈구만. 본능적으로 아이를 탓하는 나.


그걸 또 본능적으로 제 탓으로 돌리는 아이.(찔리니?)

"샤워하다가 샤워기가 하늘로 올라갔어."

그래. 다음번엔 조심하도록 하자.

쓱쓱 천장을 닦아낸다.


똑똑 똑똑...

천장의 물방울은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은 셋이 된다.

사이도 좋지 정확하게 한 라인에 늘어서 있는 물방울들.


너 또!

아니다. 이상하다. 닦아도 닦아도 물방울이 계속 생긴다.

심지어 물방울이 이동한다. 분명 샤워기 물줄기가 거꾸로 뻗쳐올라가 닿을 거리에 있던 물방울은 어느새 샤워기와 제일 먼 거리에 있는 변기 위 쪽으로 이동한 뒤다. 


똑똑!  

앗. 차가워.

변기에 앉았는데 벗겨진 엉덩이 위로 물방울이 톡 하고 떨어진다. 앗! 소리가 절로 나온다. 뭐지. 저 물방울. 설마 윗 층에서 물이 새는 건 아니겠지. 그럼 그야말로 대공사가 펼쳐질 것이고 나는 그 소음을 고스란히 들어야 하고 우리 집 천장엔 물자국이 번지고... 아... 상상하고 싶지 않다.


띠리리리링.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하자 주임님이 바로 오셔서 확인을 해주신다. 이상하네요. 물이 떨어지는 그 자리는 말라있어요. 귀신이 곡할 노릇. 물이 어디서 새는 건지. 아무리 둘러봐도 내장기관처럼 꼬인 배수관은 뽀송하게 말라있다.


똑똑.

앗. 저기 위층 천장 부근에 작은 물방울 하나가 보여요. 그 물방울이 떨어져 라인을 타고 내려와 변기 윗부분 천장에 맺혀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나 봐요.


잘 보이지도 않는 물방울 하나가 어떤 경로로 한 방울씩 흐름을 놓치지 않고 변기 위 천장까지 흘러와 결국은 맺히고 맺히다가 내 엉덩이에 한 방울을 톡 하고 떨어뜨리는 건가.

하필 다른 곳도 아닌 발가벗겨진 엉덩이에.

덩이가 아니었다면 조금 더 참고 지켜볼 수 있었을까.


며칠 뒤 기술자분이 우리 집에  다녀가셨고 윗집에도 다녀가셨다. 이제 곧 대공사가 시작되겠구나. 그러고 나서 화장실 천장을 보니 얼룩덜룩하다. 오랜만에 천장을 닦아내고 물방울에게도 안녕을 고한다.


천장을 닦아낸 이후 물방울이 더 이상 맺히지 않는다. 신기하다. 난 인사만 했을 뿐인데. 기술자분이 뭘 하셨길래.

평소에는 생각도 못했던 작은 물방울 하나가 몇 날 며칠 신경 쓰였다. 이제 해방인가.


관리사무소예요. 윗집에 올라갔더니 욕조 수전에서 물이 새더라고요.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한 날과 비슷한 날부터 물이 샜다고 해서 수전을 고치고 두고 보는 중입니다. 어떠세요?


아. 더 이상 물방울이 맺히지 않아요. 다행이네요.


한 번도 보지 못한 윗집이 며칠 동안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들의 어떤 불편 하나가 나에게도 불편함을 주었다. 불편한 부위가 천장과는 상관없어 보이는 엉덩이였고 힘없는 작은 물방울 하나가 원인이었다.


문득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문을 닫고 있어도 우린 수많은 벽속에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구나. 어떤 불편함은 참을만하다. 미세하게 느껴지는 진동벨소리, 어찌할 수 없는 강아지 발톱소리, 아이들의 우당탕탕 발소리. 그러나 어떤 불편함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도 있다.  조용하고 힘없고 작았지만 일주일 넘게 나를 괴롭혔던 물방울처럼. 


갑자기 사라진 것에 대한 흔적이라도 남겨 둔 것인지 변기엔 어느새  지워지지 않는 누런 물자국이 남았다. 뽀송하게 말라버린 천장을 보니 그런 일이 있었나 새삼스럽지만.



작가의 이전글 사소한 나의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