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의 추억이 참 많다. 일하느라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나와 동생들을 키워주셨으니 말이다. 특별한 여행의 기억보다는 평범한 일상을 함께 했던 시간이 참 소중하다.
20년 전 수능 성적표가 나오던 날, 시험을 못 봐서 속상해하던 나에게 할머니는 “괜찮다. 괜찮다” 하셨다. 하지만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퉁퉁거렸다. 그래도 할머니는 “괜찮다. 괜찮다” 하셨다. 예전에는 몰랐다. 할머니의 위로가 아직도 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건 할머니의 사랑이었다.
올해 92살이 되신 할머니는 작년부터 요양원에서 지내신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요양원에서 지내시는 할머니를 대면면회로 뵐 수 있는 기회는 그리 흔치않다. 그렇기에 대면면회가 가능하다는 공지사항이 올라오면 빠른 속도로 주말 면회를 예약한다.
나는 서울에 산다. 친정과 할머니의 요양원은 천안에 있다. 할머니를 뵙는 날이 되면 아침부터 설렌다. 카니발에 아이들을 태우고 열심히 운전해서 할머니를 뵈러 간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면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가까운 곳은 아니지만 할머니를 뵙고 손을 잡고 안아드릴 수 있다면 그 정도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게다가 증손자, 증손녀를 보시고 이름도 불러주시며 가끔씩 웃으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뵈면 이 세상 그 어떤 효도를 한 것 같아 뿌듯하다.
이 뿌듯함을 느끼려고 하는 건지, 내 마음의 효심이 갸륵한 건지. 주말에도 바쁘다. 기회만 돼서 할머니를 뵐 수만 있다면 자주 가야 할 곳이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땐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할머니를 위해서 해 드리고 싶은게 많았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할머니께 예쁜 옷을 사드렸고, 보청기도 해 드렸다. 무엇보다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목욕을 모시고 다니며 세신을 시켜 드릴 수 있어서 참 좋았다. 그 때는 왜 몰랐을까. 내가 어른이 되면 할머니가 늙으신다는 사실을.
지난주 코로나에 걸리신 할머니께서 패혈증이 오셔서 많이 위중하시다. 산소호흡기를 하셨고, 불러도 대답이 없으시고, 의식은 희미하시다. 보호자도 없는 중환자실에서 혼자 무섭지는 않으실까, 춥지는 않으실까, 기저귀가 축축하지는 않으려나, 함께 하지 못해 죄송하다. 할머니와의 이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할머니와의 아름다웠던 옛날 추억을 되새기고 싶어 글을 썼다. 외모는 참 아름다우셨던 할머니. 성격은 욱 하셨던 할머니. 주변에 인정이 많으셨던 할머니. 그래서 내가 참 좋아했던 우리 할머니. 내 몸은 바쁘고 힘들더라도 할머니를 뵈러 갈 수만 있다면 어디에 계시든, 자주 뵈러 가고 싶다.
(사진출처:픽사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