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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탈리 Jun 14. 2024

노인의 외출

길 가다 무심코 시야에 들어온 노인 한 분! 할아버지의 걸음걸이가 왠지 위태롭다 싶더니 상체가 앞으로 쏠리며 그만, 철퍼덕 넘어져버린다. 봄바람이 기세 사납게 대기를 휘젓는 통에 비쩍 마른 몸이 무게중심을 잃은 것일까. 딱딱한 보도블록 위에 무방비로 넘어지셨으니 무릎에는 보나 마나 멍이 시퍼렇게 들 것이다. 머뭇머뭇 다가갔다. 괜찮으시냐고 묻고 일어설 수 있게 부축을 하려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지 어르신은 한참만에 몸을 일으키신다. 댁이 어디냐 물었다. 거여동이라 대답하는 어르신. 지인을 만나러 왔는데 길 건너 조금 가면 된다고 횡단보도를 건너려 걸음을 떼어 놓으신다. 아무래도 마음이 안 놓여 한쪽 팔을 붙잡고 같이 횡단보도를 건너기로 했다.


어르신은 마음 따로 몸 따로였다. 마음은 앞서는데 몸은 따라주지 않는 형국이라, 상체만 앞으로 나가고 다리는 보조를 맞춰주지 못하니 몸이 자꾸만 기울어진다. 넘어지면 다치니까 서두르지 마시고 천천히 걸으세요. 조심스레 당부를 해도 어르신의 몸은 통제가 어려운 모양인지 휘청휘청, 또 넘어질 듯했다. 어쩔 수 없이 은행 앞 돌계단에 몸을 의지해 앉으시는 어르신.

"지인분에게 이곳으로 나오라 전화를 하시는 게 좋겠네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어르신은 전화기를 열지 않았다.


그대로 갈길을 가자니 마음이 놓이지 않아 112에 전화를 했다. 사정을 말씀드리고 출동을 부탁드린 채 어르신 옆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몸이 편찮으셔서 혼자 외출하시면 안 될 것 같아요. 앞으로는 사모님이랑 같이 다니셔야......"

얼핏 기분이 상할 수도 있는 말이었으나, 어르신에 대한 안타까운 생각이 컸기에, 거기까지는 생각이

가 닿지를 못했다.

"고맙소. 오늘, 아주머니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

노인은 연신 감사를 표하며 고개를 갑삭거리신다. 10분 정도 걸려 순찰차가 도착했다.


경찰관은 여기까지는 어떻게 오셨는지, 지인과 약속은 하고 오신 건지, 드시는 약은 있는지를 차근차근 묻고 나서, 제가 어떻게 해 드리면 좋겠습니까? 예의 바르게 묻는다. 매뉴얼에 따른 행동지침대로 는 것 같았다. 약속 없이 그냥 나왔다 하시니 그럼 댁에는 누가 계시냐고 전화를 한 번 해 보라 한다. 어르신이 전화를 연결하자 그는 전화를 건네받아 통화를 했다. 저희가 댁까지  모셔다 드릴 수는 없고, 길동역 근처라 지하철을 태워드릴 테니까 역에 나와 계시라고 당부를 한다.


지켜보는 나로선 좀 답답했다.

"저 상태로는 지하철 타고 가시기가 좀 힘들 텐데요. 더구나 거여역은 강동에서 갈아타야 하고......"  

'그냥 댁까지 좀 모셔다 드리면 안 되나?'

마침 속엣말을 읽기라도 한 듯, 순찰차 강동구 관내를 벗어나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다 부연설명을 해 주는 경찰관.

"그럼 길동역 말고 강동역에 모셔다 지하철을 태워드리겠습니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수고하세요."



그제야 안심하고 가던 길을 가는 것이지만 못내 노인의 안부가 궁금, 또 궁금하였다. 파출소에 연락해 보면 오버일까 싶으면서도 댁에 잘 도착하셨는지가 알고 싶었다. 가뜩이나 배회하는 가족을 찾는 안전문자가 많은 요즘, 홀로 외출하여 누군가를 만나는 평범한 일상마저도 제약을 받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바람도 쏘일 겸 지인도 만날 겸해서 외출하신 어르신이, 건강이 허락 않아 그저 댁으로 돌아가야 하는 현실! 그것도 남의 도움으로.

안타까웠다, 어르신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 혹은 가족이나 친척 의 그 누구일 수도 있기에.....

고인이 되신 부모님 생각, 이래저래 스산한 마음을 봄바람마저 들쑤시고 달아나고를 반복하던 그날! 맹자님의 말씀 한 마디가 홀씨처럼 마음가에 내려앉는다.


노오로(老吾老) 이 급인지로(以 及人之老)

유오유(幼吾幼) 이 급인지 유(以 及人之幼)

천하가운어장(天下可運於掌)

(내 집 노인을 공경하는 마음을 남의 집 노인에 미치게 하고

내 집 어린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남의 집 어린아이에  미치게 하면

천하를 손바닥 안에 움직일 수 있습니다)        

                  ---------맹자 양혜왕 상, 가운어장(可運於掌)-----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 가운어장은 꿈도 꾸지 못하지만, '노오로 이 급인지로, 유오유 이 급인지 유'의 마음가짐으로 살다 보면, 세상이 좀 더 평화롭고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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