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한 달 동안 기침과 사투를 벌였다.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만성 잔기침에 유행성 호흡기 기침까지 더해지니, 견뎌낼 도리가 없었다. 덥다고 마스크 없이 다니던 일본 여행의 후유증이었을까, 갑자기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밤부터 침 삼키기가 어려워지는 게 아닌가.
여독이 풀리면 좀 나아지겠지 싶었지만 웬걸, 기침까지 심해져 마침내 잠을 설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대로 기침을 해대다가는 허리며 갈비뼈가 남아나지 않을지도 몰랐다. 기침이란 녀석은 매몰차게 숙주를 몰아대었다.
"엄마, 제발 병원 좀 가자!"
예전 같으면 정 견디지 못할 때까지 버티기 작전으로 나갔으련만, 걱정이 태산 같은 딸내미를 위해 병원을 찾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일단 우리 집 젊은이들이 자주 찾던 내과로 발걸음을 향했다. 약을 잘 처방해 주신다며 딸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던 내과로,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S대 의대 출신 의사 선생님이 운영하는 곳이다. 딸아이의 진료를 위해 동행한 적은 있어도 직접 진료받기는 처음이라, 간단한 신상을 작성하는데, 신분증을 보여달라 한다. 의아한 마음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본인확인절차가 강화되었다는 보험공단의 안내문! 이제껏 타인의 신분으로 진료받는 일이 비일비재했던가? 얌전히 신분증을 내밀고는 혈압과 체온을 쟀다. 혈압은 정상에 미열. 이마를 만져봐도 모르겠는데, 미열이라니.
S대 출신 의사 선생님은 건강 검진을 언제 했는지, 가족력이 있는지 등의 기본적인 문진을 했다. 친정아버지가 갑상선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하자, 갑상선 초음파 검사는 해 보셨냐고 물었다. 아직 안 해 봤다
했더니, 건강보험 공단에서 하는 기본적인 검진 말고, 사비 들여서 몸에 대한 검진을 해 본 적이 있냐고 재차 묻는다.
"아니요, 아직...... "
그때부터 나는 잘못을 저지른 초등학생처럼 꾸중을 들어야 했다. 자신의 건강에 너무 무심한 것 아니냐고.
연세도 있으신 분이 이처럼 건강에 무관심해서 되겠냐고.
"차차 해 보아야지요."
마치,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취조하는 사또 앞에서, 네, 제 죄는 저의 건강에 무관심한 죄이옵니다,
라고 순순히 자백하는 잔뜩 주눅 든 목소리.
옳은 말인데 기분이 나쁜 꾸중을 몇 마디 듣다가, 화제가 호흡기 증상으로 옮겨지고, 일본 여행 다녀온 후
기침이 심해졌다, 침 삼키기가 힘들고 목에 이물감이 있어 괴롭다, 상황을 주욱 설명하려니 중턱에서 말을
툭 끊고 선생님은 선언했다.
"이번 감기 오래갑니다. 한 달 정도 갈 거예요. 저도 기침 때문에 6일째 약을 먹고 있어요. 진료는 해야
하니까요. 코 사진을 한 번 찍어 볼게요. 목에 이물감은 코가 목으로 넘어가기 때문일 듯합니다."
의사 선생님은 코 사진을 판독하더니, 자신의 확신대로 축농증과 비염이 심한 탓에 목의 이물감이 심한 거라 설명했다. 역류성 식도염, 위염, 축농증, 비염을 다스리는 약에 기침을 잡는 약을 일주일분이나 처방해 주며 다소 졸릴 수 있다는 주의를 주었다.
일주일분의 약을 먹고 기침은 좀 잡히는 듯했다. '한 달 간다더니 다행이네.....' 그러나, 목의 이물감은 여전해 다시 일주일분의 약을 처방받아 복용했다. 그러면서 졸음과 몽롱함과 뇌가 강하게 조여들며 몸이 마루 밑으로 가라앉는 듯한 느낌과 내내 싸워야 했다. 다시 '약을 잘 처방해 준다는 의사 선생님'에게 가, 졸리지 않은 순한 약으로 처방을 해 달라 호소했다. 만성 잔기침 얘기도 덧붙이며, 약을 잘 처방해 준다는 의사 선생님의, 무언가 신묘한 처방을 고대하였다.
"감기약은 원래 졸린 겁니다. 제 선에서는 이보다 더 순한 약은 처방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비인후과를 가 보시든 하세요. 그리고 오래된 잔기침은, 하다 못해 혈액검사라도 해 보면, 알레르기 문제인지 알아낼 수 있는데, 검사도 안 받아 보시고..... 더는 해 드릴 게 없습니다. 큰 병원 가셔서 폐 CT를 찍어 보시길 권장드립니다. 환자분도 오래된 기침이 사그라들지 않는다면 한 번쯤 폐암을 의심해 볼만도 한 것 같은데...... 제가 개원한
뒤로 우리 병원에서 전립선 암을 네 명이나 발견했습니다."
그는 야단치듯, 감정이 상한 듯, 일장 훈수를 마쳤다.
폐암이라는 말에 심장이 개미만큼 쪼그라들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큰 병원이라 하면 어느 정도급의
병원인지 물었다. 아산병원이나 경희대병원이라 일러주는 그, 더 이상의 처방을 거절하고 간이 부은 환자(검사도 일절 안 해 보고 자신의 건강에 너무너무도 무관심한, 맘에 안 드는 환자)를 빈손에 돌려보냈다. 진료비도 받지 않고서...... 기분이 심히 나빴다. 빈털터리로 길바닥에 내쫓긴 느낌. 좀 순한 처방을 해 달라니까, 더 이상 순한 약은 없다고 환자를 내쫓아버린 의사. 그저 만만한 감기 환자라 나를 이리도 냉대한 것인가? 알레르기 검사라도 받는다고 매달려봐야 했을까나. 그 독한 약이라도 다시 달라해 볼까? 그 독한 약이라도 먹고,
졸음과 싸우며 뇌를 감싸고 마룻바닥 밑으로 가라앉으라면 가라앉을 걸 그랬나......
터덜터덜, 내과를 걸어 나오며 울고 싶어졌다. 환자보다 말을 더 많이 하는 의사, 환자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지 않는 의사에게는 더 이상 가고 싶지 않았다. 그가 우리나라 제일의 의대를 졸업했다고는 하나, 환자를 나락까지 떨어뜨리고 마는 언어의 가시가 조금은 뭉툭해지고 순해지지 않는 한, 누구도 그런 의사에게는 가고
싶지 않을 거라 확신하며 터덜터덜 근처의 이비인후과로 갔다. H대 출신의 의사 선생님은 환자의 말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조용조용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는 분으로, S대 출신의 인상도 음성도 강인한 의사 선생님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그러셨군요."
환자의 설명에 이렇듯 고개를 끄덕여가며 공감하는 태도에서 적잖은 위로를 받았음을 고백하고 싶다. 그는
기관지가 염증이 심하다며, 곧 휴가 예정이라 2주분의 약을 처방해 주었는데, 다음 내원하면 대학병원
진료에 필요한 진료의뢰서를 써 주기로 했다. 심의(心醫) 선생님의 약은 졸리지도 않고, 마루 밑으로 가라앉을 듯 몽롱하거나, 머리가 조이는 부작용도 없었다. 덕분에 갈라진 음성도 이물감도 조금씩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방문한 환자에게 다른 아픔을 안겨주는 곳은 피하고 싶으니,
앞으로 엄마는 명의보다 심의한테 가련다."
진정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릴 수도, 순식간에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 사실 - 이번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 - 을 늘 염두에 두고, 마음에 아로새겨 슬기로운 언어생활을 이어나가야지.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