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지원자는 모두 세 사람이었다. 3:1의 경쟁률이라, 가히 높지는 않군. 하지만, 경쟁률이 높거나 낮거나 간에 긴장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기다리는 동안 경쟁자끼리 인사도 나누고 사는 곳도 물어가며 아줌마들의 친화력을 여지없이 과시했다. 서로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기가 더 어색한 법이므로. 광진구에서 온 60대 여사님, 50대 중반인 나, 인근에 사는 이제 막 50줄 여사님, 요렇게 셋이서 계모임 나온 여인들처럼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자니, 안내하시는 분이 경쟁자끼리 너무 다정하신 거 아니냐고 슬며시 농을 던진다. 경쟁자라고 꼭 적대시해야만 하는 건 아니잖나? 어찌 보면, 생업을 찾아 가깝고 먼 곳에서, 이렇게 모인 것도 인연인데.
이윽고 연령순으로 면접이 진행되었고, 60대 여사님이 면접에 임하는 동안 우리는 서로 상대가 뽑힐 것 같다는 덕담을 던지며 지루한 시간을 견뎌냈다. 심층면접이라도 하는지, 기다려도 기다려도 60대 여사님은 나오질 않았다. 이래서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말이 나왔던 게지. 피를 말리는 듯한 기다림의 시간 - 30분 정도가 지나 드디어 내 차례! 들어가자마자, 면접관들과 눈을 맞추고 다소곳이 인사를 했다.
섬결 님, 자기소개를 한 번 해 보세요!
돌돌 말리어 있던 양탄자가 촤르륵, 펼쳐지며 내 발 앞에서 딱 멈춰지는 찰나의, 숨이 멎는 듯한 긴박감!
'자기소개요?'
난감한 질문이었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푸는 것보다 더 진땀을 흘리게 만드는,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질문. 쉬운 듯하면서도 너무 광범위했다. 나를 어찌 어필을 해야 할까.
네 명의 면접관 앞에서 한껏 쫄아든 면접생은 당황, 또 당황을 하였더랬다. 그리하여 하마터면 이렇게 대답할뻔하였다.
'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시도 때도 없이 그릇을 잘 깨고, 길어야 할 것은 짧고 짧아야 할 것은 긴, 좀 언밸런스한 체형을 지녔으며, 손을 씻을 때마다 상선약수(上善若水)를 떠올리고, 샤워를 마치면 굴원의 신목자 필탄관 신욕자 필진의(新沐者 必彈冠 新浴者 必振衣)를 생각하며 새로 옷을 꺼낼까 말까를 고민하는 지극히 평범한 아낙으로서, 사실 오늘 이 면접도 한 젊은이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액셀 실기시험에서 두 차례나 고배를 마시고 재도전할 용기도 못 얻은 제게, 이력서를 다운로드하고 이메일로 보내고 하는 절차가 너무 어렵사리 느껴지는 게 현실이니까요.
젊은이 덕분에 브런치에 입문했지만, 저는 너무 게을러 글을 자주 올리지 못합니다. 꾸준히, 바지런히 글을 발행하는 작가님들이 부러우면서도, 컴퓨터를 켜고 컴 앞에 앉기가 몹시도 두려운 엉터리입니다. 컴맹을 겨우 면한 저를 가르쳐 주고, 제가 하기 버거운 작업들을 기꺼이 도맡아 하는 천사표 젊은이 덕에, 어찌어찌 데뷔는 하였지만 솔직히 겁이 나는 것을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좋은 글, 진솔한 글을 쓰고픈 욕심에 앞서 저와 동떨어진, 내가 없는 글을 쓰다, 심한 내면의 한발을 겪으면 어쩌나. 내가 아는 세상은 지극히 좁고 제한적이어서, 충분히 배우고 체험하고 느껴야 살아 있는 글이 나올 텐데. 너무 의지가 약하고 열의 또한 미지근하여 걱정이랍니다.'
그러나, 취업을 하려면 '면접관들이 원하는 답변'을 해야 했다.
충전기를 끝내고, 절실하게, 마지막 직장이 되어줄 만한 일을 구하고 있다는 점과, 합격한다면 힘닿는 데까지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일하겠다는 다짐을 피력했다. 아울러 이렇게 면접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뵙게 되어 영광이었다고, 다소 낯간지러운 멘트로 깔끔하게 마무리를 하였다. 면접관들은 만면에 웃음을 가득 띠며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통근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동료와 의견충돌이 일 땐 어떻게 헤쳐나갈 건지, 유사업무 경험이 있는지, 건강검진은 언제 했는지, 드시는 약이 있는지 등등.
약 얘기가 나오는 순간, 곤혹스럽다는 생각이 재차 온몸에 퍼졌다. 사실, 4월 건강검진의 결과는 썩 좋지 못했고, 그 결과에 따라 고지혈증 약과 골다공증 약을 먹어야 하는 충격에서 아직껏 헤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사실대로 말하기가 부끄러웠다. 건강관리도 그렇게 못한 사람이 취업은 무슨, 이러고 떨어뜨린다면? 순간적으로 영양제 몇 가지라고 답해버렸다. 그러다 합격 문자를 받고 입사서류 목록을 확인했을 때, 솔직하지 못한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목록에는 건강검진 결과지도 들어있었던 것이다. 에라, 케세라 세라다. 인사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실직고를 했더니, 의외로 쿨하게 괜찮다는 대답. 센터의 특성상 전염성 질환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서류를 내는 거란다.
자기소개가 나름 괜찮았던가? 너무 젊지도 연령이 많지도 않은 중간대라 나를 뽑았나? 눈꼬리가 약간 처지는 유한 인상 때문에 뽑힌 건가? 별의별 생각이 물 위에 떨어진 잉크방울처럼 머릿속을 헤엄쳐 다니고, 출근하기까지 심장은 요란한 펌프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자기 소개할 적에 심장이 콩알만 하다는 것을 빼먹었다! 속눈썹이 있는 듯 없는 듯 짧은 사실을 최근에야 깨달았다는 사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