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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므네 Jun 25. 2023

5. 내가 만든 것이 생각보다 별로일 것 같은 두려움

첫 번째 진과 스티커를 만들었다

진을 어떻게 만들지 구상도 어느 정도 했고, 이제 만들기만 하면 되는데 만드는 걸 최대한 미루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예기불안에 의한 회피에 대한 책을 읽으며 회피를 하고 있지 않나, 갑자기 식탁에 오일을 바르고 있지 않나. 내가 만든 것이 생각보다 별로일 것 같은 두려움은 가장 하고 싶은 일일 때 가장 강해진다.



점심 먹기 전에 만들자! 결심하고 의자에 앉고 11시부터 2시 반까지 완전히 몰입해서 첫 번째 진을 만들었다. 역시 행동을 하면 의심의 소리는 잦아든다. 완료에 목적을 두니 포기만 안 하면 어떻게든 완성이 된다. 귀엽고 신기하다.



웹툰 수강생 분들이 자기 그림으로 뿌듯한 뭔가를 만들어 가면 좋겠어서 그런 커리큘럼을 짰더니 자꾸 뭔가를 만들게 된다. 8년 전에 만화 <깨알공장공장장>을 그리면서 스티커를 한 번 만들어본 적이 있지만 너무 옛날이라 가물가물했다. 수강생 분들께 샘플로 보여주려고 ‘책과 키므네’ 스티커를 그려 주문했는데 수업날 도착 안 했다. 그래서 일반 용지에 그냥 인쇄해 갔다. 프린터가 있어 얼마나 든든한지!


‘책과 키므네‘ 스티커 흑백과 컬러 스티커를 오프린트미에 같이 주문했다. 완벽주의를 극복하려고 봄이 그림을 따라 그린 유니콘들도 같이.

스티커가 도착했다. 해상도가 화면에서는 깨져 보여서 걱정했다. 다행히 전혀 깨지지 않았다. 만지작만지작. 생각보다 더 예쁘고 마음에 들었다. 살짝 떼었다가 티 안 나게 다시 붙여 넣고. 샘플로 용지재질 별로 하나씩만 주문해서 떼기가 아까웠다. 롤테이프에 용지 재질을 적어 붙였다. 스티커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재질에는 별표시를 했다.



스캔 앱을 알고, 프린터기를 사면서 디지털로 그린 그림이 손에 잡히고 손으로 그린 그림을 인터넷에 올리는 게 쉬워졌다. 전에는 내가 그린 것들이 다 온라인에만 있어서 뭔가 실존하는 느낌이 별로 안 들었다. 이제는 인쇄해서 만질 수도 있고 스티커로도 만들 수도 있고 모든 것을 물성 있게 만들 수 있다. 어디서든 더하고 빼고, 표현이 자유롭다.


사실 내 안에서 스스로 한계를 없애지 않았더라면 그 어떤 것도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안에서부터 밖으로, 어떤 경계나 벽이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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