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쉬운데, 왜 그렇게 망설였을까
고장 난 프린터를 포기하고, 다시 프린터를 샀다. 앞으로 이 프린터로 할 일들을 생각하며 꼼꼼히 골랐다. 오래전에 디자인할 때처럼 손에 만져지는 뿌듯한 뭔가를 만드는 일, 프린터로 뽑아보고 마음에 더 들게 수정하는 일을 할 생각에 두근거렸다. 내가 그런 걸 좋아하는지 잘 몰랐었는데, 이제 알 것 같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책과 종이를 만져볼 때 분명한 설렘이 있었다.
프린터의 모든 설치를 마쳤다. 내 만화 몇 장을 대충 골라 테스트용으로 프린트해 봤다. 출력된 내 만화를 집었는데 비현실적이었다. 그건 마치 애니메이션 속에 있던 인물이 현실에 나타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자신들도 여긴 어디지? 하며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그냥 일반 A4 용지에 뽑아서 손에 만져지는 무언가가 된 내 그림은 내가 화면으로만 보던 것보다 예뻤다.
프린트된 내 만화를 한동안 보고 있는데 눈물이 찔끔 났다.
‘그동안 내가 그림 그린 시간이 헛수고는 아니구나.’
내 그림을 작품으로 만드는 게 이렇게 쉬운데, 왜 그렇게 망설였을까. 왜 그렇게 아직은 부족하다고 생각했을까.
스크랩할 때 쓰려고 산 예쁜 가위로 대충 네모나게 오렸다. 책상 앞에 다른 사람 작품을 떼고 내 작품을 붙였다. 꽤 오래 쿨쩍쿨쩍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