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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므네 Jun 16. 2023

3. 지갑을 연 것들은 모두 내가 하고 싶은 꿈

서울 국제 도서전에 갔다

지갑을 연 것들은 모두 내가 하고 싶은 꿈

서울국제도서전에 갔다. 책을 고르며 내 취향이 더 선명해진다.

문학동네였나. 시집들이 다 다른 예쁜 색의 옷을 입고 앉아있었다. 마음에 드는 색 표지를 고르면 시도 마음에 들까 궁금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두 권만 봤다).

어떤 책은 책 내용보다 일러스트 삽화가 마음에 들어 그림작가 인스타를 팔로우했다. 대부분 나 같은(?) 느낌의 심플한 그림. 나도 이렇게 그리고 싶다는 무의식의 외침을 들었다.

언제 지갑을 열지 벼르다가 의외의 곳에서 책 두 권을 샀다. 그리고는 지갑이 계속 열렸다.


제자리걸음처럼 계속 똑같은 부스만 보였다. 이제 얼추 다 본 것 같네. 집에 갈까. 그때 갑자기 전시홀 천장에 꽤 큰 새(비둘기가 아닌 것 같았다) 한 마리가 천장을 뱅뱅 날고 있었다. 부스들 위를 몇 바퀴나 돌고 있었는데 쳐다보거나 동요하는 사람은 없었다. 새를 보는 사람은 나뿐인 것 같았다. 내 시선은 새를 따라 천정을 같이 돌았다.

동영상으로 조금 찍고 고개를 내렸는데 아까 못 보던 B홀 입구가 보였다.

‘어?’

어제 애들이랑 봤던 옛날 만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았다.

‘여긴 왜 이렇게 사람이 없지?’

생각하며 B홀로 들어갔다. 알고 보니 여기에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이 가득했다. 여기는 큰 출판사가 아닌 일러스트, 독립출판물 같은 책들.

‘사실 이런데 오고 싶었는데! 못 보고 갈 뻔했네.’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쇼핑백은 이미 무거웠다. '최대한 얇고 좀 싸게 만들어야지. 그리고 덤으로 끼워주는 굿즈를 많이 만들자.' 생각했다. 평정심을 유지하려 했지만 지갑은 또 세차게 열렸다.


지갑을 연 것들은 모두 내가 하고 싶은 꿈. 창작의 불씨 같은 것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 같은 것들이었다. 글쓰기 워크북, 우울할 때 곁에 두고 읽는 책, 도서관에서 봤던 만화작가의 책, 예쁜 일러스트집, 오늘 막 나와 온라인 서점에도 없다고 쓰여있는 심리학 책, 형태가 얇고 참고하고 싶은 진. 

그리고 첫 문장에 덜컹한 시집이었다.


'글 쓰는 이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겪은 것만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겪지 않은 것임에도 쓰는 사람이 있다.

당신은 결코 후자에 속할 수 없다.'


<언젠가, 공항의 밤에>, 최리외 


‘네, 맞아요. 난 결코 후자에 속할 수 없어요.’ 나를 들킨 듯 속으로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시집을 샀다.

책을 얼마나 봤는지 집에서 자려고 눈을 감았는데도 책이 보였다. 모든 책은 옳다. 모든 책은 이유를 가지고 태어난다. 내 책도 그렇다.


길 안내해 주는 새
산 것들.
받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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