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므네 Jun 14. 2023

2. 불안의 범인을 잡았다

바닥이 없는 곳에서 바닥을 찾는 느낌


며칠 또 마음이 붕 떠있다. 익숙하지만 반갑지 않은 감정. 엊그제 시작한 생리 때문일까? 그럴 수 있다. 그냥 그렇게 여기고 싶다. 낮잠을 조금 잔다. 애들이랑 어제 핫케이크 만드느라 식탁과 바닥이 지저분하다. 청소기를 돌린다. 한동안 방치했던 침대 밑도 대충 들쑤신다. 단 것이 먹고 싶어 맥심 한 잔을 타 마신다. 눈으로 책을 읽지만 마음은 아직 디딜 곳이 없다. 범인이 생리가 아닐 수도 있다. 어쨌든 이 뭉뚱그려진 안개 덩어리 같은 이 감정을 빨리 벗어나고 싶다. 다른 용의자를 찾아본다.


지난 4월 23일 오전 8시에 쓴 ‘나를 괴롭히는 감정’이라는 노션 글에 이렇게 쓰여있다.


‘바닥이 없는 곳에서 바닥을 찾는 느낌. 어딘가 고정할 곳이 없는 느낌’


4월 23일에 무슨 일이 있었지? 다이어리를 뒤져 보았다. 22일부터 불안해하고 있었다.


<22일>  ‘우울의 늪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던 날. 런데이 30분 첫 도전. ‘불안한 완벽주의자를 위한 책’’이라고 적혀있다.


<23일> ‘우울을 받아들이자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조금 났다. 나의 삶이다. 나와 똑같은 사람에게 쓰는 글과 그림. 압박을 줄이고, 자유를 누리자.’


그리고 다음 장에 있는 24일을 봤다. 답을 찾았다. 그날은 도서관 글쓰기 강의 마지막 날. 그 전주에 쓴(망쳤다고 생각한) 에세이로 첫 합평을 하는 날이었다.

4/22-23일 다이어리


<24일> ‘먹구름이 지나간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우울도 나의 일부처럼 수용하기. 나만 나를 믿으면 된다.’고 쓰여있다. 그날 아침 갑자기 그냥 괜찮았다. 그리고 걱정과는 달리 생각보다 좋은 평을 들어서 울뻔했었고, 자신감을 얻었다. 나를 믿어 준 사람들에게 감사했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자 다짐했었다.

4/24일 다이어리


나는 잘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하면 두려운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망칠까 봐 미루고 싶어 진다. 그래서 뭘 해도 불안한 것이다. 이번엔 독립출판, 우선 진 만들기 하겠다고 말하니 이 감정이 올라온 것이다.  범인을 찾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고 또렷해진다.


4월에 꼼꼼히 기록해 놓은 나에게 고마워졌다. 어릴 때 집에 있던 어린이 추리 책처럼 오늘 다이어리에 4월 23일-24일 다이어리 볼 것.이라고 미래의 나에게 전하는 힌트를 적었다.

6/14 오늘 다이어리


이제 바닥에 발이 닿았다. 잠시 편히 숨을 고르자.

이전 01화 1. 나도 이런 거 만들어 보고 싶었는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