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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므네 Sep 30. 2024

신진예술인이라면 이건 꼭 하세요

역량강화 지원사업 후기

독립출판으로 책 <용문소로일기>를 냈다. 내가 십 년간 그려온 만화의 마침표. 내가 책 한 권을 냈다고 천지가 개벽하거나 내 책이 베스트셀러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저 내가 만든 책이 세상에 태어났을 뿐이다. 우리 집 계단에 줄 지어 늘어선 내 책들을 서점에 조금씩 포장해서 보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마을 어귀에 쌓아 올린 염원의 돌처럼, 책 쓰기 전에 글은 안 쓰고 남의 책만 사 모았다. 지금은 그림은 안 그리고 그림재료만 종류별로 사 모아 화방넷 VIP가 되어가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또 무얼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때 ‘예술활동증명’이 눈에 띄었다.


‘신진예술인 예술활동증명을 받으면 여러 지원사업이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던데.’


신진예술인에 신청을 했고 한 번의 자료보완(필명 키므네가 김은혜가 맞는지 증명하기)을 거쳐 몇 달의 기다림 끝에 신진예술인이 되었다. 내 작은 작업실 문에 예술활동증명 확인서 한 장을 프린트해서 붙였다. 종이 한 장이 뭐라고. 예술가라고 나라에서 인정받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신진예술인이 되어도 지원사업이나 작가모집 같은 기회에도 신청할 엄두가 안 났다. 뭐를 어떻게 써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기에. 게다가 정확히 어떤 걸 하고 싶은 지 나조차 정리가 되지 않는 걸 남을 어떻게 설득할 수가 있을까. 운명처럼 신진예술인이 참여할 수 있는 <역량강화 지원사업> 안내 문자가 왔다. 멘토링도 받고 네트워킹 캠프에, 모임비도 지원받는다니! 이건 무조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획서와 포트폴리오 가운데 기획서를 신청했고 운 좋게 합격했다.



<역량강화 지원사업> 오리엔테이션에 갔다. 멘토님과 신진예술인들이 모였다.

내 이름이 적힌 목걸이를 목에 걸고 멘토별로 테이블에 앉았다. 가수, 전시기획자, 배우, 연주자, 화가, 작가… 다양한 예술 분야의 예술인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 나만 모호함 속에서 고민하며 창작하는 게 아니었구나. 하는 위로를 얻었다. 이제 나도 진짜 예술인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멘토링 프로그램은 멘토님과 같은 조 예술가들이 3주간 줌으로 만나며 내주신 과제를 하면 되었다. 처음해 보는 기획 과제는 어려웠다. 그래도 우리 조 최엄윤 멘토님이 과제를 듣고 따뜻하게 나에게 정말 필요한 부분을 제안해 주셔서 정말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기한이 있으니 어떻게든 하게 되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한주, 한주 더해갈수록 내가 무얼 하고 싶은지, 또 어떤 지원사업에 지원할지 정리가 되었다.


'내 책 <용문소로일기>의 연장선 같은 미술 개인전을 연다. 새들의 이웃으로 살며 보고 느낀 자연을 그린 그림을 전시하고, 관람객에게 우리가 잃어버린 자연의 경이로움과 위로를 전한다.'

상상하고 글로 정리된 미래는 현실이 될 수 있다.




네트워킹 캠프는 내가 파주에 갔을 때 ‘와, 여기서 꼭 한 번 묵어보고 싶다’ 했던 지지향에서 있었다. 가길 정말 잘했다. 멘토링 프로그램 중에 캠프가 가장 좋았다. 오티 때도 느끼긴 했는데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들을 한 곳에 몰아넣으면 어떤 기운이 있다. 밖에서는 느낄 수 없는 오묘한 분위기.


어릴 때부터 외로웠다. 나 같은 사람을 만날 수가 없어서 난 어딘가 고장 난 게 분명하다고 믿었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나 같은 사람들이 다 여기에 있다. 나 같은 사람들과 만날 시간이 아까워서 내일이 없는 것처럼 잠도 미루고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벽에 나무 그림자가 흔들리는 게 너무 예뻐요.”

“어, 정말 그렇네요!”




내가 느낀 감정을 이야기하는 데 어떤 설명도 필요 없었다. 그냥 이해가 되었다. 예술에 공감하고 창작하고 싶은 사람들. 밖에선 조금 다르거나 이상한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경쟁적이지 않고 서로가 더 대단해 보인다. 수차례 나와 내 예술을 소개하고 공감과 인정을 서로 주고 받는다. 도구는 달라도 서로 안의 예술성을 보고 보듬고 응원하는 사람들을 알게 된다. 사람은 함께 해야 힘을 얻음을 깨닫는다.



예술가 분들과 진한 유대를 느끼게 했던 보드게임 <딕싯>


캠프에서 그냥 하는 프로그램은 없었다. 모두 도움이 되고, 잘 참여하고 교류할 수 있게끔 하는 고민이 담겨 있었다. 이런 공지도 있었다.


“발표를 앞두고 혹시 갑자기 부끄러워지셨거나 아니면 갑자기 하고 싶은 마음이 드셨으면 저에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이렇게 예술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다니. 섬세한 배려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역량강화 지원사업> 운영과 네트워크 캠프를 진행한 <메이크 앤 무브>는 ‘진행도 예술로 할 수 있구나’라고 느끼게 해 주었다. 덕분에 용기를 얻어 혹시 몰라 가져간 내 책과 스티커도 전시했다.




캠프가 끝나고 단톡방에 장문의 소감을 남겼다. 조금 쑥스러웠지만 요즘엔 할까 말까 할 때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는 것을 택한다. 그러면 후회도 거의 없다.


‘혹시 영화 <트롤:월드 투어> 보셨나요? 영화에서 기린 같기도 하고 마대자루 같기도 한 트롤이 나오는데요. 팝트롤 나라에서 자신이 다른 트롤과 다르게 생겼다는 걸 깨달은 트롤은 주변에 자신과 닮은 트롤을 찾아 떠납니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자신과 꼭 닮은 트롤들의 나라를 찾았어요. 그는 펑크 트롤이었습니다. 자신이 펑크 트롤이었다는 것에 감격한 그는 펑크 트롤들과 함께 기쁨의 춤을 춥니다. 캠프에서 저는 다른 펑크 트롤들을 만나 춤을 추는 기분이었습니다.’


다음 멘토링 프로그램을 참여하는 분들이 네트워킹 캠프는 꼭 가시길 추천한다.

만나서 춤추는 펑크트롤들






<역량강화 지원사업>은 캠프 때 만난 사람들끼리 커뮤니티 모임까지 지원해 줬다. 모든 사람이 조를 구성하고 함께 할 활동 계획까지 짰다. 심지어 안 만날까 봐 기한도 줬다. 우리 조 이름은 ‘예술왕이 될 거야!’였다. 함께 할 활동 주제는 <망작 심폐소생술>

양평 키므네 집에 모여서 자신의 망작을 소개하며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의논하기.

소생이 불가능한 작품은 화장 또는 수목장으로 장례를 치러준다.


장례 전 자신의 작품 오래 바라봐주는 이별 시간도 주기로 했다. 생각만 해도 재밌을 것 같았다.

나는 화장을 위해 창고 안 깊숙이 그릴을 꺼내 먼지를 털어주고, 근처 교회에서 의자를 공수해 와서 준비했다.

당일 참석한 사람들은 지민주 멘토님과 운영진의 김익준 연구원(쭈니쭈니님), 게스트 작가님 두 분까지 모두 13명. 우리 집 부엌에서 <망작 심폐소생술>을 했다.


내 망작 소개 중


그 결과, 화장과 수목장을 치러야 할  작품은 없었다. 모든 예술은 살릴 수 있다. 다만 새로운 예술활동 시작을 위해 과거의 기록을 USB에 납골장 하신 작가님은 있었다. 우린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의 활동을 응원했다. 작가님들에게 내가 많이 배우고 있는 창작의 스승, 딸 봄이 작품 전시도 보여드렸다.  책 <용문소로일기>의 소재가 된 장소를 답사하며 산책을 했는데 신기하게도 이건 내가 역량강화 프로그램 기획서에 썼던 전시 연계 체험이었다. 내 개인전 이후까지 미리 경험까지 시켜주다니 정말 큰 그림을 그리는 대단한 프로그램이다.


용문소로일기에 나온 장소 답사






<역량강화 지원사업>이 모두 끝났다. 며칠 전 처음으로 독립출판 강의를 했다. 떨지 않고 잘 해냈다. 옛날에는 사람들 앞에 나가서 발표할 때 얼굴 빨개지고 염소 목소리 되는 건 나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캠프 때 60명의 예술가 앞에서 내 소개를 할 때, 인터뷰할 때 ‘내가 전처럼 떨지 않는구나’를 느꼈다. 내 안에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그게 가치가 있다는 믿음이 생겨서 그런 것 같다.


<망작 심폐소생술> 모임 때 받은 조언을 따라 내 망작을 조그맣게 다시 그렸다. 전혀 좋아보일 게 없었던 망작에서 내가 좋아하는 색감과 분위기를 건져올린다. 키링으로 만들어 가방에 걸었다. 예뻤다.



이제까지 나는 내가 창작하는 걸 누가 도와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혼자 열심히 실력을 쌓으면 언젠가 누군가 나를 알아봐 줄 거라고 믿었다. 아직 이룬 게 없는 건 내가 부족해서라고 다그쳤다. 그렇게 너무 오래, 혼자 그리고 썼다. 시야는 점점 좁아지고 선택지는 줄어갔다. 무기력으로 바닥을 치고 올라와 조금씩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신진예술인이 되었다. 역량강화 지원사업에 참여하면서 누가 내가 예술하기를 원하고, 이토록 응원해 준다는 사실에 놀랐다. 가르쳐주고 먹여주고 재워주면서. 창작할 힘과 용기를 잃지 말라고 예술인 친구들도 만들어주고. 심지어 그걸 나라에서 해주다니, 신기하고 고맙다.


10월에는 내 책 <용문소로일기>의 첫 북토크를 한다. 떨리지 않는다. 내가 얻은 배움과 용기를 잘 전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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