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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우무빙 Apr 22. 2023

토끼 시대1.

어서와. 우리집은 처음이지?

카톡. 톡.


이웃집에 토끼가 왔다는 소식이다. 엥?

진짜다. 사진을 보니 토끼가 있었다. 두 귀 쫑긋한 토끼가 맞다.


평소  맘카페를 자주 들여다보는 연미씨는 그날도 별생각 없이 손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글을 보고 있었다.  등을 곧추세우고, 눈이 동그래지는 글이 있었으니


< OO단지 20동 앞에 토끼가 한 마리 있어요.>

 

무슨 일이고? 우리 동네는 아파트 촌이다. 그냥 도시다. 그러니까 토끼가 나타날만한 곳이 아니라는 뜻이다.


아무튼, 우리가 사는 곳은 OO단지이고 20동은 가까운 동이다. 

그녀와 남편 그리고 8살 아들은 토끼 구조대가 되어 문을 열고 나갔다.(8세 아들은 내 아들의 친구다.)

토끼를 찾으려 했으나 실패.


연미씨는 정이 많은 사람이다. 마음 씀씀이는 얼마나 좋은지 놀이터에 나오면서 쟁반 한가득 샌드위치를 만들어 온다. 불특정 다수의 먹을 것까지 준비해 오는 것. 아이랑 같이 놀아주려고 풍선을 준비해 나올 때도 많이 가지고 와서 원하는 아이들에게 다 나눠준다. 산타인가?

놀이터에서 놀다가 넘어져 엉엉 울고 있는 아이가 있으면 다가가 말을 건네고, 못된 행동 하는 몇몇 애들이 나타났을 땐 자기 자식 없을 때에도 보초를 선다. 음식을 넉넉하게 해서 맛보라고 나눠주기도 하는 그녀는 나보다 10살이나 어리지만 배울 점은 10가지도 넘는 그런 멋진 사람이다.


이런 연미씨가 토끼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리 없었던 것.

연미 씨 가족은 토끼가 걱정되었다. 아직 날도 쌀쌀한데 집 잃은 토끼가 잘못되기라도 할까 봐 자꾸 내다보게 되었다. 바로 다음날 연미 씨 남편은 퇴근 후 저녁시간 일부러 동네 산책을 했다. 바로 20동 앞에 토끼가 있음을 발견했다. 잠자리채를 들고 집을 나선 그녀와 아들은 토끼를 잡기 위해 이쪽저쪽 자리를 잡고 토끼가 달아나지 못하게 나름의 포위망을 만들었다.

그렇게 토끼를 만났다.


토끼는 본래 자기가 있던 자리에서 멀리 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날도 20동 앞에 있었던 것. 어째서 토끼가 이곳에 있는가.


연미씨는 지역카페에 토끼를 데리고 있다고 글을 올렸다.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지만 이 토끼와 앞날을 함께 할 사람이 금방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다. 같은 날 밤 토끼를 다섯 마리 기르고 있는 토끼박사님이 연락을 했다.

토끼집이며 물통, 마른풀 등을 가져다주셨다. 그분으로부터 토끼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산토끼는 무섭게 생겼지만 집토끼는 눈이 선하고 예쁘다.

ㅡ  이 친구는 집토끼다.

토끼는 생후 4개월만 되어도 몸집이 성체가 된다.

ㅡ 토끼의 발육에 놀라 더 커질까 무서워서 버리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예상하건대 20동에서 발견된 이 친구도 버려진 것이 분명하다.


20동 앞에서 만났기에 토끼의 이름은 십동이가 되었다. 십동이 와 함께 흥분된 마음으로 그렇게 첫날밤을 보냈다. 연미씨는 다음날이면 토끼를 키울 사람이 나타날 줄 알았다.







십동이가 있으니 8세 아들은 토끼풀 먹는 모습, 똥 싸는 모습 보며 좋아하고, 쓰다듬어주며 교감한다. 연미 씨도 토끼가 우리 집에서 잠을 자다니.. 같이 지내고 있다니... 놀라며 나름 그 시간을 즐겼다.

토끼 키운다는 사람은 도통 나타나지 않았다. 십동이가 집에 온 지 오일째 되던 날 연미 씨 가족은 밤 10시쯤 집에 다. 거실 토끼집에 십동이가 잘 있는 모습을 보았고, 이런저런 일들을 하고 있었다.


"여보! 여보! 이리 와봐." 남편의 다급한 목소리.

"왜?"

"여보! 빨리 와봐."

"왜 이리 호들갑이야?"






며칠 십동이의 행동이 이상했다.

첫째, 땅을 파는 듯이 앞발을 마구 굴렀다.

둘째, 입으로 자신의 몸에 있는 털을 북북 뜯었다. 마치 다람쥐가 도토리를 입 안에 두고 있는 것처럼 자신의 털을 볼 빵빵하게 담고 있었다. 소리가 어찌나 큰지 놀랐다.

셋째, 북북 뜯어 입안 가득한 풀을 주변 여기저기에 뿌렸다.


환경이 바뀌어서 스트레스받나? 바람이 때문에 그런가?

바람이는 연미씨네 반려견이다. 바람이가 새로 만난 생명체에 관심이 많았다. 십동이가 예쁜 건지 자기를 보라는 건지 같이 놀자는 건지 십동이 집 틈으로 다리를 껴넣었다. 그 다리로 십동이를 쓰다듬고 멍멍 크게 짖기도 했다. 너무 적극적인 바람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게 분명하다. 그래서 저런 행동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야.

남편이 호들갑 떨만하다.

쿵쾅쿵쾅 연미씨의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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