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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우무빙 Jun 26. 2023

때렸다, 울었다.

손에 관한 고찰

미쳤어? 니가 뭔데 때려?

안 때렸는데?

때렸어.

안 때렸어.

때렸어. 너 니 애들도 이렇게 때려?

안 때렸어.

근데 왜 날 때려. 니 애들도 안 때리는데 왜 날 때려?

안 때렸다고.


너..때렸어.(제3자의 말)

..................... 정적이 흘렀다.


미안해. 때려서 미안해.








네 자매가 만났다. 셋째 언니가 소프라노 성악가 공연 티켓이 4장 생겼다며 네 자매 회동을 제안했다.

너무 좋았다. 언니들과의 만남. 솔직히 말해서 공연은 매우 별로였다. 기대되는 것은 언니들과 함께 하는 불금의 시간이었다. 셋째 언니네서 자기로 했기 때문에 마음도 편했다.


큰언니는 연대 앞 포장마차에서 분식을 먹자고 했다. 사실 동생들은 이미 저녁을 먹은 상태였지만 배고픈 언니를 위해 일단 갔다. 그곳은 추억의 포장마차라며 들떠있었다.

맥주 시켜줄까. 커걱. 언니는 거기서 소맥을 말아먹을 참이었다. 맥주만 마시라며 말렸다.

사근사근하면서도 동시에 새침한 둘째 언니는 기분이 좋을 때는 세상 친절하고 어여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정말 표정에서 아니, 손끝에서부터 드러난다. 그녀는 셋째네 집 앞 이자카야에서 맛있는 음식과 술을 곁들이고 싶었다. 빨리 포장마차를 뜨고 그곳에 가고 싶었으리라. 이때까지만 해도 괜찮있는데..



큰언니의 일침. 그냥 집으로 가. 집에 가서 뭐 시켜 먹어. 지금 애가 혼자 있는데 무슨 소리야? 다 큰 것 같아도 6학년이면 아직 애야. 왜 이렇게

이기적이야.(셋째 언니네 둘째 아이가 6학년이다. 곧 첫째가 집에 올 예정이었고 이자카야는 언니네서 5분거리였다.)


두둥. 다른 건 다 필요 없다. 옳은 얘기들 다 필요 없고 이기적이라는 그 한마디에... 둘째 언니의 감정이 상했다.

젠장. 그때부터 분위기가..






셋째 언니네 도착했을 때 한 명씩 늘어지기 시작했다.


첫째는 알레르기 때문에 눈이 시리고 눈물이 나고 두통도 있고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동생들 만난다고 몸을 이끌고 나온 것.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둘째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안마의자에 몸을 맡기고 20분을 즐기더니 그 다음에는 식탁의자에 앉아 다들 늘어져 있는 상황을 못마땅해했다. 언니는 함께 즐겁고 신나게 보내고 싶었다.


셋째는 며칠 전부터 배가 불편해서 밤만 되면 복부에 가스가 차고 다음날 아침이면 설사를 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어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소파 아래에 누웠다.


넷째(나)는 오전, 오후 수업 후 둘째 아이 피부과 진료를 위해 다녀오느라 종일 바쁘고 숨이 찬 상태였다. 둘째 언니가 안마의자에서 내려왔으니 그다음 내가 안마의자에 올라가 마사지를 했다.


이런 상황이었는데.. 집주인인 셋째 언니는 둘째 언니 눈치를 살피게 되고, 막내인 나도 분위기 좀 띄워보려고 과일도 씻고, 맥주도 꺼내오고 했지만 둘째 언니 기분이 좀처럼 좋아지지 않는다.


잠에서 깨어난 첫째.

둘째 언니는 방으로 들어갔다. 아휴..


쟤 왜 그래? 이자카야 못 가서 그래? 왜 이렇게 이기적이야?


또 시작이다. 난 그만 말하라는 뜻으로 언니의 어깨를 툭 쳤다.


지금 1시. 언니! 애 생각한다면서 큰 목소리로 애 깨우지 마라. 맥주나 마셔. 


진짜 자기 생각만 하고 있어.


(손바닥으로 툭 치며) 조용히 하고 그냥 마시라고.


왜 때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그냥 마셔. 왜 때리냐고? 안 때렸어. 때렸어. 안 때렸어. 때렸어.


난 그저 손바닥으로 툭툭 쳤다고 생각했는데 때렸다고 했다. 난 아니라고 했지만 셋째 언니말이 때렸단다. 제3 인물이 봤을 때 때렸다고 하면 때린 거다... 그래. 내가 사람을 때렸구나.


큰언니는 애써 흥분된 마음을 눌렀다. 그리고 갔다.

그때부터 나는 눈물 콧물 쏟았다. 아주 난리다. 난장판이네.


진짜 엉엉 울었다. 언니의 베개에 눈사람 모양 눈물 자국을 남겼다. 소리 내어 울다 숨을 몰아치며 울다

둘째 언니와 셋째 언니는 막내가 우는 이유를 자기들 마음대로 생각하고 내 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

세상 다정한 우리 언니들. 둘째 언니도 다정 모드로 돌아왔다.


오늘 하루종일 바쁘고 힘들었는데 언니들이 이러니까 힘들었지?

내 기분 상하지 않게 하려고 큰언니 말하는 거 말리느라 그런 거지?

.....


근데 말이다.

다 틀렸어.

내가 우는 건 말이야.


형편없는 내 모습에 실망해서야.


때렸으면서 때린 지도 모르는... 그 언젠가 정말 내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해놓고 때린 지도 몰랐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들.

아이들한테 너희 손은 예쁜 손이야. 다른 사람들 때리는 손이 아니야.라고 늘 말해왔는데 마흔이 넘은 나는 다른 사람을 때려놓고도 때린 줄도 모르는 바보. 형편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한테 실망해서 울었다. 눈이 팅팅 부었다.


숨을 몰아쉬며 콧물을 훌쩍이며 흐르는 눈물에 앞이 흐릿했지만 핸드폰을 열어 메시지를 보냈다.


언니 미안해... 진짜로.

그녀에게 답장이 왔다.

ㅇㅇ


다음날 부모님을 모시고 우리는 다 같이 점심 식사를 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너의 손은 예쁜 손이고 돕는 손이다. 때리는 손이 아니다. 의 손은 귀한 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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