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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우무빙 Dec 02. 2023

똥머리가 잘 어울리는.

키즈요가 선생님을 만났다

노트북 모니터를 열고 찾는다.

아.. 뭐 없나? 애들한테 운동으로 같이 해줄 만한 거 말이야.. 없냐고.


2016년 초등학교에 발을 내딛게 되었다. 교육복지 사업으로 성장지원 프로그램을 하게 되었다.

10년 동안 물리치료사로 운동치료를 했다. 고맙게도 물리치료 일을 그만둔 후에도 그 경력은 다른 길로 이끌었다.

아이들을 위한 운동 프로그램을 짜고 수업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고 꽤나 재미있었다. 그런데 뭔가 더 알차고 짜임새 있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새로운 자격증을 갖고 싶었다. (자격증 취득하는 거 좋아함)


자격증은 따고 싶고, 돈은 없는 상태. 찾고 찾는데 여성인력개발원에서 키즈요가 자격 과정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이거야! 딱이다. 교육 금액은 저렴하고, 아이들 수업에 적용할 수 있는 소스를 알차게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그래서 신청했다.


그런데 말이다. 인연이 아닌지 인원 미달로 교육은 취소가 되었다. 허탈한 마음이 밀려왔다.

난 그때 둘째 임신 초기였고 그렇게 점점 더 배가 불러오고, 학교 일도 쉬고 아이를 낳았다.






2018년 겨울 키즈요가 자격 과정 교육을 신청했다. 하고 싶은 건 해야지.

시절 인연이라 했던가? 딱 좋은 그때에 딱 만날 이유가 있어서 만나지는 사람들. 그때에 내게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게 세 번째 요가 선생님을 만났다.


교육에 참여한 사람들은 엉덩이 라인이 다 드러나 보이는 레깅스는 기본이고, 상의도 몸에 쫙 붙는 옷을 입고 있었다. 당시 나는 요가의 '요'자도 모른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것과는 상관없는 사람이었다.

그 옷차림이 오버스러워 보이면서도 예뻐 보이기도 했다. 난 못 입을 옷이라고 생각해서였을까?

반바지가 달려있는 레깅스를 입어 처진 내 엉덩이를 가렸고, 상의는 뭐 추워 죽겠는데.. 니트를 입었다.

지금 생각하니 너무 웃기는 복장이다.


대부분이 이미 요가 강사이거나 강사 자격과정 준비 중인 분들이었다.

아! 유치원 선생님도 한 분 계셨다.


그녀가 들어온다. 키가 170Cm는 되어 보이고, 검은색 롱패딩을 입고 있었는데 유난히도 길어 보였다. 높게 올려 묶은 똥머리가 눈에 띈다.


예쁘네. 잘 어울려. 


롱패딩을 벗으니 역시나 레깅스에 따뜻해 보이는 니삭스를 신었고, 연핑크빛 플리스 지퍼를 목까지 올리고 있었다. 낭랑한 목소리가 듣기 좋고, 오버스럽지 않은 표정이 편했다.






자. 이제 우리가 나비가 되어볼 거예요. 두발을 서로 붙이고 팔랑팔랑 나비가 날아갑니다.

(두 무릎을 위아래로 들었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움직인다.)

예쁜 꽃이 있어서 나비가 잠시 쉬어간대요.

(움직임을 멈춘다.)

자, 나비들이 낮잠을 자고 싶나 봐요.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쿨쿨.

(몸통을 앞으로 숙이고 호흡한다.)


음.... 경숙님! 해볼까요?

네? 뭐요?


나비자세요. 아이들한테 한다고 생각하고 해 보세요.


낯간지럽다. 어떻게 해.

어느덧 말하고 있다. 그 말을 따라 함께 하는 교육생들이 움직인다.

'부끄러움은 남의 것. 나 배워야 돼.' 정신 붙들고 반복할수록 더 자연스럽게 한 것 같다.


전사자세를 할 때는 앞에 있는 악당을 물리치며 "얍얍얍!"

다리 자세를 할 때는 소인국 사람들이 지나갈 수 있도록 엉덩이를 번쩍 들어줬다.

팔을 뒤로 번쩍 들어 코끼리 코로 변신하고 "뿌우 뿌"하며 소리 내고 움직이고, 숨 쉬었다.


나비 자세


더웠는지 선생님이 플리스를 벗었는데 새빨간 상의를 입고 계셨다.

하얀 피부를 드러낸 선생님은 목도 길고 똥 머리까지 어우러져 '나 요가강사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난 참 복이 많네. 키즈요가를 처음 내게 알려준 나의 선생님은 친절하면서도 오버스럽지 않았고, 궁금한 것은 마음껏 물어보라고 하고, 잘 알려주었다. 자격증 취득을 위해서는 심사위원 앞에서 스토리텔링도 해야 하고, 실기 시험도 보아야 했다. 그 준비 과정을 지켜보고 코칭해 주었다.








요가강사다. 어른들도 만나고 여전히 아이들도 만난다. 키즈요가 워크숍과 지도자과정도 한다.

똥머리가 잘 어울렸던 요가 선생님처럼 나 역시 키즈요가를 지도하는 것에 대해 누군가에게 알려주게 되었고, 매순간 진심이다.

가끔 생각난다. 나의 선생님.


경숙님은 잘하니까..


네? 그렇다. 나한테 잘한다고 했다. 칭찬은 날름날름 받아야지. 그 말씀 한마디에 더 열심히 배우고 연습했다.

키즈요가 나에게도 시작이 있다. 짧은 만남, 강력한 임팩트를 주신 우리 선생님.



이렇게 배우는 사람에서 가르치기도 하는 사람으로 가고있다.  시절 인연의 감사로 삶은 계속 흘러간다.



사진출처 Unsplash  / 내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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