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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우무빙 Feb 03. 2023

주 3회 주민센터 출근 도장

결석은 남의 것

“전에 요가한 적 있어요? 아가 낳고 요가 선생님이 돼도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임신과 함께 일을 그만두었다. 대학 졸업하기도 전에 취업해서 일을 시작했다. 두 번의 이직이 있었고, 그 사이에 쉰 건 모두 합쳐 4개월 남짓. 참 쉴 줄 몰랐다. 재미없는 사람.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뱃속에 아가가 찾아온 걸 알게 되었다. 물들어 올 때 노 저으라 했던가. 직장 상사한테 질리고 질려 때려치우고 싶던 그때였다. 일을 그만두기에 얼마나 적절한가. 뇌병변 장애인들 운동치료를 했다. 배가 나온 상태로 치료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앉을 수 있도록, 설 수 있도록 그리고 걸을 수 있도록 움직임을 가이드하고 치료해야 하는데 배가 나오면 서로 좋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환자분들과는 서로 애틋했는데.. 그렇게 배가 부르기도 전에, 그러니까 얘기 안 하면 임신한지도 모를 그 시기에 그만두었다. 더 똑똑이였다면 그만두지 않고 버텼을까? 육아휴직도 있는데.


처음에는 밀린 드라마 보기가 얼마나 즐겁던지. 특히 나인을 너무 재미있게 보았다. 신비로운 향 9개를 갖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과 연결고리가 매우 흥미진진했다. 그리고 이진욱이 잘 생겼으니까.  아크릴 물감을 사서 그리기도 하고, 코바느질에 흠뻑 빠져 아이 옷이랑 모자 그리고 인형을 신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왜 일자리를 찾고 있는지. 정말 못 쉬는 여자.


여름이 되어갈 때쯤 주민센터 앞에서 현수막을 보았다. 임산부 요가라는 글자가 눈앞에 동동 떠올랐다. 바로 등록. 주 3회 주민센터에서의 요가가 시작되었다.


내 생에 첫 요가원에서 만났던 겨드랑이도 예뻤던 그녀, 나의 선생님은 어느 날 갑자기 나오지 않았다. 보아하니 원장 선생님과 트러블이 있었던 것 같다. 원장님 말투가 그랬다. 너무 슬프게도 다른 선생님들의 수업은 잘 집중이 되지 않고, 나의 그녀 생각이 너무 많이 나서 요가원을 등지고 나왔다. 그렇게 5년이 흘러 주민센터 요가매트에 누워있다.







선생님은 나이가 꽤 있어 보였다. 아담한 키에 소처럼 큰 눈. 그 큰 눈을 꿈뻑꿈뻑 움직이고 반짝이는 눈동자를 이쪽저쪽으로 굴리며 안구운동도 시키고, 안면 근육도 쓰게 하셨다. 얼마나 고마운가.  조금이라도 젊은 얼굴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몸 쓰는 것에 진심인 임산부는 배가 나왔어도 손끝 발 끝 닿으려고 애쓰고, 몸통 뒤로 젖히며 가슴도 활짝 열었다. 배가 쭉 늘어나서 하다 말고 놀라기도 했다.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너무 열심히 해서 처음에는 배도 뭉쳤다.


한 시간 동안 초집중해서 요가를 했다. 요가 후 점심 단골 메뉴는 엄마표 열무김치 비빔밥이다. 따뜻한 흰밥에 열무김치 넉넉히 얹고 먹기 좋게 가위로 반 딱 자른다. 계란 프라이 한 개는 서운하니까 두 개 반숙으로 익혀 올리고, 색도 고운 고추장 반스푼, 참기름 한 바퀴 휘 두르고 통깨는 팍팍 뿌린다, 슥슥 비비면 한 그릇 뚝딱이다. 아가 때문에 나온 배인지, 먹어서 나온 배인지 양손으로 토닥토닥 어루만지고 침대에 누워 쿨쿨 낮잠을 잤다. 꿀 같은 시간이다. 주 3회 절대 빠지지 않는 출석왕으로 이 기쁨을 매번 누렸다.


아가를 편안하게 만날 수 있도록 그 순간을 상상하게 하는 말씀도 하시고,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호흡도 연습했다. 거기에 더해지는 움직임에 푹 빠졌다. 그런데... 아기 낳을 때 숨 이상하게 쉰다고 그렇게 하면 아기한테 산소 안 간다며 간호사 선생님께 혼고 산소 호흡기 꼈다지.


주민센터에서 만난 요가 선생님은 나의 첫 요가선생님과는 완전히 다른 색이다. 또 다른 매력의 소유자다.

첫 선생님은 예쁘고, 온유하고, 친절하지만 바라만 보게 되는 동경의 대상이라면 두 번째 주민센터 요가 선생님은 언니 같다.


다정하다.

“오늘 컨디션 어때요? 잘 낳을 수 있어요. 걱정 말아요.”

재미있다.

“많이 안 아파요. 그냥 콧구멍에서 잘 익은 수박 한 통 나온다고 생각하면 돼요.”

긴장을 풀어준다.

“민정씨가 안보이죠? 아가 잘 낳았어요. 아가 사진 봤는데 엄청 예뻐요.”

독려한다.

“빠지지 말고 나오세요. 같이 열심히 해야죠.”

재워준다.

요가의 마지막 가만히 누운 자세에서 편안한 이완으로 잠시 꿀잠을 자게 한다.


요가 등록 기간이 3개월이 거의 다 채워졌고, 나의 출산일도 다가오고 있었다.

“아가 태어날 때까지 그냥 계속 나와요. 알았죠?”


배려 깊은 것도 추가.

선생님은 그랬다. 그곳에 모인 예비 엄마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했다. 그렇게 따뜻한 사람.


어느 날 신발 신고 가려는데 말을 건네셨다.

“내가 예전에 많이 아팠어요. 애 낳고 나니까 몸이 더 망가졌더라고요. 그때 요가를 처음 시작했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너무 좋으니까 요가강사 되어야겠다 싶어서 요가 강사가 된 거예요. 그때가 32살이에요.

전에 요가해 본 적 있어요? 아가 낳고 요가 선생님이 돼도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어울려.”

느닷없이 건넨 말.


그녀는 꿈을 준다.

그날이 선생님을 만난 마지막 날이다.

가볍게 흘려 들었던 그날의 대화가 씨앗이 되었을까.

잊고 지냈는데 요가 강사가 된 후에야 그날꺼내어본다.


선생님 잘 지내세요? 저 요가강사 되었어요.
선생님은 32살에 요가강사가 되었다면서 나이 들어서 했지만 너무 좋다고
저 보고도 해보라고 하셨지요? 정말 흘려들었는데..
저는 38살에 요가강사가 되었어요.
 누가 알았겠어요? 사람 인생은 알 수가 없네요.
오늘은 3개월의 짧은 기간 만났던 선생님이 생각나는 밤이에요.
지금 왜 다른 거 하고 계실 것 같죠?
 어떤 모습이든 여전히 누군가에게 꿈을 주고 계실 것 같아요.
건강하세요.


사진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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