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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우무빙 Jan 17. 2023

겨드랑이가 예쁜 그녀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거.

요가 수련을 할 때 중요한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시간이 잘 맞아야 한다.

요가라는 녀석이 일상의 일부로 깊이 들어오려면 수련하는 시간이 중요하다. 새벽에 잘 일어나지도 못하면서 새벽 요가를 한다고 하거나 퇴근 후 친구들 만나서 맛있는 걸 먹고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하면서 저녁 수련을 하겠다고 한다면 호기롭게 시작했다가 며칠 못 가서 멈춰버릴 거다. 그러니까 내어줄 만한 시간에 운동을 해야 한다.


둘째, 장소가 주는 안정감이다.

유난히 조명이 밝아 고개를 들어 올리는 동작을 할 때마다 눈이 부시다면.

벽 한 면을 가득 채운 대형 거울 덕분에 나랑 다른 사람을 자꾸 비교한다면.

냄새에 민감한 사람이 향이나 오일을 자주 사용하는 수련원에 가게 된다면.

핸드폰을 수련하는 장소까지 굳이 가지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다면.

추운 겨울인데 방바닥 찬기운이 올라온다면.

불편할 것이다.

그룹수업이기에 여러 사람들이 함께 있지만 나만의 매트에서 내 세상을 펼치기에 충분한 공기가 있다. 그것이 장소가 주는 안정감이다. 개인차가 있다.


셋째, 요가 지도하시는 선생님이 좋아야 한다.

좋은 선생님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세상 어려운 요가 동작을 너무 쉽게 하는 선생님, 이름만 대면 요가 강사들 사이에서도 알만한 선생님, 인도에서 오랫동안 수련과 공부를 한 선생님, 요가 인생을 담담하게 녹여낸 책을 발간하신 선생님 등 대단하신 분들이 많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라.

내가 가기 가장 편안한 그 시간, 그 장소에서 수업을 잘해주시는 선생님이 가장 좋은 거다. 같이 있으면 재미있고 말 안 해도 편안한 절친처럼 마음 코드가 잘 맞아 연결되어야 한다.








일단, 퇴근 직후 요가 수련 시간은 탁월했다.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요가를 시작한 것이 아니므로 1시간 수련 후 밥 좀 많이 먹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일주일에 3일 적당히 땀도 흐르고 집에 가서 샤워하고, 저녁 먹는 패턴이 아주 찰떡이었다.


옷을 갈아입고 차 한잔 마시며 담소 나누는 공간은 백열등으로 밝았다. 하지만 수련실은 조도가 낮아 눈도 편안하고, 마음도 차분하라고 수련 전 준비를 시켜주는 듯했다. 그러니까 마음에 들었다.


자자, 이 부분이 아주 중요하다. 다 좋은데 선생님이 나랑 잘 안 맞으면 말짱 꽝이니까.

수련실 앞 낮은 단상 위에 펼쳐진 요가매트 위에 그녀가 앉아 있었다.  입가에는 고요한 미소가 흘렀다. 햇살 좋은 날 드넓은 강가에  반짝반짝 일렁이는 아름다움. 그런 미소다. 이런 말 참 웃기지만 요가 선생님에게 반했다.


6시 20분이 되면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라는 말과 함께 눈빛을 던진다.

“쇼핑 좋아하세요? 저는 아주 가끔 요가복을 사요. 그것 말고는 별로 다른 것 사는 일이 없어요.”

“어떤 일을 할 때 즐거우세요?”

뭐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시작을 알렸다.  처음엔 어색하기도 했다. 가끔 말을 시켜서.

그런데 그녀의 잔잔하고 고요한 목소리로 안부를 물어올 때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다.


다운독 자세를 하고 있을 때 내 옆을 지나가는 선생님의 발이 보였다.

‘와, 발 뒤꿈치 엄청 매끈하다. 각질이 하나도 없어.’

나이는 나랑 비슷할 것 같은데 굳은살 많은 내 발뒤꿈치랑 너무 달랐다.


“두 팔을 위로 올리고..”

새하얗고 빛나는 겨드랑이


그렇다. 겨드랑이가 새하얗고 예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조명이 어두운 편이라 그랬을까. 겨드랑이에 주름도 별로 없이 매끈하고, 온화해 보이기까지 했다. 겨드랑이에 표정이 있던가.


긴 목과 매끄럽게 떨어지는 어깨선이 여성스러워 보였다. 주근깨를 비롯해서 외모에 자신 없어서인지 그 여성스러움을 바라보는 게 좋았다.

요가 동작을 보여줄 때에는 단아하면서 땅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린 나무처럼 힘이 있었다.

처음 보는 연보라색 요가복은 겨드랑이조차도 새하얀 선생님한테 정말 잘 어울렸고, 막 티셔츠 입고 요가하던 내요가복 하나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용기가 없어서 어디서 샀느냐고 물어보지도 못했다.)

말랑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는 집중하게 만들었다. 한 마디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말에 따라 숨을 쉬며 움직일 때 몸도 좋아하고, 마음은 더 좋았다.


한 시간이 점처럼 흐르고 매트에 편안하게 몸을 뉘이면 달콤한 꿈의 세계로 향했다.

완전한 이완, 완벽한 쉼.

‘내 얼굴에도 선생님처럼 빛이 나고 고요한 미소가 번지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지만 어쩜 그렇게 잘 자냐며 코도 골더라고 같이 수련한 직장 동료들에게 얘기를 들었다. 풉.






무엇을 배우든지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은 복이다. 맞는 코드를 꼭 발견할 것.

그래. 난 찾았다.

나의 그녀. 요가를 하러 가는지, 그녀를 만나러 가는지. 나 홀로 짝사랑하며 그렇게 요가에 스며들었다.


나의 좋은 선생님. 주 5회로 바꿀까.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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