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 50분 퇴근 시간. 치료실 문을 살짝 열고 눈알을 이리저리 돌린다. 너무 칼퇴근이라 사실 눈치가 보였다. 양심껏 10분 정도는 더 있다가 나가라고? 그럴 수는 없다. 일주일에 3번 요가원에 가는 날은 절대 양보할 수 없지.
첫날의 후끈했던 근육통은 나랑 계속 붙어있고 싶었나 보다. 떠날 생각이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나아질만할 때 늘 새로운 근육통이 찾아왔다. 성격도 제각각이다. 날개뼈 뒤쪽을 쪼아 오는 근육통은 머리털이 쭈뼛서게 하는 통증이다. 아픈데 날 깨운다. 양 허벅지에 달려든 무거운 근육통은 자세를 바꿀 때마다 ‘나 여기 있소.’해서 얄미웠다.
웃기게도 양 목덜미를 타고 드는 근육통은 새침하다. 그 새침함이 밉지 않고 자꾸 살펴보게 된다.
평소 스트레칭도 자주 했던 편이고 내 몸 쓰며 남의 몸을 쓰게 돕는 일(운동치료)을 했기에 요가를 잘할 거라고 생각했다. 단지, 꾸준한 운동을 위한 강제적 장치차원에서 요가원을 등록한 것이다.
신기한 거다. 이렇게 갈 때마다 새로운 근육통님이 오시는데도 내 두발은 그곳을 향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들어가 운동복 바지에 펑퍼짐한 티셔츠를 입고, 차 한잔을 마셨다. 그 편안함이란.
앞에서 두 번째 왼쪽 창가 자리가 좋았다. 맨 앞줄은 너무 주목받는 자리라 땡. 세 번째 줄은 선생님과 너무 멀어 잘 안 보이니 땡. 그래 두 번째 줄이 딱이다.
언니들이랑 잘 때에도 중간에 끼어 있음 답답했다. 다리 하나 정도는 이불 밖에 내놓아야 자유로웠다. 그래서일까? 왼쪽 창가자리가 또 하나의 숨통, 숨길이 되는 기분이었다.
선생님께서 안내하시는 대로 열심히 따라 했다. 열심은 내 장점이면서도 적이다. 성실하게 손끝, 발끝까지 나름대로 예쁘고 멋지게 따라 했다. 가끔 동작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아름답다고 착각도 했다.(나중에야 알았다. 누가 그러더라. 모양만 예쁘게 흉내 내는 건포토요가라고.) 그나저나 숨이 차 오르고 떨리는대도 왜 멈추지 못하는지. 왜 끝까지 하고 있는 건지.
‘이상하다. 나 유연한 편인데 왜 이렇게 힘들어? 장난 아니네.’
이런 생각이 스칠 때 선생님이 틀어져 있었던 내 몸통을 바로 잡아주고는
“발바닥을 꾹 누르고 다리에 힘을 주세요. 숨 쉬어요.” 속삭이고 지나가셨다.
‘힘을 주라고?’, ‘숨을 쉬라고?’
힘.
숨.
그러고 보니 유연성이 필요한 동작들도 있지만 힘과 안정성이 필요한 자세들도 있었다.
*스트레칭(stretching) : 몸과 팔다리를 쭉 펴는 것 - 네이버 국어사전
그랬다. 스트레칭이 요가에 속하기는 하지만 스트레칭이 요가는 아니다. 나만 그렇게 생각했던 건 아니다. 같이 운동하러 간 동료들도 유연함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요가를 유연한 사람들이나 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유연성도 있고 힘도 있어야 하는 거라고 말하지 않을 거다. 지금에서야 이야기하지만 유연하지 않아도, 근력이 약한 편이어도 할 수 있는 게 요가다. 부족한 걸 채워가고 넘치면 다듬어 가는 것이 요가다. 어쨌든.
다중이 근육통이 내게 오는 게 기쁘고 반가웠다. 몸과 팔다리를 쭉 펴는 스트레칭만 하는 게 아니라 잘 사용하지 않던 새로운 근육을 야무지게 사용했으므로 그게 뿌듯했다. 내 몸인데 소홀했던 애들을 만나 대화하는 기분. 너무 오랜만에 만나 그 친구들도 할 말이 많았는지 얄궂게, 새침하게, 묵직하게 나를 대했다. 존중해줘야 할 근육통님들임에 틀림없다.
특히, 선자세에서 전사자세를 하고 있노라면 늘어진 허벅지 뒤 햄스트링이 쫀쫀해지는 기분이다.
“주인씨! 몰랐지? 나 원래 이렇게 쫄깃하다고.” 햄스트링의 속삭임에 피식 웃음이 난다.
심장의 쿵쾅거림이 빨라지고 숨이 잘 안 쉬어져 참는 날. 나도 모르게 참고 있다가 한 번에 툭 터트리는 때를 지나다 보니 어느새 조금씩 숨도 편해졌다. 호흡이 빠지면 요가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