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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Jan 26. 2023

글 쓰는 뇌로 바뀌고 있다는 증거


"별아 저녁에 닭볶음탕 먹지 말고 그냥 김 싸 먹으까?"

"아니. 닭볶음탕 먹기로 약속했으니까 해줘 엄마"

"아 맞다 약속했지 알겠엉"





원래도 똥손인 데다가 방학이라 가사노동의 비율이 높아지니 닭볶음탕을 하기가 살짝 귀찮았다. 아니 많이.

대충 김으로 때우려던 작전은 실패다. 조용히 암웨이 인덕션과 웍을 꺼냈다.


1. 웍에 물을 가득 붓고 닭볶음탕용 닭을 넣고 팔팔 끓여낸다.

2. 불순물과 함께 끓어오른 물을 버린다.

3. 다시 물과 양념을 넣고 끓인다.


내가 평소 하던 방식대로 1번을 실행 후 2번을 할 차례였다. 웍은 무겁고 안에는 방금 전까지 팔팔 끓던 물이 들어있는 상태였다. 물을 버리기 위해 한 손으로 싱크대에 웍을 반쯤 걸친 채 다른 한 손으로 국자를 집으려 몸을 살짝 돌렸다.





"꺄아아아아악!!!!!!"  댕그랑 통 통통통통

"엄마 왜 그래!?"

"아악 너무 뜨거워 어떡해 아악!!!"



[사건 현장]








어느 작가가 교통사고가 나서 응급실에 가게 되었는데 아픔을 느끼기에 앞서 이제 교통사고가 났을 때의 상황을 글로 실감 나게 표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뻤다는 내용의 글을 본 적이 있다.

나에게도 그 순간이 온 것 같다. 팔팔 끓었던 물이 내 발에 낙하하는 순간 냄비를 바닥에 내동댕이 치고 욕실로 달려갔다. 가면서도 냄비가 바닥에 내팽개쳐지는 소리에 '아랫집 놀랬겠다. 고의는 아닌데 부디 이해해 주길' 층간소음을 걱정하며 샤워기로 차가운 물을 틀어 발에 뿌렸다. 고통이 퍼지는 순간 [이 느낌 이 상황을 얼른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수건으로 조심히 닦은 후 습윤밴드를 잘라 붙이고 급하게 노트북을 펼쳤다. 의식의 흐름대로 한조각도 잊지 않기 위해 마구 써 내려갔다.




"엄마 아픈데도 지금 당장 그걸 써야 돼?"

"응 써야 돼(글썽글썽) 나중에 쓰려면 아주 하얗게 기억이 안 나"




사실 집에서 별다른 치료방법이 없기도 했고 어차피 아픈 거 흔적이라도 남기면서 아프자며 계속 썼다.

퇴근한 남편은 미끄덩한 바닥을 다섯 번쯤 닦아내고 병원에 안 다는 고집 센 나를 데리고 응급실로 향했다.

2도 화상과 군데군데 1도 화상을 입은 내 발을 젊은 의사 1명과 더 젊은 의사 5명이 나를 빙 둘러싼 채 치료해 주었다. 젊은 의사 샘의 말에 나와 인턴샘 5명은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 쓰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해 준 증거 ] [ 갑자기 발 사진 죄송합니다 ]









현재의 나는 작가라고 하기에는 다소 민망하지만 쓰는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읽기만 죽어라고 하던 뇌가 서서히 쓰는 뇌로 바뀌어가고 있음을 몸소 느낀 후 아프지만 뿌듯한 마음이

훨씬 컸다. 일주일에 글 한편 발행이라는 나 스스로의 약속과 조금 더 욕심내어 올해 안에 100편 쓰기라는 목표를 달성 후 나의 뇌는 또 얼마나 달라져있을지. 짜릿해져 온다.









덧붙임. 내가 사는 도시에는 소독할 수 있는 병원이 성형외과 밖에 없다. 하지만 의느님께선 수술을 들어가셨기 때문에 성형외과는 패스. 조금의 기대를 걸고 하나밖에 없는 내과에 전화를 했다.

"안녕하세요~ 화상 입은 부위 소독 가능 한가요?"
"아니요 피부과를 가셔야죠"

그럼요. 저도 알죠 피부과 가야 되는 거. (흑흑)
하지만 이 도시에는 피부과가 없는 거 간호사 언니도 아시잖아요? 혹시나 해서 전화했던 거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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