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기 키보드를 샀다. 무려 330만 원을 주고.
딱 1년 채우고 중고로 35만 원에 되팔았다. 젠장 역시 팔 땐 똥값이다.
그래 이건 그만두는 게 맞아. 이미 레드오션이니까.(몰랐던 것처럼 말한다)
호기롭게 공인중개사 강의 결제 버튼을 눌렀다. 가격 따윈 중요치 않다. 난 곧 공인중개사가 될 테니까.
일주일 뒤 전화를 걸어 취소 요청을 했다. 아이가 폐렴에 걸렸고 입원을 하게 되니 촘촘하게 짜 놓았던 패턴이
무너져 공부시간을 확보하기 힘들었다는 핑계를 대본다.(애들 아픈 게 어디 원데이 투데이 있는 일인가)
크고 작은 수많은 것 들을 거쳐 최근 나의 레이더망에 포착된 것이 하나 있다.
그 이름도 고운 미꽃체. 통화하며 갈겨쓴 메모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의 악필과 두 아들의 글씨에 훈수를 둘 때마다 "엄마 글씨는 더 알아보기 힘든데?"라는 수모에서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수강기간 3개월과 1년. 선택의 갈림길에서 치열하게 갈등하다 전적이 떠올라 3개월을 클릭했다.
시작도 잘하고 포기는 더 잘하는 나의 치밀하고도 계산적인 선택이다. 모눈종이를 출력해서 사용할 수도 있지만 기어코 노트와 펜을 구입하고서야 만족스럽다. 공부든 육아든 장비빨이다.
"안녕하세요 미꽃입니다 호호호홍" 쾌활한 선생님의 목소리로 매회 강의가 시작된다.
개미 똥꾸멍만큼 작은 모눈에 맞춰 쓰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뭐야 생각보다 어렵잖아? 몇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아이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그만두는 것도 이젠 눈치가 보인다. 무조건 1일 1강 한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겨우 지켜내며 기초과정이 끝났고 모눈 칸에서 줄글 칸으로 넘어갔다. 글씨가 꽤나 그럴듯해 보였고 '오 나 제법 쓰네?'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흔들림 없는 선을 그으려니 힘이 과하게 들어갔고 손가락이 슬슬 아파왔다. 특히 엄지가 더 이상은 할 수 없다고 비명을 질러댔다. 친구네 카페 메뉴판을 손수 만들어 주겠다고 큰소리 뻥뻥 쳐놨는데. 카페에 놀러 가서 슬쩍 운을 뗐다. 아니이이! 손가락도 너무 아프고 실력이 늘지도 않고 하지마뿌까 생각도 들고 어쩌고 저쩌고.
잠자코 듣고 있던 그녀가 벌떡 일어나 내게로 다가왔다.
"야! 때려치우더라도 내 메뉴판은 만들어 주고 때려치아야지 !!!!!!!!!!!!"
그날 이후, 미라클 모닝 루틴에 미꽃체가 위풍당당하게 자리를 잡았다. 내일도 영어강의를 들은 후 젤 펜을 꺼내어 들겠지. 하마터면 또 때려치울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