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야 그래도 신도시가 깔끔하고 애들 학교도 코앞인데 더 낫지 않겠어?"
근처 구도심보다 깨끗한 외관에 대충 보니 노브랜드도 있고 버거킹도 보인다.
있을 건 다 있는 가보다. 남편 말에 일리가 있다. 좋다 여기가 딱이다.
세 남자가 모두 나가면 아침 8시 10분. 후훗 다 나갔군. 재빠르게 집안일을 끝내고 차키를 챙겨 든다.
출근시간을 지나서인지 도로에 차가 없다. 그 흔한 갓길 주차도 없다. 미리 검색해둔 빵집과 라떼 맛집을 차례로 찾아내고는 뿌듯함에 어깨가 한껏 치솟는다. 내일은 반찬가게를 꼭 찾고 말겠어 비장한 각오를 다져본다. 돌아오는 길은 역시나 텅텅 비어 있다. 주차된 차 외에 움직이는 차는 내차 포함 3,4대가 전부다. 딱 좋다. 바로 이거거든. 차 안 막히지, 공기 맑지, 하늘은 기가 막히게 예쁘지. 로켓 프레쉬가 오지 않는다는 게 살짝 아쉽긴 하지만 이거야 뭐. 3분 거리의 마트가 있으니까. 쪼르르 가면 되니까. 순조로운 생활의 연속이었다.
단 몹쓸 고통이 찾아오기 전 까지는 말이다.
전날 밤부터 안면부 압통과 편두통이 시작되었다. 또 부비동염이다. 걸렸다 하면 압통과 두통이 꽤나 심해 꼭 이비인후과에 가서 약 처방을 받아야 한다. 아침부터 서둘렀다. 병원부터 검색하고 목적지를 입력하니 3분 거리다. 주차장까지 날다시피 뛰어갔다. 띠딕 띠딕 띠딕. 뭐야 시동이 왜 안 걸려? 심히 당황스럽다. 괜찮다. 침착하자. 일단 택시를 타기로 한다. 병원이 가까워 오는데 웬 안내판 하나가 불길하게 입구를 가로막고 있다.
아니 지금 아홉 신데? 벌써 마감이라고? 왜지? 다른 이비인후과를 검색해보는데 충격의 연속이다. 우리 동네에 없네? 가장 가까운 병원이 19km 떨어진 곳이었다. 집 계약하는 날 지나가면서 치과는 3개나 있고 한의원도 2개나 있는 거 분명 봤는데. 이비인후과는 왜 하나인 거지. 차도 고장 났는데 어떡해 하. 옆동네 읍내 의원에서 이비인후과 진료도 함께 본다고 하여 다시 택시를 타고 달려갔다. 누가 망치로 머리를 내리치는 것 같은 고통이 밀려왔다. 병원 찾아 헤매는 내 처지가 눈물 나게 처량하다. 헛웃음이 난다. 진료가 끝나고 (다행히 의사 선생님은 굉장히 친절하셨다) 약국을 찾는데 약국이 또 없다. 병원&약국 이 두 곳은 원래 세트 아니었던가. 100m쯤 걸어가니 약국 건물이 어서 오라 손짓하고 있었다.
"약사님 빈속에 먹어도 괜찮죠?" 으흑흑
줄줄 흐르는 눈물을 방치한 채 약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30분만 지나면 괜찮다 괜찮아질 거다.
어제까진 차 없고 공기 맑고 하늘도 미치게 예뻤던 곳이었는데 오늘은 그냥 시골 촌구석이다.
병원 한 번 갔다 오는데 택시비 3만 원을 썼다.
사람들이 신도시 살다가 다시 구도심으로 나간다던데 다 이유가 있었네.
무더운 여름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