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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민 Jan 29. 2024

냄비를 사는 남자


결혼 10년 차에 접어든 우리에겐 그 세월을 닮은 주방용품, 가전제품, 가구가 함께 숨 쉬고 있다.

익숙한 것에 마음 주는 난, 낡은 냄비도, 깜박거리는 가전제품도, 삐그덕거리는 가구도 그저 정겹다.


그러나 그는 다르다. 그 첫 번째 목표는 주방이었고, 특히 냄비였다.     


허리를 낮춰 하부장 구석에 박혀 있는 냄비를 부지런히 꺼낸 남편은 왼쪽과 오른쪽을 구분 지어 차곡차곡 쌓아 올리기 시작했고, 하부장이 텅 비었을 때 왼쪽은 버려야 한다고 통보하였다.     


“왜? 아직 쓸만한데?”

“코팅이 벗겨지고, 손잡이 부분도 낡았잖아. 위험해. 그리고 냄비가 별로 없어서 요리할 때 불편해.”     


라면 밖에 끓이지 않는 그가 ‘요리할 때 불편하다’는 소리에 신뢰감은 곤두박질쳤다. 물론 벗겨진 코팅은 늘 마음이 불편했기에, 알겠다고 알아보겠다고 대답한 난, 냄비를 우선순위 마지막에 살짝 걸쳐놓았다.    

 

집요한 그는 나의 무관심을 눈치챈 듯 매일같이 물었다.

 

“냄비 골랐어?”

“사야지.”


그렇게 3주 가까운 시간 동안 나와 얼굴이 마주치면 냄비이야기를 쏟아냈다.


“편수냄비는 말이지 2개는 있어야 해. 그리고 테두리에 굴곡이 없어야 설거지가 편해. 궁중팬은 28센티가 좋아~30센티가 좋아? 생선 굽는 팬 하나 살까?....”

아. 그리고 여보. 이 기사 봐. 가격이랑 브랜드가 중요한 게 아니야. 가성비가 좋아야 한다고.”


헤드럴경제 기사



냄비 방문 판매 직원처럼 냄비에 관해 알아본 정보를 나에게 딱따구리처럼 딱. 딱. 딱. 쏟아냈다. 한참을 듣다 한계점에 도달했을 때, 남편에게 툭 던졌다.

     

“쓰던 거 쓰면 안 돼?”     


방판직원 남편은 한동안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유튜브 알고리즘은 냄비를 줄줄이 나열시켰다.








아내는 알맞게 감기는 손잡이와 적당한 무게감을 주는 손목의 안정감이 좋았다.

익숙함이 좋았다. 아니, 새로운 것이 두려웠다.

     

남편은 아내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익숙함에 빠져있는 것이 안타까웠다.

한 발만 나아 서면 편리함이 있는데, 그 한 발의 위험을 감수하지 못하는 아내를 이끌고 싶었다.

    

실패해도 괜찮다고, 내가 옆에서 이끌어주겠다고,

익숙함과 행복함을 혼동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택배가 도착했다. 결국 남편은 냄비를 샀다.   

  

낡은 냄비


10년을 가까이 한 낡은 냄비를 식탁 위에 놓고 하부장에 새로운 냄비로 채웠다.

그 냄비를 한동안 지켜만 보다, 그것들로 식사를 준비했다.     


편수냄비에 시금치 된장국을 끓이고, 프라이팬으로 계란말이를 돌돌 만다. 마지막에 생선구이팬으로 조기를 굽는다. 이젠 생선구울 때 고무장갑을 끼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다소 서운하다.


아이들에게 한상 가득 차려주고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요리를 하지 않는 그가 냄비에 집중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집요하고 지나친 그가 때론 벅찼다. 한 템포 진정 후, 그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냄비에 집착해?”

“여보 편하라고 그러는 거지.”     


뭉클하고 올라오는 무언가에, 눈시울이 불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여보가 오늘 치킨 쏘는 거야?”         

눈물은 언제 맺혔냐는 듯 금세 쏙 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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