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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민 Mar 25. 2024

친구가 좋을 나이, 마흔

똥손의 행복노동


중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친해지기 시작한 우리 다섯 함께 한 세월이 어느새, 27년이다.

고로, 우린 마흔이 되었다.


비슷비슷한 것들끼리 모여 어영부영 무탈하게 보낸 덕에, 긴 세월 다툼 한번 없었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참고로, 우리의 특징을 하자면, 여성성과 남성성의 중간 언저리에서 자리 잡은 우리는 쉽사리 화내지 않는 무미건조한 맛을 지니고 있다. 일종에 심심한 곰국이랄까.


자극적이지 않는 맛은 다소 심심하나, 먹다 보니 그 깊이가 일품이다.    

 

그러나 일 년에 한 번,

심심한 그녀들의 화려한 외박이 시작된다.


그렇다. 아이가 둘이나 있는 나 역시, 이날을 위해 1년을 손꼽아 기다린다.


‘나는 곧 자유부인이다.’     


3월의 마지막주 주말로 날짜가 정해지며, 가장 나가고자 하는 욕구가 강한 누군가가 단체카톡방에 숙소리스트를 실시간으로 올리기 시작한다. 그게 바로 나다.


오래 기다리지 못하는 난, 재촉하기 시작한다.

예약되기 전에 사수해야 해!!!

그리고 총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예약완료’ 메시지를 올다.    

 





결혼 전 우린, 꽤나 자유롭게 여행을 다녔다. 그러나 가정이 생기고 더불어 아이들이 늘어나며 365일 중 하루, 아니, 반나절도 내 시간을 갖는 것이 쉽지 않아 졌다.

다행히, 아이들이 커가며 아빠와의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들끓는 자유를 재기하기 시작했다.     


올해가 공식적인 네 번째 외박이다.      

    

초상권보호로, 지난 여행 사진은 음식사진으로 대신합니다






이번 숙소는, 종로 옥인동의 한옥 독채다.

따끈따끈하고 고즈넉한 공간은 마흔의 우리에게 안성맞춤이다. 더욱이 2층 다락에 자리 잡은 짙은 책장과 빼곡히 채워진 책들은 나를 설레게 하는 포인트였다.

그래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단톡방에 슬쩍 제안했다.


이번에도 마니토 진행?
책 선물 어때?


호불호가 극명다. 그러나 그 반응조차 나는 설다.     



아이들이 등원한 고요한 아침, 거실에 모든 장비를 채다.

포장지, 스카치테이프, 가위, 리본끈, 양면테이프, 책, 그리고 친구들을 위한 서프라이즈 선물.


똥손은 아침부터 요란하다.

포장지 자르는 일조차 쉽지 않다. 흐물흐물한 포장지가 제멋대로 모양을 바꾸는 탓에 발이 나서서 도와야만 했다. 그리고 하필 그 순간, 남편이 타났다.


“대단하다~~~”


비아냥거리는 남편의 말투도 오늘은 유독 사랑스럽다.     



작년 여행에 마니토와 별개로, 책을 가까이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친구 이름과 메시지를 새겨 책갈피를 선물했다. 



그리고 이번 여행은 오롯이 ‘편안한 우리 여행’에 맞혀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다.

흐물거리는 그 녀석을 포장하는 일은, 책보다는 쉽지 않았지만 웃음이 났고

제각각 모양이 다르기에 뽑는 맛을 위해 내 것을 포함해 5개를 포장했다.    

 

상상한 (포장) 모양을 따라가지 못하는 똥손은 허우적거린다. 그럼에도 즐겁다.






고등학교 야자시간, 친구들과 3층 계단에 모였다.

차가운 시멘트 계단 위, 검정봉지를 깔고 따끈한 떡볶이를 가운데 둔 우린 서둘러 동그랗게 모여 앉았다. 시작이랄 것도 없이 서둘러 해치운 떡볶이의 맛은 신기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순간 우린 즐거웠고 여전히 그때가 그립다.


기억나지 않는 떡볶이의 맛이 지금도 그리운 것은

보통의 일상도 특별해지는 우리의 순수함이 아니었을까.

  


똥손의 손가락 끝이 간질간질하다.


성한 포장지를 보고 놀려 될 친구,

선물을 뜯고 거부의사를 내세울 친구 얼굴을 상상하니,


오래전 떡볶이와 같이 그리워질 미래가 그려진다.     


그래서일까, 오늘의 노동이 설렌다.


선물 개봉 후기는 추후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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