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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민 Apr 12. 2024

벚꽃 땡땡이

체험학습이라 쓰고 땡땡이라 읽습니다


“선생님. 올해 여행을 자주 다니려 합니다. 고로, 체험학습을 자주 제출하겠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우린, 공식적인 땡땡이를 허락받았다.     








따스한 햇살과 상쾌한 찬바람이 어우러진 4월, ‘벚꽃’을 이유로 속초로 출발했다. 새파란 하늘은 설레었고 그 경계와 맞닿은 속초바다는 맑고 잔잔했다.

물을 좋아하는 아이, 바다에 굶주린 난, 곱고 부드러운 모래를 가만히 둘 수 없었다.


“신발 벗을 거야.”

“응. 시후하고 싶은 대로 해.”

“바다 들어갈 거야.”

“엄마도 같이 할까?”     


벗어던진 운동화에 양말을 구겨놓고 시후 손을 잡았다.

나를 이끄는 아이 손은 제법 힘이 느껴졌고 그 시선 끝에 아이는 바다처럼 맑았다.     


차가운 모래와 꺼끌 거리는 촉감의 불편함을 느끼기도 전에 시원한 파도가 다가와 휩쓸고 갔다. 염탐하던 시율이는 우리의 첨벙거림을 확인하고서야 신발을 벗어던지고 동행했다.     



불안과 경계의 벽이 높던 시후는 스스로 그 허물을 무너트리기 시작했다. 까슬거린 촉감도, 발을 감싸던 차가운 파도도 이젠 방해되지 않는다. 물론, 갑작스러운 갈매기의 울음은 여전히 적응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금을 즐기고, 느끼고 있었다.     

 







붉은빛 석양이 내리던 그때 벚꽃 야경을 외치던 남편이 재촉하기 시작했다. 꽃에 관심이 없던 그가, 올해 유독 꽃을 찾다.

“덩치에 안 어울리게 무슨 꽃?”이라며 퉁명스럽게 건넸지만, 인스타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핫한 벚꽃을 찾기 시작했다. 그곳 ‘속초 영랑호’다.


넓은 호수를 감싼 핑크빛 꽃망울은 그를 채워주리라 그렇게 설레며 우린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듯이, 지난달까지 강원도에 내린 눈의 여파로 벚꽃은 여전히 꽃망울에 멈춰있었다.


이렇게 넓은 호수에, 제대로 핀 나무 하나쯤은 있지 않겠냐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1시간이 넘어갔으나, 여전히 호수 끝도 만개한 꽃도 보이지  않았다.


“업어줘.”

남편 다리에 매달린 시율이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음을 몸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후도 다르지 않았다.


“택시 불러주세요!”


시후의 한마디에 묵직해진 종아리가 스르륵 풀렸다. 힘들 때 웃기는 놈이 진정한 승자다.     



우린 2시간 가까이를 걸었다. 아쉬웠던 것은 출발점의 벚꽃이 가장 이뻤다는 사실이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벤치에 앉아서, 아이에게 물었다.


“영랑호에서 뭐가 제일 좋았어?”

“빠삐코!”

“엄마도 지금이 제일 좋다.”     



나무 밑에 떨어진 벚꽃 잎을 코에 가까이 가져가 눈을 감는 시후에게 다가갔다.


“뭐 해 아들?”

“좋다.”     

'좋. 다.'라는 이 말에 땡땡이를 멈출 수 없다.         








체험학습을 신청할 때 체험학습‘신청서’를 작성하고, 여행을 다녀와 체험학습‘보고서’를 제출한다. 땡땡이의 공식적인 명분을 만드는 작업이다. 보고서를 작성할 때, 최대한 교육적인 면을 고려해서 작성한다.


덕분에, 빠삐코를 먹었던 벚꽃 나들이는,

‘봄꽃을 통한 봄의 정취 느끼기’라는 보고서에 알맞은 형식을 찾아간다.          


러나 나는 여기에 한 장을 덧붙인다.

솔직 담백 시후의 일기이다.


여행을 통해 느낀 것을 자유롭게 작성하는 시후의 기록은 ‘체험학습보고서’보다 뭉클한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     




읽고 쓰고 말하기가 느린 시후지만, 오감은 늦지 않다.


친구들처럼,

눈앞에 놓인 일렁이는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싶어 하고,

오랜 걸음에 택시를 불러서라도 종아리의 통증을 덜고 싶어 하며,

그 끝에 맛보는 초콜릿아이스크림 단맛 가치를 제대로 즐긴다.     



시후는 여행을 통해, 그리고 일기를 통해 오늘도 조금씩 자란다. 


시후가 움켜쥔 연필이 사각사각 소리 내며 써 내려간다.

 

팝콘을 닮은 벚꽃을 표현했을까?

바다에서 찾던 백상아리를 여전히 찾을까?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담았을까 궁금증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이윽고 시후는 일기를 툭 건네고 사라졌다. 나는 아이 등에 힘차게 외쳤다.

"코 팠지??!!!  박시후~~~~"




상상이상의 시후일기에 행복이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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