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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민 Oct 23. 2024

아들. 엄마 내 여자야!

10여 년 전 날렵했던 우리 부부는 겁 없이 퀸사이즈 침대를 들였고, 그때보다 곱절 듬직함을 키운 우린 잠자리 파트너를 자연스럽게 바꿨다. 그 패턴이 시작된 건 시후가 태어나며 우렁찬 신생아 울음과 산발적 기상으로 물 흐르듯 그렇게 자리 잡았다. 누구 하나 권하지 않았음에도. 


9살이 된 시후는 태어날 때부터 잠자리 파트너였던 나를 떠날 생각이 없다. 그리고 나 또한 이제 남편보다 오동통 시후 뱃살의 부드러움이 더 익숙하다.     


그러던 날, 침대에서 사달이 났다. 잠든 시율이를 확인하고 침대에 걸터앉은 남편은 시후가 화장실에 간 사이 재빠르게 나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거대한 덩치의 재빠른 행동력에 침대의 왼편이 요동쳤고 그러던 사이, 시후가 왔다.


“무슨 짓이야!”     


발달이 느린 녀석이, 적절한 시기에 적합한 표현을 쓴 사실에 가슴이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너나 할 것 없이 허리를 곧추 세웠다. 물론 다른 목적으로.


내가 먼저 일으켰다.

“아들~~ 귀여워! 말을 왜 이렇게 잘해!”

그 뒤를 이어 남편의 허리가 세워졌다.

“아들. 오늘 시율이랑 자. 아빠, 오늘은 엄마랑 자야겠어.”


내 품에서 생글생글 웃는 녀석은 약 올리듯 남편에게 물었다. “왜요?”     


“엄마. 아빠 거거든!”   

  





5월 가정의 달, 7살이던 시후유치원에서 가족 친척 그리고 결혼에 대한 놀이 중심 교육이 한창이었다. 반응이 한 박자 늦은 시후는 5월 마지막쯤 내게 물었다.


“남자랑 여자랑 결혼해? 엄마랑 아빠랑 결혼해?”


결혼이란 것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지만, 남자와 여자가 결혼한다는 사실과 그 남자와 여자가, 엄마랑 아빠라는 사실을 흘러가는 선생님의 말씀과 집에 걸려 있는 결혼사진을 보며 익힌 시후였다.   

   

아빠가 엄마는 ‘내 여자’라 울분을 토할 때, 시후는 정확히 이해는 못 했지만, 일부 수긍했는지, 오랫동안 같은 자세를 유지하던 녀석이 성큼성큼 침대에 올랐다. 그리고 사뿐히 우리를 비집고 들어와 나란히 누웠다.     


“셋이 자자!”


시후와 남편의 투덕거림은 오랫동안 지속됐고, 결국 시후가 이겼다.








많은 순간 아들에게 아내를 빼앗기는 그는 속상하다. 깨어있는 시간이라도 아내와 함께하고자 다가가면, 그를 닮은 시율이는 곁을 내어주지 않는다. 그럼 조용히 소파 한쪽 끝에 몸을 기대어, 아내를 지그시 바라본다. 그러다 아내와 눈을 마주친 그는 지그시 웃으며 말한다.


“여보. 내일 등교하면 데이트하자”     


별난 그의, 별난 사랑에 아내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린다.     



고대하던 오전, 아이들은 학교와 유치원으로 가고 오롯이 둘이 남았다. 아내가 좋아하는 메뉴를 이리저리 찾는 그는 서둘러 옷을 챙겨 입는다.

평소 운동복과 크록스를 즐겨 입는 그는 말끔한 셔츠에 청바지를 입더니, 어쭈 카디건까지 걸치는 묘함을 펼친다.


오늘 무슨 날이냐며 건넨 그는 ‘여보랑 데이트하니깐’이라며 설렘을 뿜어낸다. 아내는 조용히 방에 들어가 입고 있던 조거팬츠를 벗으며 투덜거린다.


차에 올라타서도 그의 오른손이 간질간질이다. 아내의 손을 꼭 잡은 그의 설렘을 손바닥에 몽글몽글 차오르는 따끈한 맑음이 대신한다. 그런 그를 바라보다 아내는 결국 건넨다.


‘참 희한하다.’ (저는 T입니다.)     


동그란 그의 얼굴에 동글동글 파동이 일렁인다. 입꼬리를 시작으로 번진 잔잔함은 그의 눈꼬리와 만나 내 얼굴에도 동글동글 웃음꽃이 핀다. 그리고 그는 내게 말한다.

     

“여보는 나 없으면 못 산다니깐. 행복하지?”
“어. 그래. 행복하다.. 행복하다..”     





그는 20살을 갓 넘긴 그때도 그랬다. 미소에 거짓이 없는 그는, 나를 처음 본 그때도 오늘처럼 웃었다. 삶이 지치고 힘들 때 속없이 나만 바라보는 그 미소가 미웠다. 그리고 조금 여유가 생긴 지금 변함없는 그 미소에 미안함이 오른다. 결혼하면 변한다는 그 말, 어쩌면 그에게는 먼 이야기이다.      






[epilogue]    


남편 : 요즘 코인노래방 좋다. 반주는 헤드셋에서 나오네. 몰입감 장난 아니네.

아내 : 그럼 밖에 안 들리는 거야?

남편 : 그런가 봐. 우리 연애할 때, 내가 불러준 노래 기억나? 오늘 불러볼까?

아내 : 부르고 있어- 화장실 금방 다녀올게.

남편 : 사랑해요~ 고마운 내 사랑~ 평생 그대만을 위해 부를 이 노래~


화장실에 다녀온 난, 그의 마이크를 뺏을 수밖에 없었다.


"밖에 엄청 크게 들리거든! 반주는 헤드셋에만 들려서 밖에서 들으면, 무반주 음치 최고봉이라고."



사진출처(제목)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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