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노릇 브이로그
[국어사전]
잔소리 : 쓸데없이 자질구레한 말을 늘어놓음. 필요 이상으로 듣기 싫게 꾸짖거나 참견함
잔소리 듣기 좋고 잔소리하기 좋아하는 사람 어디 없을 거다. 잔소리의 사전적 의미는 '쓸데없는 자질구레한 말'이라고 정의한다. 그래 나도 잔소리하기도, 듣기도 싫다.
어린 시절 엄마의 잔소리는 나의 스트레스 1순위였다. 엄마는 본인의 지극히 주관적 판단과, 엄마로서의 의무라도 되는 듯 우리 3형제에게 끊임없는 잔소리를 하셨다. 언니와 동생은 잘도 흘려듣던데, 소심하고 엄마 말 잘 듣던 나는 엄마의 잔소리를 하나하나를 다 받아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아 놓고 엄마가 하지 말라는 것은 절대 하지 않는 착한 딸이었다. 그런데 그게 독이 되더라. 점차 쌓인 잔소리들이 나에게 너무 큰 스트레스였다.
이 잔소리가 또 언제 나에게 향할지? 이런 일로 또 이런 잔소리를 듣겠지? 내가 청소년기를 겪고, 성인이 되어서도 엄마의 잔소리는 줄지 않았다. 이제 무뎌질 법도 한데 유리 멘탈인 착한 딸인 나는 언제나 엄마의 잔소리 앞에 무방비 상태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엄마 말 잘 듣는 딸은 엄마가 빨리 결혼하라는 잔소리에 나 좋다는 남자가 나서자 덥석 결혼까지 해버린다.
지금 그 남자랑 아들 낳고 잘 살고 있고, 결혼과 동시에 엄마의 잔소리에서 해방될 줄 알았으나, 엄마의 잔소리는 나의 결혼 후에도 자식 걱정이라는 엄마의 큰 사랑 안에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도 한 이상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소심한 딸은 엄마와의 격렬하고 집안을 뒤집어 놓을 듯한 한판 전쟁을 벌인 후에 엄마의 잔소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엄마의 잔소리에서 30년 만에 해방!!
그리고 아들이 10살이 되었다.
"엄마가 몇 번 말했지?"
"이것도 먹어야지 키가 쑥쑥 크지"
"핸드폰 들고 다니지 말라고 했지?"
"선생님들 보면 인사 잘하고 있지?"
"양치할 때 안쪽까지 깨끗이 닦아야 하는 거야"
내가 엄마를 닮은 것일까?
엄마가 되어 보니 알았다.
잔소리는 엄마의 하기 싫은 엄마 노릇이었다는 걸.
잔소리를 듣는 사람도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지만 하는 사람도 그에 못지않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남을 참견하고 있고, 남이 나에 대한 요구에 충족하지 못하니 잔소리를 하고 있고, 그것을 신경 쓰자니 매우 머리가 아프다. 그리고 어린아이를 보살피며 하는 잔소리는 한 번으로 끝날 수 없는 게, 그 아이의 인성, 식생활, 생활습관 이외의 많은 것을 책임지는 엄마의 몫이었던 것이다. 엄마의 잔소리는, 엄마의 쓸데없는 참견이라고 너무 하찮게 매도되지 말았어야 할 엄마의 노릇이었던 것이었다.
엄마라고 그 노릇을 좋아서 했을까? 물론 자기만족을 위해서 하는 잔소리도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겠지만, 내 자식 내 가족이 어디 나가서 밉게 보이거나 무시당하지 않게, 방어막을 미리 쳐놓아야 할 엄마라는 자리에 놓인 여자의 본능적인 생존을 위한 방어막이 아니었을까?
엄마 노릇이라는 게 엄마가 해야 할 책임들이고, 우리나라 엄마들이라면 누구나 사회가 정해진 틀에서 가족의 주리를 틀어 평범한 가정의 테두리를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대의를 짊어진 젊은 엄마들이 자신도 정해진 이 사회의 틀에서 내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최전방을 사수하기 위한 몸부림이 잔소리가 되어 나오는 것이라고 거창하게 말하고 싶다.
나도 아이 엄마가 되어보니... 잔소리가 술술 나온다.
아이들은 자기중심적인 사고와 주위를 배려해야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에, 이런 아이를 멋진 한 인간으로 남들 앞에 번듯하게 잘 키워서 내놓으려니 잔소리를 안 할 수가 없게 된다. 물론 잔소리의 기준이 남들의 시선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사회적 동물인 우리가 이 시대를 살면서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살 수도 없고, 또 남들과 어울려 살고 있으면서 남들의 기준을 아예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너무 몰입한 남들과의 비교보다 나 자신을 세우고, 내 가족의 편안한 삶을 위한 따뜻하고 진심 어린 말이 찐 잔소리가 되어 듣는 사람도 인정하고, 하는 사람도 프로 불편러가 되지 않는 가장 멋진 방법일 거라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