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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날의마음 Sep 19. 2023

왜 자꾸만 명품백을 사라는데?

"엄마, 엄마도 명품백 사."

"음... 그래, 살까?"

아이와 얘기하고 있었지만, 마음이 흔들린 것은 남편 때문이었다. 남편이 후하게 자기 동생들에게 돈을 푸는 것을 보곤 열불이 난 거다. 뭐라 하자 남편은 대꾸했다. 

"나는 꽤 여유가 있잖아."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남편의 동생들은 여유가 없을까?  오랜만에 만난 남편 여동생은 계절에 맞는 향수와 신상 아이쉐도우와 네일아트에 넣을 보석을 고민 중이었다. 그녀는 늙지도 않는다. 세월 가도 한결같이 20 대적 고민을 여전히 한다. 남동생은 다자녀이긴 하지만 시댁의 지원도 알아서 일찌감치 챙기는 우아한 맞벌이다. 남편이 말한 그 여유란 뭘까. 내가 여기저기 세일을 찾아다니고, 비싸서 포기했던 여러 물건과 여러 일들이 허망해졌다. 티끌을 모아 태산이라더니, 그 티끌조차 내 손을 떠난 기분이었다.     

그래, 명품백을 사자!  어차피 새는 돈. 

온라인쇼핑몰에 들어갔다. 보기만 해도 만만치 않은 가격들. 오래전부터 호감을 갖고 있던 보테가베네타도 대단했고, 토리버치도 싸지 않았고 코치도 생각보다 꽤 가격이 나갔다. 즐겁게 편히 주워 담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후들후들, 손을 떨었다.


잠시 들여다보다, 나의 오래된 가방 박스를 열었다. 브랜드 불명의 미니백, 레스포사 몇 개, 코치가 많~이 있었다. 한동안 나는 코치를 좋아했다. 가죽, 품질, 이름, 쓸모 등을 고려했을 때 제일 합리적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이렇게 많이 사다니, 나의 소비는 합리적이지 않았네. 

가방들을 보고 나니 명품백을 사고 싶은 생각이 완전히 달아났다. 갈망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 비싼 가방을 지르는 것은 보복소비일 뿐이었다. 남편에게 보복하자고, 내 돈을 지를까.  다른 머리에게 고통을 주려고 독초를 먹었다가 결국엔 같이 죽고 말았다는 머리가 두 개 달린 새 같은 거였다. 게다 남편은 돈 같은 걸로 고통을 느끼는 부류가 아니다. 


아이는 내가 이런 말을 하자 반격을 가했다.

"엄마가 가방 하나 산다고 죽지는 않잖아. 아빠한테 보여주라는 거지."

몇 해 동안 비슷한 패턴을 보았으니 내가 안쓰러웠나 보다. 

"명품백 들고 슈퍼에 가냐? 그리고 엄마 친구들도 에코백 들고 다녀. 무겁다고. 핸드폰만 갖고 다니기도 하고."


변명이 아닌 사실이었다. 아무리 가벼운 가방이라도 에코백만큼 가볍지는 않다. 어떤 친구는 기껏 루이비통을 사놓고는 찢어질 듯 얇은 에코백을 들고 나오기도 했다. 어깨가 아프다나. 동네에서 누가 우릴 보냐, 하면서. 롯데월드, 코엑스에서 만나도 우리에겐 다 동네 개념이었으니, 결혼식과 장례식이 아니라면 에코백이 통하지 않을 곳은 없었다. 남에게 과시한다는 그 명품백의 효능을 느낄 만한 대상이 없었고, 장소도 없었다. 


내가 생각할 때 명품이란,  긁힌다거나 비를 맞는다거나 하면 속 쓰린 물건이었다. 뒤집어 말하자면, 명품이란 신경 쓸 일을 만드는 것이고,  그럴 거라면 신경 안 써도 될 만한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거였다.  내 돈 들이고 뭣 하러 사서 고생인가. 다이아 귀걸이를 사도 될까 고민하는 친구에게 '그거 잃어버려도 마음 안 아플 거면 해'라고 말해준 전력이 있던 나였는데, 열받은 통에 명품에 대한 견해를 잠시 깜빡했던 거다. 


"너 사고 싶은 거 있으면 사자. 하나 사놓고 둘이 같이 쓰는 건 괜찮겠다."

아이에게 제안을 했다. 한창 멋 내고 싶어 하는 20대, 친구가 예쁜 것을 하면 자기도 하고 싶은 그 나이에는 명품백이란 충분히 가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 나이에 좋은 것을 많이 해봐야 혹시라도 늙어서 에코백만 들고 다녀도 서럽지도 분하지도 않다. 이미 다 해본 것을 구태여 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이거 코치, 당근에다 내놓으면 팔릴까? 상태도 좋아. 두 번 든 것도 있는데. 얼마나 받을까?"

남편에 대한 분노로 시작된 명품백에 대한 관심은 다른 데로 이행 중이었다. 분노는 건망증처럼 깜빡 사그라들었다. 또다시 명품무용론을 떠올리며, 갖고 있던 코치들을 팔아 아이를 위한 미니백이라도 사줄까, 생각 중이었다. 


"나 명품 필요 없어. 짐도 많고 내 친구들도 그런 거 없어."    

아이가 답했다. 가장 행복해할 사람을 위해 돈을 쓰는 일. 모처럼 그 효용도 높은, 합리적인 소비를 해보려 했는데 아이도 거절이란다. 하긴, 노트북과 책이 들어가는 크고 가벼운 크로스백이 어울리긴 한다.  

"그래도 엄마는 하나 사." 

 도돌이표 노래처럼 다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단한 명품이 우리 집에 발을 붙이려면 다사다난한 과정이 필요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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