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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날의마음 Sep 12. 2023

그건 몰라도 괜찮아요

문화센터에서 미술 강의를 들었다. 오늘이 첫날. 젊은 선생님은 열정적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현대 작가를 언급하며 이름 뒤에 꼭 '작가님'이란 호칭을 붙였다. 분명 학습 내용에는 인상파부터 시작한다고 쓰여 있었는데 타임슬립인가.  선생님 말로는 갑자기 어떤 작품군에 꽂혀서 내용을 약간 수정했단다. 뭐, 들어둬서 나쁠 건 없었다. 현대 미술에 문외한인 나는 그러려니, 하면서 듣다가 궁금해졌다. 진짜 유명한 사람인지 개인의 취향인지. 넘치는 애정이란 때때로 작품에 대한 객관성과 형평성을 상실케 하니까.  질문을 했더니 둘 다란다. 작가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했다. 어차피 내겐 처음 들려온 외국 이름이니 별 상관 없었다. 


몇 작품을 보았다. 주로 인간의 이기심, 현대 문명이 빚어낸 디스토피아, 전쟁의 상흔 등등. 충분히 이슈가 될 만하고 인류가 관심 갖고 고민해야 할 문제였다. 젊은 선생님은 몇 번이나 감탄했다. 앞줄에 앉은 탓에 다른 학생들의 반응은  잘 살피지 못했다. 그러나 강의실에서 후끈 열기가 느껴지지 않은 것만은 분명했다. 뭔가 '아리송~'한 물음표들이 떠다닌 느낌이랄까.

 

현대미술을 사랑하는 분들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어디까지나 사견이므로 감히 말해본다. 현대 미술이란 애매한 작품을 들이대놓고 드러나지 수많은 의미들을 꾹꾹 눌러담아  '이것이 진짜 의미에요. 놀랍죠!'라고 강조하는 듯했다. 뭔가 스토리텔링이 가능해지면 박수치며 환호하는 것 같기도 했다. 화려한 고급 포장재로 둘둘 감싸는 선물 포장과도 닮아 있었다.


한동안 현대미술, 추상..  이런 것들을 좋아했다. 잘은 모르지만, 나름의 추측을 가지고도 의미가 생성되고 공감대 형성이 가능한 것 같아서였다. 또한 화수분처럼 볼 때마다 생각할 때마다 그 작품이 다양하게 변용된다니 얼마나 신기하고 즐거운가. 이것이야말로 나도 같이 작품에 참여해 그 의미에 기여하는 것이 아닌가. 관람객의 입지를 마련해주는 친절한 것인 듯했다.  질릴 일 없이 그 작품과 줄곧 소통하는 느낌. 다른 구상 미술과는 달리 정해진 틀이 없는 것 같아 정신의 자유를 얻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지나고 보니 해석이 다들 비슷비슷한 것 같았다. 마치 일제 강점기의 문학 작품을 시대적 배경과 연결지어, 암울한 시대와 지식인의 고뇌 등으로 해석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 가치가 혀끝에서 생겨난 게 아닌가 의심스럽기도 했다.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밝히지도 않았는데 평론가들이 의미를 부여했다. 원래 예술이란 게 그런 거라면 할말은 없지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란 말이 맞아 보였다.  대략의 상식과 현재적 관심을 이어붙여 만들어낸 말을 위한 말들. 


오늘 수업에서 세계적이라는, 그러나 내가 모르는 작가들과 그의 작품들을 보았다. 신선한 면도 있었고, 과거에 있었다 싶은 것도 있었다. 선생님이 말한 의미보다 내 머릿속에서 윙윙대는 더 많은 해석이 떠오르기도 했다. 선생님의 역사는 나보다 짧고, 나도 나름의 독서력과 잡다한 인생 경험들이 있으니까. 그래도 대체적으로 내가 모르는 것들이었다.  


예전이라면 나는 '어머! 정말 모르는 게 많네.'하면서 검색을 하거나 도서관에 가거나 갤러리로 발품을 팔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괜찮아. 몰라도 돼!'라는 쿨한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세상이란 어찌 해도 내가 모르는 것이 많을 테고. 지금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지식과 정보만으로도 충분히 알 만큼 알지 않나.  무지에 대해 당당한, 몰라도 기 죽지 않는 나를 본 것이었다. 어찌 보면 건방질 수도 있겠지만. 그 또한 내 알 바 아니다. 


다음에 미술 강의를 듣는다면, 예쁘고 편하고 안정감을 줄 수 있는 것을 택해야지. 미술감상의 방향을 잡았다. 구상회화가 주는 어느 정도 틀이 있는 공감대가 좀 더 편한 것 같다.  혼란, 불안, 죄책감, 말장난. 이런 단어들을 대입하지 않을 수 있는 표리부동하지 않고 솔직하고 순진한 것들 말이다. 그것들을 통해서도 정신의 자유를 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신이야 어차피 내 마음이니까.


사람이 늙으면 변한다더니 나 또한 지적 욕구, 호기심, 생각에의 의지 등이 줄어든 것일까. 그런 의심이 1%도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호기심을 부릴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하는 지혜, 좋아하는 것과 아닌 것을 변별하는 능력을 길렀다고 생각하는 편이 맞는 것 같다. 세월의 흐름 속에 쌓인 긍정적인 퇴적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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