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 10년 차. 드디어 졸업일이었다.
홍안을 자랑하던 의사선생은 그새 옅은 검버섯이 피었다.
"음... 6개월 후에 다시 오세요. 걱정은 너무 하지 마시고요."
수납을 하고 세부내역서를 떼고. 익숙했던 병원길이 미로처럼 낯설다.
전화벨이 울렸다. "***환자분이세요? 카드 두고 가셨어요."
그렇군, 나는 졸업일이 아니었구나.
병원후문, 약국 아저씨들이 떼지어 온다. "어디 약국 가세요?"
셔틀을 타고 약국으로 향하는 길. 창밖 나무들은 멀쩡히 푸르다.
보랏빛 두건을 쓴, 못해도 칠십은 넘었을 여자가 계속 중얼댄다.
오늘의 약국셔틀은 유난히 시끄럽다.
"제가 아파서.... 주치의를 못 만나서...약 챙겨서 다시 병원으로 가야 해서..."
누구에게든 위로받고 싶은 걸까. 그저 말이 하고 싶은 걸까.
어머, 10년을 다닌 그 약국이 아니다. 그새 5층짜리 건물을 지었단다.
약을 기다리고, 이제는 전철역으로 가는 셔틀을 기다리고.
횡설수설 그녀가 쉴새없이 두리번 두리번.
역시 보호자도 있어야겠군.
안쓰럽게 그녀를 보다가 병원행 셔틀이 왔다고 알려준다.
약을 한보따리 챙겨든 그녀가 "감사합니다~"
출처 모를 먼 빛처럼 환하게 웃으며 나갔다.
보랏빛 두건 속에서 머리카락이 빨리 자라길 바랐다.
아픈 사람들이 모여 있는 풍경.
어느샌가, 횡설수설 하는 지긋한 노인이 되고 싶다고,
그 나이까지도 살아서 보호자 없이도 외출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의사 말대로, 걱정할 일이 아니겠지! 나를 위해 한참을 멍하니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