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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날의마음 Feb 22. 2024

편하게 살자고 돈 버는 거지

자고 일어났더니 하얀 은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어제 밤 늦게까지 눈이 내리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봄을 앞에 두고 갑자기 무슨 일일까. 예쁘지만 한편 당혹스러웠다. 아침 뉴스를 보니 지하철이 지연돼 출근길이 난리란다. 아파트 단톡방의 톡이 분주하다. "지하철이 계속 안 와요ㅜㅜ. 30분도 전에 지하철 역사가 꽉 찼어요." 모두들 밥벌이를 하느라 수고가 많았다.


나야 출근을 하지 않으니 그들보다는 낫겠지만, 그래도 쌓인 눈은 좀 곤란했다. 반찬이라도 사다놓을 걸, 은행이랑 병원에도 다녀올 걸, 하면서 비 내리던 어제에 내일로 미뤄뒀던 일들을 생각했다. 발이 불편해 비도 피했건만 오늘은 눈이 쌓였으니... 이런 날에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골절일 테고 안 그래도 병원도 난리이니 집콕이 상책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뭘 먹을꼬?


옆집을 생각했다. 택배박스가 현관 앞에 가득 쌓인 집. 쿠팡과 마켓컬리는 물론이고 홈쇼핑 박스에다 비닐포장 택배가 항상 널부러져 있는데, 제일 놀라운 것은 주기적으로 날라오는 햇반 박스다. 그 정도 양이라면 비상밥이 아니라 평상시의 식사가 틀림없었다. 아줌마도 집밥으로 매번 햇반을 먹을 수 있구나! 옆집을 통해 알았다. 참, 더 놀란 일도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죠스떡볶이 배달원을 보고, 도대체 어느 집일까 했는데 바로 그 집이었다. 물론 배달음식을 시킬 수 있다. 그런데 대단한 것은 우리집은 주상복합이고, 1층에 바로 그 죠스떡볶이라는 것. 그즈음 그녀가 골프백을 들고 나갈 때 엘리베이터에서 인사를 했으니 다리도 멀쩡했는데. 도대체 무슨 사정이길래 1층에서 배달을 시킬까. 세수하기 싫어서? 옷 갈아입기 싫어서? 혹시 피부과 시술을 받아서? 나름 생각을 하다가, 세상 참 편하게 사는 아줌라고 결론을 내렸었다. 짠내 나는 아줌마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세계다.    


남편이 가끔 같은 물건을 비싼 가격으로 사올 때면 나는 잔소리를 한다. 그거 A싸이트, B 마트에서는 반값인데? 라고. 그러면 남편은 기도 안 죽고 반성의 기색도 없이 의기양양 한마디를 한다. 시간적 효율성, 편의성이 중요하니까 절대 비싼 게 아니라고, "이렇게 편하게 살려고 돈 버는 거지!"라고 말이다. 


세상 편한 옆집 그녀를, 주관 뚜렷한 나의 남편을 닮아보기로 한다. 물건을 사봤자, 또 배달비가 나와봤자 얼마일까. 그깟거 절약해봤자 어차피 큰돈도 안 된다. 나도 이제 적지 않은 나이, 피곤하거나 귀찮은 짓은 하지 말고 적당히 편하게 쓰면서 살자! 그러려고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잖아?! 


얼마 이상 사면 준다는 세일쿠폰도 사용하지 않고 배송비도 따로 내가며 오늘 꼭 필요한 것, 수고하지 않아도 바로 먹을 수 있는 것만 골라서 주문을 했다. 1+1 같은 것은 담지 않았다. 물건 정리하기도 번거로우니까. 다른 때의 나라면 밑지는 짓이라거나 돈 낭비라 했겠지만, 그게 왜 낭비일까. 내 기분 좋고 내가 편하면 그만이지. 오늘에서야 소소한 금액으로 편리한 시간을 주문했다. 이것이 합리적인 소비, 자유로운 소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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