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날의마음 May 23. 2024

내가 그 핫하다는 옥수에 갈 수 없는 이유



오랜만에 부동산 뉴스를 관심 깊게 봤다. 몇 해 전 지금 사는 집에 이사 들어왔을 때만 해도 집 때문에 더 이상 고민하는 일이 없을 거라고, 고민 때문에 내 인생을 낭비하지 말자고 생각했는데, 어쩌다 보니 또 집이었다. 아는 것이 힘이라 했지만 내겐 모르는 게 약이었을까. 아무것도 모를 때는 속 편히 있었는데 아파트 단톡방의 톡이 마음의 안정을 깨버린 것이다.


“옆 아파트가 우리보다 2억이나 비싸요ㅜㅜ”

아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신호등 하나 건넌다는 것 빼고는 생활여건도 학군도 똑같은 옆 아파트가 왜? 상급지라 말할 수 없는 것이 자명한 사실인데 말이다. 그런데 아주 중요한 차이점이 있었다. 옆 단지는 대단지고 우리 아파트는 그에 비하면 한참 작다. 갑자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면서 허둥대기 시작했다. ‘이 참에 갈아타야 하나?’ 하지만 돈을 더 들여 옆 동네로 가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달라질 것 없는 환경이니까. 이참에 새로운 생활환경을 접해볼까 싶어 다른 지역으로 눈을 돌렸는데.


왕십리 뉴타운에 갔다. 교통의 요지라는 그곳, 현재 사는 집으로 이사오기 전에 그곳으로 가면 어떨까 싶어 집을 보러 간 적도 있었다. 지하철 역에서도 가깝고 시내에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녹지대도 꽤 있는 좋은 곳이었다. 하지만 예전에는 잘 몰랐던 것을 느꼈는데, 단지 내는 양호하지만 인근에는 경사진 곳이 꽤 많다는 사실이었다. 완전신축이 준신축이 되어버린 세월 동안 나도 많이 노쇠해졌다. 그간 코로나에 어깨 수술도 하고 다리도 다쳤고 기타 등등 사건 많은 날들이었다.

 

부동산카페를 보니 요즘 핫한 곳은 금호 옥수라 하니 그곳도 둘러보자 했다. 그곳은 내가 어릴 때 살았던 곳이지만 자라서는 간 적이 없었다. 학교나 직장이나 모두 지하철 2호선만 타고 다녀서 2호선 왕십리와 3호선 금호동은 멀다 생각했었는데 차를 타고 가보니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었다. 성동구청, 무학여고를 지나 금세 금호동. 아파트들은 엄청 늘어섰는데 신기하게도 길은 좁은 길 그대로였다. 덕분에 버스가 다니는 큰길과 그 위의 골목길 등 기억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저 언덕에는 금호극장이 있었고 저 아파트에는 누구네 집이 있었고 또 건너편은 누구네 집 등등. 지금은 소식을 모르는 어린 시절의 친구들 모습도 떠올랐다.


그렇게 향한 곳이 금남시장. 예전에 <나 혼자 산다>에서 이 시장을 봤었고, 또 어릴 적 살던 동네라 향수처럼 그립기도 해서였다. 그 오래된 시장이 아직도 그대로라니 놀라웠다.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동생과 내가 아이 때 좋아했던 빵집을 찾아갔다. 길을 물을 필요도 없이 과거 기억을 더듬으며 금호역 쪽으로 쭉 올라갔는데. 결국 그 빵집은 없었다. 명동에나 나가야 햄버거를 맛볼 수 있었던 시절, 동생은 햄버거와 비슷하게 생긴 사라다빵을 들고 와서는 “햄버거야, 먹자!”라면서 해맑게 웃었었다. 그 빵집에서 어릴 때의 빵을 맛봤다면 더없이 감격스러웠겠지만 그렇다고 섭섭해할 만큼 나는 어리지 않았다. 강산이 몇 번이나 변했는데 어찌 과거의 것을 모두 기대하리. 생생한 그 시절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것만으로 만족해야지.


옥수동을 들러 집으로 가기로 했다.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지나가는 길에 얼핏 보기만 했지 차로 동네를 둘러보기는 처음이었다. 인기 많은 상급지라고, 동호대교도 한강뷰도 멋지고 고급 주택지인 한남동과 딱 붙어있는 좋은 곳이라 부동산 카페에서는 말했지만, 내 눈에는 엄청난 경사길만 눈에 들어왔다. 겨울 눈길에 미끄러지기라도 한다면?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철렁했고 차에서 내릴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꾸만 마음이 울컥했다. ‘엄마가 이 길을 나를 업고 다녔단 말이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야 그곳에서 고생했던 기억이 없지만, 엄마의 인생이 생각나서였다. 엄마는 옥수동 산동네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수도도 없어서 물이 많이 필요한 날에는 한강에 나가 빨래도 하고, 빨래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나를 업고 산길을 올랐다 했는데. 엄마의 고생 시리즈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그저 머리로만 아는 것이었을 뿐 그 산길의 흔적을 보니 나도 모르는 새 눈물이 나왔다. 길이 다 정비된 게 이 정도라면 옛날의 진짜 산길은 어땠을까. 그 고생의 강도가 가슴을 치며 아리게 다가왔다.


그날 나는 임장이란 마음으로 여러 곳에 다녀왔지만 임장이 아니었던 것 같다. 아직 이사 여부를 결정짓지도 않았지만, 혹시라도 이사갈 만한 뚜렷한 명분이 생긴다 해도,  특히 옥수 쪽은 절대 못 갈 것 같다. (하늘에서 돈다발이 뚝 떨어진다 해도)  아무리 입지가 좋은 곳이라 해도 뷰를 보고 길을 걸을 때마다 엄마의 힘겨웠던 시간이 눈에 아른대고 발에 밟힐 것만 같다.

작가의 이전글 기억아, 내게 머물러주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