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날의마음 Jun 04. 2024

우유에 깻가루를 넣어버렸네;;^^

-- 나이들어 지혜롭게 맘 편히 잘 살려면

오늘도 윗집 아이의 울음소리와 쿵쾅대는 발소리에 잠을 깬 나는 비몽사몽. 언제쯤 꿀잠 자고 내 의지대로 일어날 수 있을 것인가. 

냉장고에 밥과 몇 가지 반찬이 있지만 영 먹기는 싫었다. 새로 산 그린라벨 우유를 꺼냈다. 언제부터인가 마치 루틴처럼 커피우유를 마신다. 끊인 물에 디카페인 커피가루를 넣고 그 위에 우유만 부어주면 하루를 시작하는 맛있는 음료가 탄생한다. 하지만 오늘은 날도 더워졌으니 물 끓이기는 생략. 그냥 우유에 커피다. 숟가락을 꺼내기도 귀찮으니 커피병째 들어 살짝 털어넣자 했는데...


헐! 커피색이 왜 이러지? 왜 하나도 안 녹지? 어멋! 


뭐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머릿속이 아우성쳤다. 나의 커피가루는 색도 좀 흐릿한 것이 차가운 우유 위에서 전혀 녹을 생각을 안 했다. 그 정체는 깻.가.루. 참깨의 고소한 냄새가 좀 나는 것도 같았다. 당황스러웠지만 좀 재미있기도 했다.  깻가루를 사용하기 좋으라고 작은 패트병에 넣어두었더니 멀쩡한 커피병과 헛갈린 것이었다. 작년쯤이었나, 한동안 커피도 작은 패트병에 담아둔 적이 있었는데 잠시 머리가 그 시절로 돌아갔었나 보다.  


오늘 따라 왜 우유는 이리 가득 따랐을꼬?.... 우유를 버릴 수도 없고. 또 깨는 어쩔꼬???? 

그때 옆에서 남편이 말했다. 깨를 넣은 우유는 없나? 

하긴 검은깨 두유 같은 것도 있는데 우유에 깨가 있으면 큰일난다는 법이 어딨겟어.  그렇다면 나는 검은깨 두유에 도전장을 내밀 만한 참깨우유를 창조해낸 것인가? 오~ 거의 천재급인 걸!

이미 우유 위에 뿌려진 깨를 꺼내 다질 수도 작게 갈 수는 없으니 살짝 떠서 건져먹기로 했다. 빠삭하지 않은, 우유에 불어버릴 뻔한 깻가루를 다 먹어치웠다. 그리고는 우유 위에 다시 커피가루를 부었다. 조금 흔들자 커피가루가 금세 휘리리 녹아 풀렸다. 깻가루라는 역경을 딛고 우뚝 선 나의 커피우유! 그렇게 아무일 없었다는 듯 커피우유가 완성되었다.


나는 도대체 왜 깻가루를 우유에 넣어버린 것일까. 좀처럼 하지 않는 실수였다. 원인은 윗집 층간소음, 그리고 멍청해져가는 뇌, 아니면 요즘 머리가 멍해질 만큼 피곤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냥 실수랄 것도 없는 어쩌다 생기는 해프닝일까.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을 놓고 원인은 생각해서 뭐하리.  간단히 수습했고 제대로 커피우유도 마셨으니 그만이지. 머리를 단순화해 편히 쉬게 하자.


 별거 아닌 일은 내게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 

실수를 해도 받아들이는 마음에 따라 이게 뭐지 하며 기분이 별로일 수도 아니면 재미있을 수도 있고, 그 결과물을 실패라고 혹은 새로운 창조물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같은 행동과 같은 결과물이라고 해도 그 느낌은 천지차다. 누군가는 이것을 긍정적 사고관이라고 명명할까.   


또 이 일이 나의 뇌가 늙어가면서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이라 한다면, 쿨하고 사소하게 받아들이자고 마음먹었다. 정말 별일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나아가, 앞으로 다른 일이 생기더라도 별일 아니지, 별일 아니지 생각하면서 수습하고 진짜 별일 아닌 것으로 만들자 했다. 내가 더 능력 있다면 '참깨우유'의 개발을 시도했겠지만. 그러자면 고된 일도 수반될 수 있으니 그런 상상은 금물^^.  


오늘 아침에는 다른 날과는 달리, 커피우유뿐 아니라 고소한 단백질까지 한번에 섭취할 수 있었다. 칼슘과 단백질의 만남이라니 갱년기 여성에게 이보다 더 좋은 음식이 있으랴. 다 의도치 않은 실수 덕분이었다.^^ 

소소한 병치레가 늘어만 가고 거기다 종종 어이없는 실수까지 저지르게 되는 요즘, 밝은 마음과 맑은 정신으로 이렇게 생각을 가다듬어 본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그 핫하다는 옥수에 갈 수 없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