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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날의마음 Jun 10. 2024

예쁘지만 쓸데없는 그 지갑

남들의 가치, 나만의 가치를 구별하기

남들 다한다는 당근을 얼마 전에, 이제서야 시작했다.


좋고 훌륭하지만 집구석에 콕 박힌 물건을 구제해 주기 위해서였다. 음식맛은 좋지만 무거워서 들기도 힘든 리쿠르제 냄비와 그릴, 예쁘기는 한데 14k 도금이 되어 있어 식세기에 들어가지 않는 로얄알버트 세트, 차를 안 마시니 사용할 일 없는 일본제 도기세트, 유리장에서 반짝이기만 하는 스와롭스키 크리스탈 등등. 모두 다 객관적으로 봐도 훌륭하고, 주관적으로 보자면 한동안 내 맘을 설레게 했던 것들이다. 치우자니 쓸쓸한 느낌이 들어 줄곧 집에 두고 있었으나, 아쉬운 마음을 접고 가장 좋은 곳으로 보내주자고 큰맘을 먹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누구에겐가 그 가치를 인정받고 사랑받는다면 좋은 일이니까.


당근에 들어갔더니, 시간이 휘리릭 갔다. 처음에는 어떻게 물건을 내놓는지 몰라 탐색 삼아 살폈는데 어머나, 취지와는 달리 어느샌가 옷이나 가방 이런 것들을 보고 있었다. 물건 안내나 가격 맞추기를 배우겠다는 목적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아무리 브랜드라도 해도 이런 낡은 물건을 어떻게 내놨을까.'

'예쁜데 게다가 새것이라고? 믿을 수 없는 걸.'

혼자 중얼대며 계속 스크롤을 올렸다. 눈이 빡빡해졌을 무렵,  눈을 사로잡는 물건이 생겼으니 페*** 장지갑이었다. 선물 받았지만 자기 스타일이 아니라 사용을 안 했다는 설명이 붙어있었다. 박스도 있고 보증서도 있었다. 진짜라면 완전 행운이고 혹시나 가짜라고 해도 심하게 밑지는 가격은 아닌 것 같았다.  

"제가 살 수 있을까요~?"

언제부터인가 남들 다하는 쉬운 일에도 큰 용기가 필요하게 된 나.  큰맘 먹고 질렀다. 그런데 30분을 기다려도 연락이 없었고, 밤이니 다음날 연락하자 싶었는데. 당근 톡방 위쪽에는 방해 금지 시간이란 말이 쓰여 있었다. 이런 기능도 있구나, 당근의 기능을 하나 더 배웠다. 그런데 자기 전에 봤더니만 직거래인지 택배인지 묻는 판매자의 톡이 이미 와 있었다. 나와 톡 시간이 엇갈린 것이었다.  일단 예약은 걸어놓은 셈이고, 어차피 방해 금지 시간이라 판매자는 아침에나 연락을 할 테다. 다시금 곰곰 생각모드로 돌입했다.


그 페**** 장지갑을 어디에 사용할 수 있을까?


나는 장지갑은 쓰지 않는다. 핸드백을 들어도 예나 지금이나 작은 것만 드니 장지갑이 들어갈 리 없고, 그래서 옛날 옛날에 엄마가 모처럼 사준 디* 장지갑도 서랍 속에 고이 넣어둔 채 명함이나 영수증만 넣어놓는 보관용 창고로 사용했었다. 디*로서는 주인 잘못 만난 탓에 그 가치를 전혀 인정받지 못한 셈이었다. 그러니 윤기가 자르르한 페***가 내 손에 들어 오더라도 별 다를 바 없을 것이었다. 이렇게 쓸데가 없다니ㅠㅠ 그래도 이쁜데?!  도돌이표처럼 생각이 돌고 또 돌고.


한동안 나의 그 가엾은 디* 장지갑이 좋다고 들고 다녔던 아이에게 물었다. “페*** 장지갑 살려고 하는데 너 쓸래?” 엄마에게도 물었다. “엄마, 페*** 장지갑인데 너무 싸. 사줄까?” 하지만 아무도 환호하지 않았다. 아이는 달랑 핸드폰 하나만 들고 나가거나 짐이 많은 날엔 백팩을 매기 일쑤고(그런 날엔 짐 하나라도 줄이는 것이 수니 장지갑은 어림도 없다.), 엄마도 이제는 무거운 가방은 됐다며 핸드폰과 카드만 챙겨 다니신단다.


세월도 바뀌고 패션도 바뀌고 쓰임도 바뀌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예쁜 브랜드 지갑은 쓸모가 없었다. 재당근을 해도 돈을 벌 수 있는 가격이겠지만 나는 그렇게 지런하지 못하다. 재당근을 하려면 열의와 에너지가 있어야겠지. 그리고 물건을 줄이려고 들어간 당근에서 처음부터 물건을 늘이기는 싫었다. 본품의 가격을 생각하면 거저 줍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세일에 약한 아줌마로서는 정말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었지만. 꼭 필요한 것만 갖고 살자고 마음 먹은 사람이 싸고 예쁘다고 마구 물건을 집어담으면 되나. 그건 안 될 일이었다. 고심끝에 결론을 내렸다.


내게 쓸모가 없는 물건은 집에 들이지 말자! 


아침이 오기 전, 판매자에게 일찌감치 죄송하다고 연락을 했다. 그래, 내가 언제부터 브랜드에 연연했다고모처럼 횡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린 것일 수도 있지만, 왠지 나는 나의 쇼핑철학을 단단하게 지켜낸 것 같았다.  아무리 비싼 물건이고 아무리 남들이 좋다고 해도 그것은 그들의 일일  내겐 나만의 가치가 있을 테지. 같은 물건이더라도 사람에 따라 다른 가치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아쉬운 마음이 하나도 없었다면 거짓말일 테지만 나와는 인연이 없는 물건이니 쿨하게 보내주는 게 맞았다. 그 페*** 장지갑이 다른 누군가에게 가서 사랑받는 물건이 되기를 바랐다. 예쁘기는 정말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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