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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킴 Dec 16. 2022

떨어진 선거도 의미를 남긴다_2

되면 좋고 안 돼도 좋을테니.

사실 6학년이 되고, 전교회장 선거는 내보내지 않으려 했다. 선거벽보부터 피켓, 연설문을 수제로 만들어야 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힘들기도 하지만 정신적 소모가 큰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는 '무슨 소리야 당연히 나가야지!' 라며 의욕을 보인다.

그래,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었다. 서툴렀지만 저녁을 거르고 밤늦게 까지 벽보를 만들며, 그리고 오리고 쓰면서 아이의 초등생활이, 너라는 사람이 총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순수한 열정이 좋았다. 이 순간이 평생 너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좋아, 마지막이니까 해보자     

다만 우리는 성공법칙을 따르지 않았다. 당시 반에서 학기마다 하는 선거를 포함해 벌써 9번째 선거였다. 항상 할 수 있는 만큼 했다. 진정성으로 승부했다. 그게 가장 아이를 잘 표현하는 느낌이기도 했고 말이다. 처음 실패했던 선거인, 전교 부회장 선거는 우리의 기준으로 준비는 완벽했었다. 아이는 선생님들께 감동을 주었지만 충분한 표를 받는 데는 실패했다. 하나를 잃고 하나를 얻는 게 인생이라던가. 선거는 조용한 성격의 아이가 자신을 각인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게 컸다.      

초등 선거는. 특히 전교회장 선거는 인지도가 좌우한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온 아이들은 서로 잘 모른다. 특히 학년이 다르다면 더 그렇다. 방과 후 수업이나 학교 행사에 열심히 참여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나머지는 작은 요소다. 4학년~6학년 학생들이 투표하는 만큼 평소에 얼굴도장을 많이 찍었다면 일단 유리하다. 그리고 트렌드를 따라야 한다. 정성과 노력 점수는 사실 작다. 캐릭터를 적극 활용하고 코믹한 요소를 더하면 좋다. 초등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야 한다. 공약을 남발할 필요는 없다. 이름을 활용한 삼행시, 번호와 연관된 구호, 나를 표현하는 표어. 이 세 가지를 미리 정해서 반복 노출하는 것 좋다. 

연설문은 너무 길게 작성하지 않는다. 정확한 발음으로 천천히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강조하면서 유머를 던졌다면 한 번 웃어주는 여유도 포인트다. 미리 원고를 작성해서 연습한다면 무리 없다. 연설의 마무리는 속담이나 유명한 구절을 활용해 완성도를 높인다.

마지막 팁은 이거다. 요즘은 방송반 카메라 앞에서 연설을 한다. 상체만 화면에 잡히므로 머리와 옷을 단정하게 함은 필수다. 과하지 않은 연출을 하면 좋다. 손등에 번호 스티커를 붙인다거나, 이름과 표어를 갑 티슈 크기의 오브제에 꾸며준다. 간단한 장치이지만 연설의 완성도를 올려주는 것은 물론 작은 부분까지도 세심하게 신경 쓰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자 함이다.

여기까지 왔다면 선거에서 떨어지더라고 성공이다. 이 과정을 제대로 거쳤다면 아이는 한 단계 성장했다. 우리가 진짜 성공하고자 하는 것은, 오늘의 선거가 아니라 앞으로의 인생이므로. 






선거는 끝났고, 아쉽게도 전교회장은 되지 못했다. 아이는 교실로 돌아갔고, 기다리던 선생님께서 꼭 안아주셨다. 네가 제일 잘했는데 너무 아쉽다며 토닥이고 위로해주셨다. 아이는 이번에는 울지 않았다, 오히려 웃으며 말했다. ‘잘됐어요. 너무 바빠져도 곤란하거든요’ 살짝 사춘기 문턱에 있던 아이는 멋을 부리며 말했지만 진심이었다.  두 번의 실패가 아니라 두 번의 경험으로 남았다.


다음날 아침 조회시간에 앞으로 나간 아이는 친구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고맙다고 말했다. 많이 도와주고 날 위해 투표해줘서 감동했다고. 남은 6학년 동안 최선을 다해서 재미있게 지내보자고. 소위 한 방은 없지만 진지하고 꾸준한 모습을 보여준 덕에 친구들의 마음을 얻었다. 

초등생활 속에서 총 10번의 선거를 치른 아이다. 아마도 좀 더 단단해진 것은 확실한 수확이다. 더불어 개인적으로 우리 집에 있는 꼬마 둘은, 첫째의 연설 연습을 도우면서 저절로 연설문을 마스터했다. 누가 더 잘하는지 대결을 하며 논다. 얼른 3학년이 되고 싶은 이유가 되었다. 이 모든 과정을 정말로 즐길 수 있다면 무조건 초등 선거에 나서보라고 말하고 싶다. 되면 좋고 안돼도 좋을 테니까.





사진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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