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야만의 계절
"다들 그렇게 산다. 유난 떨지 말고 살아계실 때 잘해드려라."
J는 10년째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는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치료의 방향이 결정되기 전까지 어머님을 돌보기로 결정했을 때,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을 한 딸을 진심으로 대견해했다. 그럼 그렇지. 겨우 삼일 만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항복을 외치는 J에게 듣기 좋은 소리를 낼 리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엄마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엄마는 시부모를 봉양해 보기도 전에 J를 남겨두고 집을 나왔고, 그 업보는 외할머니가 고스란히 치르게 되었다. 하루아침에 당신과 같은 처지가 된 딸을 가슴 한쪽에 품은 할머니는 오랜 불면증이 우울증에서 치매로 문드러졌다. 6남매 중 유일한 아들이었던 외삼촌 부부가 할머니를 모셨다. 시절이 그랬다. 인지기능을 완전히 잃고도,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아들을 남편으로 믿었던 할머니는 날마다 부부침실에 누워 자고 있는 내연녀를 목도했다. 할머니가 그 여자의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던 사건은 모두가 알지만 말할 수는 없는 비밀이 되었다.
J는 자신이 외숙모보다 나은 처지임에 감사 기도라도 올려야 할 판국이었다.
'다들? 다들이 누군데? 엄마는 해 봤어? 살아계실 때 잘해드리라고?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마. 그것도 서로 좋을 때나 하는 소리라고!'
한여름날의 더위가 수굿해지는 시간, 짧은 외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털털 거리는 선풍기 아래 웅크려 잠든 어머님이 보였다. 베개에 눌려 한쪽으로 찌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는 노인은 꿈이라도 꾸는 걸까? 근육이 주저앉은 입꼬리가 가로로 길게 늘어졌다. 같이 있을 때는 낮잠 한 번을 안 주무시더니, 장 보러 간 J를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드신 게 분명하다. 머리 꼭대기부터 불덩이가 일더니 이내 한기가 돌아 손발이 시리다 못해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씀을 새겨듣고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려 노력했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이 제 엄마에게만 눈길을 주는 것에 마음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꿈틀 되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내가 더 하고 말자'
J는 외관상 인테리어를 헤친다고 베란다에 모셔두었던 황토색 장판을 깔았다. 어머님을 맞이한 첫날, 안방이 갑갑해 거실에 짐을 풀겠다는 고집에 그녀는 작은 한숨을 내쉬며 백기를 드는 열연을 선보였다.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 아침밥을 짓고, 아이들의 등교가 끝나면 물티슈와 생수를 챙겨 산책을 나섰다. 손을 잡아 드려야 하나 팔을 부축해 드려야 하나에 대한 고민은 몇 초간의 간극을 만들었다. 살집이 있고 건장하던 어머님은 점점 작아지고 흐려졌다. 온전히 J에게 의지해서 걸음을 딛고 있는 것이 흡사 걸음마를 막 뗀 어린아이 같았다. 겨우 아파트 정문 앞까지 천천히 걸음을 옮겼을 때, J의 등줄기에서 땀이 흘렀다.
그것은 충만함이었다. 성심성의로 효도하는 기분.
'자식이 넷이나 되어도 어때, 나 밖에 없지?'
그리고 여러 차례 주변을 살폈다. 동네에 아는 얼굴들과 마주치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