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매울 텐데
회식에 가기 싫다 찡찡대던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닭강정 샀는데, 앞집(친정)으로 갈까?
엄마는 방금까지 우리 집에 있다 가서 좀 귀찮을 텐데. 하고 생각하는 나에게 남편은
엄마는 이거 안 드셔보셨을 거 아냐.
하고 덧붙인다.
생각해 보니 엄마에게 사드린 적이 있던가. 나름 유명한 닭강정. 친구들과, 남편과 놀며 연애하며 몇 번 먹었지만 엄마 사다 드린 적은 없는 것 같아 슬그머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얼른 전화한다. 엄마는 추워서 다시 오기는 귀찮고 우리가 간다 하니 애나 재우라고 한다. 어쩔 수 없지. 다음번엔 좀 사다 드려야겠다 생각하고 남편에게 집으로 오라고 했다.
남편은 닭강정 봉지를 건네고 씻으러 화장실로 들어가고 금요일이라고 신나게 영화를 보는 딸은 집중력 최고조이다. 게다가 최근 교정을 시작하여 밤마다 교정기를 낀다. 그래서 이미 이 닦은 지 오래다. 그리고 여기 닭강정은 좀 맵다. 봉지 밖으로 새어 나오는 냄새에 참지 못하고 봉지를 열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먹고 있다. 씻고 나온 남편은 나를 보더니 냉장고에서 무알콜 맥주를 꺼내 탁 까서 건네준다. 부엌 한쪽에 쭈그려 앉아 조용히 냠냠. 바로 그때, 딸과 눈이 마주쳤다.
엄마, 뭐 먹어? 닭강정 먹어? 뭐야, 어쩐지 냄새가 나더라니.
딸이 다가온다. 손사래를 치며 너는 매워서 못 먹어. 말해보지만 이미 교정기를 빼고 손을 씻고 포크를 꺼낸다. 매울 텐데. 한 번 더 말하는 나에게,
살만 발라 먹어볼게. 나 매운 거 잘 먹어.
맛있는 것을 먹을 때 떠오르면 사랑이라는데, 나는 엄마를, 내 자식을 사랑했던가. 나만 맛있는 걸 먹고 즐겁고 끝낸 적이 많지 않았던가. 엄마에게는 사랑해 달라고, 표현해 달라고, 동생만큼, 아니 동생보다 더 챙겨달라고 보채곤 했는데, 나는 과연 동생이 엄마를 챙기는 것보다 더 챙겨 왔는가. 나중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데 지갑을 열어보며 잔고를 떠올리며 지금이 아닌 나중으로 미룬 것이 많지는 않았던가. 아낄 수 없는, 아껴서는 안 되는 함께 하는 순간을 접어놓고 계산기를 두드렸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순식간에 휘몰아쳤다.
아이에게는 새로운 걸 보면 일단 해보라고, 도전해 보라고 하면서 매워서 못 먹을 거야 속단하고 기회를 선별적으로 주며 은근히 겁을 줬던 건 나 아니었을까. 어렸을 적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 봐야 아냐는 부모님 말씀에 맛있는지 맛없는지는 내가 느끼는 거니까 해보는 거라고 그렇게 박박 대들어놓고 말이다. 정작 나는 아이를 얼마나 혼란스럽게 하고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을 아이가 아니라 내 기준에 맞게 걸러내고 있었던 걸까. 분명 아이는 맵다는데도 먹어보겠다는 도전의식을 가지고 있고, 너무 매울 때를 대비하여 살만 먹겠다는 대비책을 생각하고 실천할 줄 아는데. 분명 다른 것에도 자기 나름의 의지와 방법이 있을 텐데.
분명 닭강정은 맛있었는데 속이 시끄러워졌다. 닭강정이 매운 걸 좋아하고 잘 먹는 내 입에도 매워서 그랬던 걸까.
아이는 몇 입 먹더니 별로 맵지도 않네, 하고는 습습습습 소리를 내며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 난 닭강정을 금토일월, 4일에 걸쳐 혼자 다 먹어치웠다. 그걸 먹는 내내 먹깨비인 아이는 한 입 달라는 말을 다시는 하지 않았다. 거봐, 맵댔지? 라고 말하려다 말았다. 먹어봤으니 아는 거지 안 먹어봤으면 언제고 한 입만을 외쳤을 테다. 그러니 일단 찍어먹어 보도록 해야겠다. 결과론적인 건 집어치우고 말이다.
언젠가 먹고 싶다고 말하면 또 함께 기꺼이 먹으리라. 그리고 그날이 오기 전에 엄마부터 사다 드리리라.
*사진출처: pixabay
사진 한 장 찍지 않고 먹어치웠다니. 엄마 사다 드리고 사진도 꼭 찍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