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비싸다고 느낍니다
자주 비유되는 말이다. 커피 한 잔 값이면 ~할 수 있다는 말. 부담스럽지 않은 돈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그러나 나에게 커피 한 잔 값이 그렇게 가볍게 느껴지진 않는다.
휴직하며 카페 투어를 결심했으나 현실은 둘째 탄생으로 인한 육아와 휴직으로 인한 재정 상황 악화로 인해 무기한 연장되었다. 커피는 집에 있는 머신에 캡슐을 넣어 하루에 한 잔만 먹는다. 원래도 엄청 즐기진 않았지만 먹으면 안 된다고 하면 더 먹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기도 하고, 이젠 안 먹으면 안 되기도 하다. 할 일도 많고 애도 업고 있으려면 하루 종일 소파에 앉아보지도 못한 날도 부지기수다. 소파 바꿨는데! 엄마가 얼마 전에 우리 집 소파 뜯어진 거 왜 계속 쓰냐며 새 소파 사줬는데! 아무튼, 그래서 흔히 말하는 커피수혈은 필수다.
가끔 정신과에 가는 날이면 그때는 병원 지하에 있는 카페에서 끌리는 커피를 한 잔 사 먹는다. 잘 회복하고 있는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다. 학교에서 일할 때에도 2주나 한 달에 한 번, 정신과에 가기 위해 조금 일찍 조퇴하는 날이면 으레 선물을 주었다. 그 습관 그대로 지금도 선물을 준다. 그런 날이 아니면 누구를 만나지 않는 한 잘 안 사 먹는다. 가끔 기프티콘이 생겼을 때라면 나들이 삼아 딸이나 남편과 한 잔 하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집에서 해결한다. 왜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지 않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매번 사 먹기에 비싸기도 하고 애도 있다고 담백하게 말할 수 있다.
오늘도 한 잔 커피를 내리며 동생이 가져다준 코스트코 빵에 잼을 발랐다. 치즈도 한 장 넣어 먹어야지. 바람이 살짝 서늘하니 기분이 좋다. 그러면서 생각해 본다. 언제 커피를 처음 사 먹어 봤더라?
고1인가 고2인가 동갑 남자애와 예술의 전당에 초현실주의 화가의 전시를 보러 다녀왔다. 세상에 멀리도 갔다 왔다. 게다가 심지어 초현실주의라니. 미술 전공을 할 생각은 있었으나 작가나 작품 및 시대적 배경에는 문외한이었기에 전시를 관람하는 내내 '이걸 뭐 때문에 왜 그린거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했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뭔가 아는 척, 느끼는 척하느라 너무너무 곤란하고 피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와서 헤어지기 전에 커피 한잔하자는 말에 던킨 도넛에 들어갔다. 그랬으면 빵이나 먹고 자몽에이드라던가 그런 거나 마실 것이지 커피를 마셨다. 빵은 먹고 싶지 않았고 음료 중에는 커피가 제일 쌌기 때문이다. 어쩌면 뭐가 뭔지 모르는 메뉴들 사이에서 뭔가 있어 보이려고 했던 마음도 커피를 고르는 데 한몫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커피를 받아 들고 스터러로 쭉 마셨다. 뜨거운 커피였다. 입천장을 시원하게 데었다. 그때는 그게 스터러인지도 몰랐다. 아마 스터러라고 알려줬어도 그게 뭔지 모르고 구멍 뚫렸으니 빨대인가 보다 하고 똑같은 실수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무슨 얘길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확실한 건 있어 보이려는 걸 하려다, 솔직하지 못하면 오히려 이도저도 안된다는 거다. 은근한 호감으로 취향을 맞춰보려 인기 있는 드라마는 안 보고 마이너 한 드라마를 보면서 인기 있는 드라마를 보는 척, 마이너 한 드라마가 좋다는 말에 내적 환호 지르고 좋아하는 배역이 누군가 말하는데 역시 속마음과 다른 배우를 댔다가 어쭙잖게 장단 맞추는 것처럼 되어버렸던 그 시절의 나는 참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뭔가 더 괜찮아 보이는 다른 누군가의 모습으로 비치고자 애썼구나 싶다.
커피 한 잔 값이면 누군가는 가볍게 말할지라도 그게 부담스러우면 부담스럽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야겠다. 안 그래도 피곤한데 산뜻하게 살아야겠다. 가을바람을 곁들인 빵과 커피가 맛있다.
*사진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