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어딘가에서 시작해야 하고, 이 책은 여기서 시작한다.
어릴 적 사물에도 진짜 생명이 있다고 믿었던 적이 있다.
인형에 말을 걸고, 대답은 내가 하고(인형이 말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의인화라고 해야 하나.
어릴 적 감성으로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된 작품이 있다.
2022 여성문학상 수상 작가이자 부커상 최종후보 작가인 루스 오제키의 신작
<우주를 듣는 소년>
700쪽에 달하는 벽돌책이지만,
"읽어봐~" 하고 나에게 말하는 것만 같아 눈을 뗄 수 없다.
심지어 보라보라 한 표지라니!
" 그날 이후, 모든 것들이 내게 말하기 시작했다.
사물의 이야기를 듣는 소년과 말하는 책의 마법 같은 대화 "
열네 살 소년 베니는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 이후 온갖 물건들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물이 하는 말을 듣게 되는데...
다른 목소리들은 꿈속에서도 나타났어. 그렇게 시작된 거야. 마치 한 목소리가 문을 열자, 나머지가 따라 들어온 것 같았어. 꿈은 문과 같아. 또 다른 현실로 들어가는 관문 같은 거지. 그리고 일단 그 문이 열리면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 p. 64
처음에는 사물들이 그저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서로에게 또는 공기 중의 분자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세사에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뿐이었으리라 그러나 그때 내 귀가 열리게 되었고, 내가 들을 수 있는 귀, 초자연적 귀를 가졌음을 깨닫게 되자, 그들은 나와 소통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은 사물의 언어로 말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나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p.96
계속되는 사물의 목소리를 듣게 되며 일상생활이 힘들어진다.
결국 소아정신병동에 입원까지 하게 되지만 베니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이는 없다.
베니의 엄마 애너벨조차 남편의 죽음 이후, 충격으로 계속 살이 찌고 물건을 사고 쌓아두고 하기를 반복하며 저장강박증을 보이고 우울증으로 아들 베니를 돌볼 여력이 없다.
엄마와 아들은 그렇게 상실의 고통으로 시간을 보내고 좌절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사랑하는 존재를 갑작스럽게 떠나보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일상을 마비시킨다.
10년 전 아버지의 죽음을 마주했을 때,
처음엔 현실인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와닿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상실의 깊이가 다가왔다.
물론 베니와 애너벨처럼 나에게, 아버지의 죽음은 고통스러운 상실은 아니었으나,
충분히 이해는 된다.
그때 이 책이 있었다면, 나를 기다려 읽어주기를, 나에게 상실의 아픔과 치유와 회복의 과정을 어렴풋이 알려주는 책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베니와 애너벨 모자는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점차 회복하고 치유해 간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 힘내라는 말, 그런 것들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그들만의 방식으로 위로해 주면 그게 최선이다.
" 쉬잇, 귀 기울여보라......."
우리는 모두 피할 수 없는 삶의 무게를 견디며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상실의 고통을 치유하는 과정을 따라가며
나의 마음도 따뜻하게 치유되는 듯했다.
귀 기울여보라. 나에게 소곤소곤 말하고 있는 우주의 언어를.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