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연결된 세계
아주아주 오랜만에 잠실로 갔다.
너무도 낯설어 길 잃기 좋은 곳. 정신없이 빽빽한 사람들, 식당들, 그 안에서 발견한 "알라딘 중고서점".
참새가 방앗간을 어떻게 지나치랴. 홀린 듯이 들어가 구경하는데 제일 먼저 눈에 띈 책이 있었다.
장바구니에만 담아두고 살까 말까를 얼마나 고민했던 책인지.
개브리얼 제빈의 <섬에 있는 서점>
요즘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이라는 소설이 그렇게 재미있다지? 어머. 그 소설을 쓴 작가가 개브리얼 제빈이네? 역시! 장바구니에 잠자고 있던 <섬에 있는 서점>이네? 안 살 수가 없지.
" 하이애니스에서 앨리스 섬으로 가는 페리 안, 어밀리아 로먼은 손톱에 노란색 매니큐어를 바르고 칠이 마르기를 기다리면서 전임자의 메모를 훑어본다." - 첫 문장
★ 줄거리
앨리스 섬에 있는 아일랜드 서점을 배경으로 서점의 주인장 '에이제이'와 출판사 영업사원 '어밀리아'의 이야기로 소설은 시작된다. 사랑했던 아내 '니콜'을 교통사고로 잃고 방황하던 중, 에이제이가 아끼던 초판한정 50부밖에 인쇄되지 않은 [테멀레인] 책이 사라지고, 서점에는 두 살배기 '마야'가 쪽지와 함께 버려진다. 에이제이는 '마야'를 입양하게 되고, 새로운 삶의 여정이 시작된다.
각 장이 시작될 때, 주인공이 책을 읽고 쓴 리뷰가 한 페이지씩 나온다. 리뷰를 잘 쓰고 싶은 나는 에이제이 피크리의 리뷰를 진심을 다해 읽고 페이지를 넘긴다. 간단명료하면서도 생각이 담겨있는 리뷰가 살짝 웃음 짓게 만든다.
" 때로는 적절한 시기가 되기 전까진 책이 우리를 찾아오지 않는 법이죠. " - p.119
이 책 또한 나에게 적절한 시기가 되어 찾아온 듯하다. 장바구니에 담겨있다 중고서점에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나를 향해 손짓하던 순간, 그 적절한 타이밍이란.
" 인생의 시기마다 그에 딱 맞는 이야기를 접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말해주는구나. 명심해라, 마야.
우리가 스무 살 때 감동했던 것들이 마흔 살이 되어도 똑같이 감동적인 건 아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야.
책에서나 인생에서나 이건 진리다. " - p. 57
인생에 대해서 생각이 많은 요즘이다. 내가 잘 살고 있는 걸까, 아이들은 잘 키우고 있는 걸까,
스무 살 때의 나와 마흔의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인데, 그 시기마다 읽었던 책들은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게 해 주었고, 힐링 그 자체였다.
" 내가 말할 수 있는 거라곤.... 내가 말할 수 있는 거라곤, 우린 함께 헤쳐나갈 수 있을 거예요. 맹세코.
나는 내가 읽는 책을 당신도 같이 읽기를 바랍니다. 나는 어밀리아가 그 책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내 아내가 되어 주세요. 당신에게 책과 대화와 나의 온 심장을 약속할 수 있습니다. 에이미."
- p. 193
" 있잖아, 서점은 올바른 종류의 사람들을 끌어당겨. 에이제이나 어밀리아 같은 좋은 사람들.
그리고 난, 책 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책 얘기를 하는 게 좋아. 종이도 좋아해.
종이의 감촉, 뒷주머니에 든 책의 느낌도 좋고. 새 책에서 나는 냄새도 좋아해." - p. 308
에이제이가 죽은 뒤, 에이제이의 오랜 친구이자 경찰관인 렘비에이스는 고민 끝에 아내에게 이야기한다. 종이의 감촉도 좋고, 새 책에서 나는 냄새도 좋다고. 서점은 올바른 종류의 사람을 끌어당긴다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렘비에이스의 이야기에 맞장구치며 공감하겠지. 나처럼.
“인간은 섬이 아니다. 한 권의 책은 하나의 세상이다.”
서점 간판에 쓰여있는 이 문구는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이웃들 간의 이야기, 있을 법한 해프닝들, 웃음을 자아내는 사랑과 우정.
그것들은 책을 통해 또한 서점을 통해 하나의 세상으로 이어진다.
누구에게든, 기억이 닿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기를. 평온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