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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Dec 08. 2022

어쩌다 작가, 호러 작가, 아신유

인생 2막, 지금은 소설가가 되는 중입니다



나는 17년차 성우이다.     

내가 이렇게 긴 시간을 성우로 살아왔다는 것이 놀랍고 신기하기도 하다. 내가 한 가지 일을 이렇게 오래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에세이를 의뢰받고 내가 성우로 살아온 날들을 되짚어 보니 그제야 긴 세월이 실감난다. 성우가 되기로 결심한 날을 얘기해보자면 이렇다.     

열심히 공부를 하고 공무원 시험을 보기 바로 전날, 뜻밖의 사건이 일어났다. 극히 사소했지만 인생의 흐름을 바꿔 버린 강력한 사건이었다. 시험을 하루 앞둔 그날 나는 별 생각 없이 인터넷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 당시 유행을 하던 싸이월드에 접속을 한 순간, 매우 낯설고 생각지도 못한 것을 보게 됐다. 첫 화면에 성우 지망생들의 클럽이 소개된 것이었다.   

  

성우라는 단어를 본 순간 갑자기 마음속에서 폭풍이 몰아쳤다. ‘이거다. 내가 정말 해야 할일은 바로 이거야!’ 나는 난데없이 성우가 돼야겠다는 생각에 잔뜩 흥분했고, 성우라는 직업에 대해 검색하며 꿈에 부풀어 하루를 보냈다. 또한 바로 클럽에 가입해서 활동을 시작했고 스터디 신청도 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에세이를 쓰고 있다.     

아, 다음날 공무원 시험은 어떻게 됐냐고? 당연히 시험은 안 봤다. 내 갈 길을 찾았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같이 시험을 보기로 한 친구에게 왜 안 왔냐고 연락이 오고 난리가 났지만 난 그저 담담하게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라고 말할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신기하다. 평상시에 관심도 없던 일에 어떻게 아무런 보증도 근거도 없이 막무가내로 자신의 길이라 확신할 수 있었을까? 바로 다음날 있을 공무원 시험까지 내팽개치면서 말이다.     


굳이 답을 말해보자면 ‘별 다른 생각이 없었다는 것.’ 그것이 가장 정확할 것 같다. 그때 당시 내 머릿속에는 그저 성우가 됐을 때의 모습만 활활 타오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인생의 목표를 찾았다는 사실에 기뻐서 열심히 성우 연습에 매진했던 것이다. 그후 17년이란 세월을 해온 것을 보면 나름 인정받으며 열심히 살긴 살았나 보다.     

이번엔 작가를 결심하게 된 얘기를 할 차례인 듯하다. 사실 여기에는 큰 그림이 하나 숨어있다. 성우조차도 실은 이 큰 그림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나는, 지금은 사라진 하이텔의 공포소설 게시판의 인기 작가였다. 나조차도 그걸 몰랐었다. 그때 나는 중학생이었으니 말이다.     


당시 필명이 ‘마라’였던가 그랬다. 짧은 분량의 공포 단편 두 편을 올렸었는데 쓰고 나서 장난 삼아 업로드한 후 잊고 지내다가 한참 후에 들어가 보니, 조회수가 다른 작품의 몇 십 배였던 것이다. 아쉽게도 지금은 제목도,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다. 3.5인치 디스켓에 저장됐던 그 소설 파일은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며 사라졌고 지금은 희미한 기억만 남게 되었다.     

어쨌든 나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그 엄청난 조회수 덕분에 글쓰기 재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언젠가 나이가 들어 여유로워지면 소설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그때 당시 나는 기타리스트를 꿈꾸고 있었기 때문에 전업 작가가 돼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죽기 전에 괜찮은 소설을 하나쯤 쓰면 좋겠다는 의식 정도였다.     


세월이 흘렀다. 성인이 되고, 대학에 입학하고, 기타리스트는 포기한 어느 날이었다.     

느닷없이 한 프랑스 작가가 나에게 소설가의 꿈을 본격적으로 불러일으켰다. 바로 르 클레지오였다. 정확히 말하면 르 클레지오의 ‘황금 물고기’를 읽고, 처음으로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느꼈다. 대학교 2학년 때 읽은 이 책으로 인해 나만의 세상을 창조한다는 것의 매력을, 그리고 문장을 음미하는 즐거움을 알게 된 것이었다. 이후로도 오랫동안 르 클레지오의 글에 빠져서 대형 서점에서 주최한 특강까지 가서 강의도 듣고 그를 눈앞에서 본 적도 있다.(책표지의 사진하고 정말 똑같더라. 심지어 옷 입은 것까지.) 르 클레지오의 글들은 여전히 나의 소중한 작품 목록이고, 나에게 있어서 그의 작품들은 판타지를 초월한 판타지 소설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책을 읽던 때가 인생의 전환점인 것 같기도 하다. 그때 이후로 반드시 소설을 쓰고야 말겠다는 각오가 생겼으니 말이다. 르 클레지오 같은 글을 쓰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한 것이다. (하지만 2008년 르 클레지오가 노벨 문학상을 받으면서 ‘그건 좀 힘들지도 모르겠구나.’ 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 글을 쓰며 인생 돌아보는 지금, 온갖 인생의 풍파를 겪으며 40대가 되었다. 평생 사고 치지 않고 온순하게 부지런히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만, 되돌아보면 한심한 짓에 빠져 있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괜히 센 척하며 건물에서 뛰어내렸다가 발목이 부러지기도 하고, 주식으로 전 재산을 잃기도 하고,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나의 마음속에는 늘 부글부글 끓는 커피포트가 있는 것 같다.     

기쁨인지 슬픔인지 모를 지독한 뭔가가 있는 것이다. 어쩌면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엔 각자의 커피포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모두들 마실 수도 버릴 수도 없는, 후회와 원망의 커피를 끓이며 살아간다고나 할까. 끝없이 졸여져서 새까맣고 끈적한 덩어리만 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즐겁게 살고 있다. 왜냐고? 소설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17년 전 어느 날 막무가내로 성우의 꿈을 불태우게 됐듯이, 지금 나에게 그런 일이 또 한 번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행복해서, 어쩌다가 좋은 문장 비슷한 것이라도 쓰면 너무 보람차서 자꾸만 쓰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17년 전 그 날처럼 다른 일을 거의 그만두고 소설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생활의 최우선 순위를 글쓰기에 둔 것이다. 물론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당장의 현실이 안정된 것은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17년 차 성우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나에게는 이미 순수한 열정만으로 인생 1막을 성공해 본 경험이 있는 것이다. 열정이 마법처럼 나에게 길을 열어준 것을 나는 잊지 않았다. 그러니 이번에도 마음껏 빠져들어서 글을 쓴다면 세상이 조금은 알아줄 것이라 믿는다. 만약 알아주지 않는다면 솔직히 괴로울 것이다. 또 한 번 커피포트가 삐-소리를 내며 끓겠지. 하지만 괜찮다. 받아들일 수 있다. 그 역시 이미 겪어본 삶의 풍파니까.     


그렇습니다. 내 나이 마흔 둘. 인생 2막을 열며 지금은 소설가가 되는 중입니다.     


내가 호러를 좋아하는 이유   

by 아신유 


바이올린의 불협화음이 날카롭게 신경을 긁을 때, 바로 그때부터 나의 즐거움이 시작된다. 잠시 후 화면 속에서는 피의 향연이 혹은 괴물과의 짜릿한 액션이 펼쳐지고 나는 환호성을 지른다. 호러물에 대한 본격적인 취향은 중학생 때부터 시작됐던 것 같다. 그전까지는 단순히 외계인 이야기나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빠져드는 정도였고 말이다. 이 역시 공포, 미스터리의 영역이니 매한가지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나는 왜 호러물을 좋아하는가? 평생 호러물을 좋아하면서도 스스로에게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질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그토록 괴물과 좀비, 악령, 전기톱 살인마에 열광하면서도 어째서 그 이유를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얼마 전, 평생 수집한 영화 비디오 테이프, DVD들을 정리하기 위해 하나하나 다시 보며 버릴 것과 남길 것을 가려냈는데 결과적으로 남은 것은 트윈 픽스, 데드 얼라이브, 델리카트슨, 이블 데드 그리고 다리오 아르젠토의 영화들이었다. 살아남은 것들이 하나같이 옛 시절에 보고 또 보고 했던 것들이어서 내 스스로도 많이 놀랐고, 그와 더불어 이 녀석들이 바로 나의 자아임을 깨닫게 되었다. 40살이 넘은 지금까지도 ‘데드 얼라이브’를 보면서 예전에 느꼈던 재미를 여전히 똑같이 느끼는 것을 보면 호러는 확실히 타고난 취향인 것이다. (심지어 이 글을 쓰는 동안 데스 메탈을 듣고 있다.) 이런 사실을 최근에 깨닫게 된 나는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나는 왜 호러물에 끌리는 것인가?     

우선,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감정은 반발심이었음을 고백해야겠다. 왜냐하면 ‘원래 취향이 그렇다. 다른 이유는 없다.’ 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끔씩 사람들이 왜 공포영화 같은 걸 보냐고 물었을 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그것뿐이었다. 그 질문은 마치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상대방을 좋아하게 된 이유를 객관적으로 설명해보라는 요구처럼 느껴져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프레디와 한니발 렉터, 사다코, 약간 벗어났지만 달렉과 디셉티콘을 좋아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닌가? 악당 두목이 주인공을 죽이기 전에 늘어놓는 장광설이야말로 가장 올바른 이야기 아니던가?     

어쨌거나 나이가 들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인생에 있어서 근본 없는 대답이란 없음을 알게 되었다. 모든 일에는 반드시 이유 혹은 배경이 있는 것이다. 곧 얘기하겠지만 이 글을 쓰며 진지하게 고민해본 끝에 나는 충격적인 결론에 도달했는데 그것은 마치 달의 뒷면을 보게 되듯 내 인생의 뒷면을 보게 되는 경험이었다. 일생 동안 벌어졌던 서로 무관하고 파편적인 사건들이 실은 하나의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것의 실체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두 살 때의 기억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에겐 두 살 때 부모님과 관련된 어떤 기억이 있다. 당시 우리 가족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고 그 날은 밤이었다. 나는 바닥에 누워서 꼼지락 거리면서 천장을 보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나는 형광등이 빛나는 것이 보기 좋아서 등을 계속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방이 컴컴해졌다. 잘 시간이 되어서 어머니가 불을 끈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형광등이 꺼진 것에 화가 나서 울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당연히 갓난아기인 내가 어두운 것이 무서워서 우는 줄 알고 달랬을 것이다. 하지만 난 무서운 게 아니라 불 켜진 형광등이 보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도 어머니가 불을 켜지 않고 울음을 달래기만 하자, 짜증이 폭발한 나는 당해보라는 듯이 더욱 악에 바쳐 울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이 순간을 평생 머릿속에 박히게 만든 일이 벌어졌다. 옆에 누워 있던 아버지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조용히 해!”라고 소리를 지르며 베개를 집어 던진 것이다. 불이 꺼졌는데 그걸 어떻게 볼 수 있었냐고? 당시의 집에는 커튼이 없어서 옆 동의 불빛과 가로등의 빛들이 집안에 흘러 들었기 때문에 사람의 실루엣을 충분히 볼 수 있었다. 아버지가 느닷없이 내지른 소리에 나는 놀라서 울음을 뚝 그쳤고, 화가 나서 벌떡 일어서 있는 아버지의 검은 형상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나는 그동안 살면서 이 기억이 도대체 무엇인지, 왜 이런 것이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렇게 꿈인지 뭔지 알 수 없는 영상을 가끔씩 떠올리곤 했는데 그러다 몇 년 전, 세 살 된 조카가 우리 집에서 며칠을 지내게 되면서 우연히 진실을 알게 됐다. 낯선 장소가 적응이 안 되었는지 조카가 잠을 안 자고 자꾸 우는 상황이었는데 어머니가 갑자기 옛 기억을 말씀하신 것이다. “너도 두 살 때 이랬는데 그때 아빠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베개를…….”라고 말이다. 뜻밖의 순간에 내 기억이 실제로 벌어진 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중요한 점은 아버지의 행동이 아니다. 바로 불만족으로 인해 폭발했던 나의 감정이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분노와 짜증, 경멸감을 끊임없이 겪었고, 성장하는 내내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으레 하는 행동들에 매번 불쾌함을 느껴야 했다. 일단 이것이 내가 호러에 집착하는 배경이라고 생각한다.     

좀 더 이야기를 진행시켜 보자면, 유치원에 다닐 때 겪은 기억이 또 하나 있다. 유치원에 입학한 첫날이었다. 넓은 공간에 엄마들이 한쪽에 모여 있고 나는 아이들과 함께 있었다. 그렇게 멀뚱멀뚱 서있는데 어떤 여자가 앞으로 나오더니 웃으면서 뭔가를 얘기했고 뒤이어 음악이 나오면서 지금부터 율동을 할 테니 자기를 따라하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신이 난 로봇처럼 율동을 따라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은 정말 엄청난 충격이었다. 세상이 순식간에 미쳐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깨달았다. 멀쩡하게 가만히 있다가 왜 신이 나는 건지, 무엇이 즐거워서 그렇게 따라하는 건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분위기에 압도당한 나는 최소한으로 움직임으로써 이 상황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며 율동을 따라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나의 기질과 당시의 감정들에 대한 기억이, 나이 들어서 윤색된 것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역시나 어머니의 말씀 때문이다. 30대 초반 무렵 어머니와 코미디 방송을 보던 어느 날이었다. 내가 어떤 개그 코너를 보며 한참을 웃자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너는 어렸을 때부터 도대체 웃지를 않고, 뭘 해줘도 좋아하는 기색이 없어서 엄마 아빠가 걱정을 많이 했었단다.” 라고 말이다.     

이후로도 나의 어린 시절은 분노와 경멸의 연속이었다. 언제 어디서든 어른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전혀 맘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갓난아이를 강아지처럼 귀여워하는 사람들을 보면 무참하게 학살하고 싶어진다. 영유아는 머리가 빈 장난감이 아니다. 나름의 생각과 감정이 있으니 반드시 온전한 인간으로 배려해야 한다.) 세상에 대한 끝없는 적개심 그리고 도덕과 에티켓에 대한 환멸감이 바로 이 시기에 생겨난 것 같다. 충분한 경제력이 있었고, 충분히 사랑받는 가정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유전자의 불운한 조합 탓에 폭풍처럼 몰아치는 정신을 갖고 태어났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태어난 순간부터 학대 아닌 학대를 받으며 성장한 것이다.     


학창 시절에는 나의 본래의 성향을 억누르며 모범생의 가면을 썼지만 타고난 기질은 어떻게든 튀어나왔다. 초등학교 때 일기에 사람이 싫으니 섬에 들어가서 낚시나 하며 살고 싶다고 쓴 것도 그렇고, 괴물, 귀신, 연쇄 살인마 등등 나의 분노를 대신 분출해주는 것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한마디로 ‘세상아 다 죽어라!’를 대신 실행해주는 친구들을 찾은 것이었다. 그렇게 호러물에 대한 취향이 생겨나게 된 것 같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시절에는 그런 기질이 오히려 결벽적으로 작용하면서 자퇴를 할 뻔하기도 했다. 그때 당시의 일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헬조선 및 탈조선의 선구자라고 하면 될 것 같다. 부모와의 충돌로 결국 자퇴 시도가 무산된 이후에는 가톨릭에 심취했고 매일 그레고리안 성가를 들으며 신학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기도 했다. 속세를 떠나야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것 역시 부모님과의 타협 끝에 좌절되면서 철학과에 가는 것으로 마무리됐고 말이다. 이외에도 많은 일이 있지만 비밀이다!     

태어나서 성인이 되기 전까지 내가 벌인 일들을 정리해보면 대충 이렇다. 어렸을 때부터 분노 속에서 살아왔고 그 때문에 늘 세상을 파괴하고 싶었는데 그게 안 되니까 속세를 떠나려고 했고, 그것도 안 되니까 호러물을 보는 것으로 대리 만족을 해 온 것 같다. 이것이 바로 ‘내가 호러를 좋아하는 이유’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니까 결국 ‘이게 다 유전자 때문이다.’ 라는 결론인 셈이다.) 인간과 문명이 가차없이 무시되고 파괴되는 것을 지켜보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실현될 일은 없을 테니 호러물이나 종말 재난 영화, 씁쓸한 뒷맛을 넘기는 디스토피아 작품을 보고 또 보는 수밖에.     

이제는 나이를 먹고 어느새 40대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나도 그렇고 누구도 잘못한 게 없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하던 대로 한 것뿐이고, 나는 내 유전자가 시키는 대로 한 것뿐이니 말이다. 좋은 부모님을 만나서 잘못된 길로 나아가지 않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마지막 얘기를 하자면, 내가 이런 인생을 살아왔다고 해서 폭력적이거나 무서운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30대 중반까지 일관되게 부정적인 감정을 폭발시키며 살아온 덕분에 지금은 반성할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의 여러 가지 행동에서 나의 예전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호러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다소 극단적인 인생의 경험들이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헤아리는 밑바탕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괴팍하거나 무례할 때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완벽한 인간은 없으니까. 나는 여전히 ‘슈퍼 내추럴’ 같은 인간을 멸하는 드라마에 심취하지만, 한편으론 최고의 인생 드라마가 ‘나의 아저씨’이고, 또 영화 ‘미나리’를 보며 인생을 반추하는 것을 보면 최소한 ‘말이 통하는 사람’이 됐음을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다.     

수 십 년의 세월을 살아본 끝에, 멀고 먼 길을 돌고 돌아 나는 이제 막 사람의 소중함에 눈뜨게 되었다.     


작가 소개     

아신유     

네오픽션 출판사와 호러 소설 장편 계약 후 집필 중     

브릿G 연재 중인 호러 소설들 링크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s://britg.kr/novel-group/novel-post/?np_id=403893&novel_post_id=16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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