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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랬구나 Dec 02. 2023

전 직장 동료들을 만나고 오는 길에

가끔 전 직장 동료들을 만난다. (현 직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전에 다녔던 회사의 동료라는 뜻에서)

선배, 동기로 구성된 그 멤버들은 함께 여행도 다니고 서로의 생일을 축하해 주며 가족처럼 지냈었다.


보통은 내가 그들의 점심시간에 맞춰 회사 근처로 가서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온다. 최근 회사의 사업 내용이나 실적에 대해서도 듣기도 하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나 같이 일했던 선후배들의 근황도 듣고, 전업주부의 삶을 들려주기도 한다.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이 끝나가고, 나도 아이들 하교시간이 다가오니 이제 헤어질 시간.

똑같은 사원증을 목에 건 그들과 반대방향으로 나는 버스를 타러 간다. 몇 년 전엔 나의 퇴근길이었던 이 길. 

그들을 만나고 집으로 가는 길은 머릿속에 생각도 많고 기분이 복잡 오묘 다양하다. 


내가 계속 회사를 다녔다면 어땠을까? 빠른 동기는 임원, 보통은 팀장 직책을 달고 있다. 육아휴직을 다녀온 동기 언니도 올해 팀장 승진을 했다 하니 나도 아마 팀장? 아니다, 난 두 번 육아휴직을 했을 테니 아직은 아닌가? 아니다, 아마 그 회사를 계속 다녔다면 나는 지금의 두 귀여운 아이들을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전에 한번 글로도 썼지만 나는 그 회사를 다닐 때 생리가 평일에 시작하지 않을 정도로 스트레스가 컸었다. 아니면 딩크족으로 살면서 일에 매진하는 삶을 살았을까? 그만 생각하자. 회사를 그만둔 대신 우리 아이들을 만났으니 후회는 하지 않는 걸로. 


그 멤버 중 한 명은 나랑 동갑이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 지내는 그녀의 삶은 드라마 속 등장인물처럼 나에겐 현실성이 없다. 여가 시간에 그림 그리고 스킨스쿠버를 배우고 골프를 배우는. 아, 이렇게도 사는구나.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그만. 타인의 삶과 비교도 그만

다만 작년의 나와 지금의 나만 비교하기로 했다.


덜컹덜컹 달리는 버스가 마치 정신 차리라고 등짝을 한 대 때려주는 것 같았다.

작년의 나보다 나아진 것은 무엇이 있을까.

아, 생각났다. 엄청 중요한 거! 나 브런치 작가 되었다! 이 중요한 걸 이야기 안 해주고 왔네. 


그럼 지금으로부터 1년 후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들에게 무엇을 자랑할 수 있을까.

나 책 썼어. 하고 그들에게 책 한 권씩 안겨줄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근데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왜 나 무엇을 해냈다고 증명하려 애써야 하지?

책을 쓰지 못하더라도 나는 내 자리에서 열심히 산 건데. 보여줄 게 없다. 증명할 방도가 없다.

주부의 삶이란 모든 것을 그 자리에 있게 하는 것만으로도 할 일이 차고도 넘친다.


사실 그들이 나에게 1년 동안 무얼 했냐고, 작년보다 무엇이 나아졌냐고 묻는 것도 아닌데, 괜히 나 혼자 오늘 그들을 보고 자극을 받았다. 긍정의 자극이라 생각한다. 나로 하여금 무엇이든 해야겠단 생각을 하게 만들었으니. 


무엇이든 하자. 1년 후 내가 나 자신을 자랑스러워 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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